2025 저작권 글 공모전
어느 고등학교에 강연을 갔을 때의 일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학생이 “챗GPT를 활용해 숙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제 생각을 떠나서.. 과연 막을 수 있을까요?” 원하던 대답이었는지 학생들은 “오~”를 연발했고, 선생님들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GPT 답변을 그대로 복사해 과제를 제출한 사례가 있었나 보다. 대학교나 공모전 사례는 익히 들어봤는데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고민이 있다니 실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하긴, 학생들이 태블릿을 세워 놓고 강의 내용을 메모하는 풍경부터가 생소하기는 했다.
돌이켜보면, 네이버나 구글 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대중화되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애들은 책이나 신문을 읽지 않고 인터넷에만 의지한다며 한탄 하던 어른들의 핀잔이 있었다. 그때의 그 ‘요즘 애들’은, 지금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AI 활용에 대한 특강에서 질의응답을 받고 있다.
주변의 AI 쓰임새를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 1번은 AI 답변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이고, 2번은 AI를 학습의 도구로 삼아 다양한 명령(prompt)을 내리며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앞서 인터넷이나 AI 활용의 무분별함을 우려했던 이유는 아마도 1번 방식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는 철저하게 배제되고 걸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사용자들이 2번 방식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굳이 1번 방식을 고집해 리스크를 떠 안을 필요 없이 2번 방식으로도 충분히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에는 2번 방식이 어려웠다. 다양한 정보들을 보려면 검색어를 입력하고 정보를 읽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시글의 내용이 길다면 전문을 읽어야 원하는 단락을 찾아낼 수 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구글링(googling)도 절대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그런데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검색창이 아닌) ‘대화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심지어 대화창을 닫아도 과거 대화를 얼마든지 이어나갈 수 있는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언제나 친절하고 박학다식한 카톡 친구 같다고 할까.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대화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상 창의적으로 생각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결국 근본적으로 획일화된 교육 과정을 지적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획일화된 교육 환경에서는 질문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책을 많이 보면 새로운 생각들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도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몰라서 질문 할 수 없었던 대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며, 작가가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 용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도 질문을 받아 주지는 않는다.
질문은 창의적인 활동을 위한 첫걸음이고,
따라서 수많은 문답을 통한 AI 활용 역시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의 일환인 것이다.
회사에서 GP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다가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를 더 잘하기 위해 GPT를 활용할 때보다, 자신이 잘 모르는, 타 부서 업무에 관한 질문을 할 때 훨씬 더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뜬금없이 IT 관련 질문을 하고, 마케터가 심층 통계 분석에 대해 거침없는 질문을 쏟아낸다. 첫 번째 이유는, 다양한 부서가 협업해야 하는 업무가 점점 많아지면서 타 부서의 전문성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타 부서 직원들에게 일일이 모르는 내용을 물어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바쁜 와중에 기초 질문을 수시로 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으니까.
앞서 창의적인 활동을 위한 첫걸음은 ‘질문’이라고 했는데,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질문의 대상이 ‘낯선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 분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혁신을 이뤄내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지식과 영감을 서로 연결(융합)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다.
얼마 전 딸 아이를 위한 동화책 한 권을 만들었다.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한 시점부터 유독 흥미를 보였던 인형과 장난감을 기반으로, 아이가 반복해서 하던 단어나 짧은 문장들을 엮어서 스토리를 짰다. 삽화는 각 장에 맞게 상세한 프롬프트를 만들고 원하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GPT를 괴롭혔다. 물론 출판물이 아닌 개인소장용이었고, 아이를 위한 작은 선물일 뿐이었다.
그런데 만약 AI가 없었다면 내가 ‘동화 창작’을 할 수 있었을까?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공표되는 저작물이 아니니 동화를 창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다소 과해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이런 낯선 과정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면 어떨까? 좀 더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한다면? 이참에 웹툰이나 애니메이션 소설책 등의 저작물을 만들어서 남들에게 판매하는 직업을 꿈꾼다면?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챗GPT, 미드저니 같은 AI 서비스들을 사용하면서 감히 엄두도 못냈을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얻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직업으로 확장시켜 나갈 방법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AI 활용은 창작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넘어, 우리가 가보지 못했던 길을 가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유튜브에 대한 초기 평가는 대부분 트렌디한 영상 콘텐츠 소비 채널, 네이버를 위협하는 정보 검색 채널 정도였지만 지금 유튜브는 ‘새로운 미디어’가 되었고 많은 비전문가들을 ‘미디어 생산 주체’로 만들었다. AI의 등장 역시 각 분야의 새로운 생산 주체들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전문가들과 비전문가들이 같은 공간에서 경쟁하는 양상이 더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과연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상황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AI를 활용한 결과물을 인색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저작물에 대한 최근 논의를 보면, AI 활용 기여도에 따라 창의적 저작물로 인정할 수 있고 저작권의 보호 역시 당연히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많은 창작자들은 AI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밝히기 꺼려한다. 기술적으로 기여 정도를 선명하게 측정하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학습할 수 있는 다양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사례는 풍부하지 않은데 벌어질 상황을 예상해서 논의하면 당연히 어렵고 오래 걸린다. AI 시대에 우리는 모두 비전문가이지 않은가.
어차피 벌어질 상황이라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갖추되, AI를 활용한 여러 사례가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등장하도록 길을 열어둬야 한다. 창작자가 스스로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계속해서 AI 탐지기를 정교하게 만드는 데에만 열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AI를 활용한 결과물은 이미 그 자체로 창의적인 것이며, 이제는 우리 모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