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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ul 17. 2020

가마쿠라의 시라스동

여행기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배경지인 가마쿠라에 갔다. 막내 스즈가 축구부 아이들과 먹은 시라스동을 바로 그 가게에서 먹고 싶었다. ‘소녀와 여름과 운동이 쏟아내는 기운이 그 한 그릇에 담겨있다!’는 환상을 품고서. 도쿄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달려 알 수 없는 역에 내렸고 다시 초록 전철로 갈아타 에노시마섬에 도착했다. 구글 지도는 좁고 스산한 시골길을 안내했다. 너무 조용해서 스슬거리며 움직이는 나뭇가지와 키킹하는 고양이 기침 소리까지 들렸다. 이런 곳에 멀쩡한 음식점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모르쇠로 덮어두고 10분정도 걷다보니 분사 식당이 나왔다. 아직 추운 겨울임에도 얇은 여름 커튼 사이로 해가 쨍하고 들어오는 곳. 주인장 할아버지는 담배를 잠시 재떨이에 꽂아두고 다가왔고 나는 메뉴판도 보지 않고 시라스동을 시켰다. 퀴퀴한 냄새와 끈적한 공간에서 마주한 시라스동의 맛은, 별로였다. 말리지 않아 눈이 더욱 검어 보이는 흰 멸치들이 한 접시에 빼곡히 죽어 있었다. 그릇은 관이요, 시라스동은 멸치의 합장이다. 그러다 보니 ‘인생이란....’으로 시작하는 주책맞고도 거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버지를 잃었지만 기쁜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스즈를 떠올리며, 주인장 할아버지 앞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데굴데굴 굴리는 손자를 보며, 시라스동을 꾸역 먹었다. 음식을 남길 기운이 나에겐 없으니까 그런대로 또 힘차게 먹었다.


*시라스동은 잔멸치덮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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