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가의 무식한 용기의 글
이탈리이의 유명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가 이런 말을 했단다.
"나는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두려워한다(Timeo hominem unius libri)."
--> 원래는 한 분야의 고전을 깊게 판 전문가의 무서움을 뜻하기도 했으나,
현대에 와서는 '편협한 지식의 위험성'으로 더 자주 해석됨.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 (Alexander Pope)는 이런 말을 했단다.
"어설픈 지식은 위험한 것이다(A little learning is a dangerous thing)."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도 이런 말을 했단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
어쩌다 읽은 책 한 권 가지고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이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더 위험하다는 얘기다.
확증 편향이라고도 하고 비판적 사고가 부족하다고도 하며 무식한 용기라고 놀림감이 될 수도 있다.
이건 내 얘기다. 그리고 밑밥을 깔기 위한 장치다.
겨우 책 한 권 정도의 서사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절대 암호화폐 전문가나 경제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드는 생각과, 쓰는 글들과, 어설픈 나의 지식들이 확증 편향의 산물이고
비판적 사고가 부족함에서 오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런 정리들이 어설프거나 완전히 틀렸을지 모르지만, 결국 이런 시도와 고민들이 언젠가는 나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는 주도성을 줄지도 모르니까.
요즘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이지만, 한 때 떠들썩했던
비트코인 ETF(Exchange Traded Fund) 승인과 도입이 정말 당시의 관측과 전망처럼 호재였을까?
여러 종목을 묶어서 판매하는 "패키지 상품"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S&P500 ETF”라는 상품에 투자하면 미국의 대표 기업 500개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개별 종목에 투자하지 않고 ETF에 투자하는 이유는 리스크 관리 때문이다. 특정 종목 몇 개가 떨어져도 전체 기준에서는 타격을 덜 받을 수 있으니까.
ETF는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그러니까 연기금(연금+기금사)이나 헤지펀드, 보험사, 은행 같은
기업들이 모두 투자하지만 뉴스에서 다뤄지는 것은 주로 기관투자자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간단하다. 움직이는 자금이 크니까.
주식 시장으로 치면 일단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금액이 개인투자자들 대비 현저히 크다.
ETF 상품을 판매하는 자산운용사들은 소매점과 같아서 ETF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ETF에 속한 종목들을 실제로 구매해 와야 하기 때문에
ETF로 자금이 몰린다는 것은 시장의 가격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반대로 ETF에서 자금이 빠지면,
자산운용사들도 ETF에 속한 종목들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 시장 가격은 하락할 수 있게 된다.
그럼 기관들은 모두 ETF에만 투자할까? 그렇지는 않다. 특정 종목에 투자를 하기도 하지만
연기금 같은 기관들은 조금 더 안정적인 차원에서 ETF 비중이 높다고 한다.
어쨌든, 시장에서는 ETF가 생긴다는 것을 기관의 자금이 들어오는 통로라고 본다.
그리고 기관의 자금이 들어온다는 것은 해당 상품이 제도권 자산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비트코인 같은 새로운 자산 시장에 ETF를 신청한다는 것,
즉 이 상품을 ETF로 팔게 해달라고 하는 주체는 자금운용사이고
그걸 팔게 해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정부 기관이다.
비트코인을 ETF로 팔게 해달라고 수없이 신청했지만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애를 태운 곳이 뉴스에서 꽤 많이 보이는 SEC다.
SEC(미 증권거래위원회,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미국의 자본시장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가장 강력한 정부 기관이다.
한마디로 '금융 시장의 경찰관'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이 대폭락하며 대공황이 시작되었을 때,
"시장에 사기와 조작이 너무 많다"는 반성에서 1934년에 설립되었다고 하며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존재 이유라고 한다.
(투자자 보호 / 공정하고 질서 있는 시장 유지 / 자본 형성 촉진)
그런 SEC가 신뢰성을 근거로 그동안 ETF 승인 요청을 거절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2021년 "선물 ETF"가 먼저 승인되었고,
2023년 판이 뒤집히면서 2024년 1월에 처음으로 현물 ETF가 승인되었다.
이 순간부터 비트코인은 제도권 자산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24년 11월 비트코인에 우호적이었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비트코인의 가치는 단숨에 1억을 넘겨 버린다.
2024년은 "4번째 반감기"가 시작되던 해다.
비트코인 반감기는 약 4년마다(정확히는 21만 블록 생성 시마다)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이벤트로, 공급량을 조절하여 비트코인의 희소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이며, 이 시기에는 늘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종목들이 폭등을 한다. 당연히 이 시기 역시 2025년 하반기까지 폭등이 점쳐지고 있었다.
거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비트코인ETF 이슈가 맞물리면서
마치 비트코인은 날개를 달고 치솟을 것만 같던 기대를 심어주었다.
< 비트코인 최근 5년 간의 추이 >
비트코인은 실제로 2025년 1월까지 폭등을 했다. 두 달 만에 1억 6천 만원을 찍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내려오기는 했지만 이후 최근 10월까지는 회복을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건 비트코인 차트이고 알트코인까지 이어지는 불장은 오지 않았다.
분명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정말 뒷북이지만..)
비트코인 ETF가 기관 자금이 들어온다는 의미라면,
과연 불장을 기다리는 일반 개인투자자들에게 호재가 맞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4년 불장 구조는 다들 알다시피 “반감기 때문만”이 아니다.
반감기는 어디까지나 촉매제에 가깝다. 진짜 힘은 항상 바깥에서 들어왔다.
유동성, 즉 돈의 흐름 때문이다.
금리가 내려가고 돈이 풀리면, 그 돈은 원래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채권에서 빠져서 주식으로 가고, 거기서 더 위험한 자산으로 이동한다.
성장주, 기술주를 지나 마지막쯤 도달하는 곳. 그게 암호화폐였다.
즉, 돈이 풀리면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돈이 옮겨가며 폭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돈이 옮겨가는 이유도 간단하다. high risk, high return.
위험할수록 수익률이 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코인 시장 안에서도 순서가 있었다.
처음엔 비트코인, 그 다음 이더리움 같은 대형 알트, 그 다음 중소형 알트, 마지막엔 잡알트와 밈코인.
이 흐름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개인 투자자 중심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은 설명 가능한 자산을 사기보다, “오를 것 같은 자산”을 산다.
서사와 기대, 유행이 가격을 미는 구조다.
알트코인 공급도 지금처럼 과잉이 아니었기 때문에, 돈이 퍼져 나가는 구조 자체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게 항상 똑같았을까? 돌아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1차 반감기인 2013년은 너무 초기라 비트코인 위주였고,
2차 반감기인 2017년이 그야말로 교과서 같은 불장이었다.
ICO 붐, 백서만 있어도 오르던 시기. 비트에서 알트로 돈이 가장 강하게 퍼졌던 해다.
그런데 3차 반감기인 2020~2021년은 조금 다르다.
당시는 코로나 시기였다. (2020년 3월 팬데믹 선언)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마 2020년 3월 당시에 전체 금융 시장이 무너졌다.
그 때 돈을 벌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뉴스에서 주식 시장이 무너졌다는 기사를 보고
처음으로 주식을 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팬데믹으로 바닥을 찍었던 주식은 이후 급격히 상승해서 회복하기 시작했고
이 당시 부동산도, 코인도 다 올랐다. 이 시기는 중고등학생도 주식 얘기를 할 때였다.
이 시기는 기관이 비트코인에 직접 들어오기 시작한 과도기였다. 그리고 ETF가 등장한다.
앞서의 사례들을 볼 때 내 생각이지만, 불장이 오기 위해서는 "돈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1) 주식 등에서 돈이 빠져서 비트코인 같은 더 위험한 자산으로 흘러 들어와야 한다.
2) 비트코인에서 돈이 빠져서 알트코인 같은 더 위험한 자산으로 흘러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개인들의 돈은 위험자산으로 흐르지 않았다.
알트나 밈 코인들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이전의 불장을 겪어 봤던 사람들이거나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확률이 높다.
ETF 승인으로 기관 자금이 들어왔지만 그건 자금이 아니라, 규칙을 바꾸는 장치였다.
ETF 자금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개인 돈은 여기저기 퍼질 수 있지만,
ETF로 들어오는 돈은 비트코인만 산다. 알트는 못 사고, 밈코인은 애초에 대상이 아니다.
이 말은 곧, 기존 4년 싸이클의 핵심 전제였던
“비트가 오르면 돈이 알트로 순환한다”는 연결 고리가 약해진다는 뜻이다.
비트코인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돈이 알트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사라진다.
코인 시장이 투자할만한 자산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수는 있다.
또 기관 자금이 예전처럼 말도 안되는 폭락을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것도 이해는 된다.
(실제로 그럴 것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데 반대로 보면
ETF 등으로 유입된 기관 자금은 폭등의 촉매제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기관 자금이 들어온다는 것은 어쩌면
코인 시장이 주식 시장과 유사한 방향으로 가게 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럴 경우 예전과 같은, 밈코인 등으로까지 이어지는 불장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역으로 희미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생긴 것이다.
“그럼 ETF 승인 통과는 개인에게 경계 대상이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ETF 승인으로 기관 자금이 들어오고, 여기에 반감기가 더해지면 시장이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는
몇가지 전제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1. ETF에서 기관 투자 비중이 주식시장처럼 개인 투자 비중을 현저히 상회해야 한다.
폭등은 못시키더라도 폭락에 대한 방어를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2. 앞서 말했듯 코인을 제외한 다른 투자 시장에 별다른 호재가 없어야 한다.
비트코인 ETF 시장에서 개인과 기관의 투자 비중을 보면,
2024년 1월 비트코인 ETF 승인 이후에는 거래량의 80% 이상이 개인투자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2025년 이후부터 최근까지는 30% 내외 정도가 되는 모양이다.
다른 투자 시장에, 그러니까 주식 같은 시장에 별다른 호재가 없었는가? 아니다. AI가 있다.
그 무시무시한 AI는 엔비디아를 사상 초유의 기업으로 만들었고,
자율주행의 대중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테슬라 같은 기업들도 건재하다.
2023년 2월 오픈AI의 챗GPT가 전세계를 상대로 본격적으로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며
단숨에 100만 구독자를 모았다.
같은 해 3월에는 오픈AI 출신들이 설립한 앤트로픽의 Claude가 출시되었고
구글의 Gemini 역시 같은 해 12월 최초 공개되어 3강 구도를 이뤘다.
(얼마전 Claude가 공개한 Claude Opus 4.6 소식을 들었는가? 세상이 변하고 있다.)
https://news.nate.com/view/20260210n08314?utm_source=chatgpt.com
어쩌면 이를 계기로
"돈이 되는 AI"가 투자 우선순위에서 비트코인을 앞지르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현재의 투자 동향을 보면 사람들은
"어중간한 위험"은 철저히 외면하고, 양극단의 자산인 '초안전 자산(생존)'과 '초미래 자산(혁신)'으로만
돈을 몰아넣고 있다.
AI 테마주로 미래를 그리고 금 같은 안전 자산으로 안정성을 보장받는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지금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내 자산을 방어(금)"하면서도,
"침체된 경기 속에서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기회(AI)"를 동시에 잡으려 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아마도 이 두 개 영역의 교집합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어줍짢은 알트코인은 아니다.
코인 시장에서의 사람들의 선택 역시 (이전과 다르게) 대표 종목으로 쏠릴지 모른다.
AI 대표 주로 가장 핫한 '엔비디아(NVDA)의 주가 추이'와
'비트코인(BTCUSD)의 가격 추이'를 상승폭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다.
엔비디아는 조정이 오더라도 계속 고점을 갱신하고 있는 반면,
비트코인은 최근처럼 하락의 깊이가 남다를 때가 더러 존재한다.
어쨌든 지금 시장은 AI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시장이 비트코인의 미래를 부정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투자자들이 어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엔비디아 주식을 사는 게 "지금 아니면 안돼!"라는 공포심리라면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지금 굳이 들고 있어야 할까?"라는 의구심일 수 있다.
그렇다면 AI에 대한 기대는 영원불멸할까? 과거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IT 버블이 있었던 것처럼
AI에 대한 버블이 있지는 않을까? 이것 역시 깊게 생각해 볼 문제라 다음에 다뤄보기로 하고.
내가 감히 단언할 입장은 아니지만, 끝난거 아닌가? 하는 쪽에 한 표를 던져본다.
그렇다면 바로 이어서 다음 싸이클은 있을까? 다음 4년 후에는 불장이 올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을텐데 이 역시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자료를 보면서 느끼는 점은, 낙관론의 대부분도 역시 우량주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말하고 있지만 불장의 성립 조건은 돈의 흐름이다.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흐르는 그 흐름. 비트코인이 4년 주기로 반감기를 거치며 그 희소성이 다른 자산들과 다르게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별로 이견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건 모든 코인이 폭등을 하는 불장이 올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물린 코인에서 보란듯이 탈출을 할 수 있을테니까.
그런데, 이런 갖가지 상황에서도 밈코인까지 폭등하는 불장이 올 거라고 예견하는 시각은 많지 않다.
밈코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비트코인이 올라주면 나머지 코인에서 입은 손실들을 다 상쇄해 주지 않을까?
물론이다. 비트코인은 오를 것이고 언젠가는 나머지 손실들을 거뜬하게 매꿔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언젠가"가 언제냐는 것이다.
참고로 지금 이 얘기는 예견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하는 푸념과 한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