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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Nov 15. 2020

이 이상한 시간 또한 기억에 남겠지

11월 15일 : 자가격리 마지막날을 보내며

Dear diary.


그래. 이제 딱 하루 남았어. 내일 낮 12시. 시침과 분침이 숫자 12에서 겹쳐지는 순간 난 환호성을 지를 거야. 오랜만에 츄리닝 바지를 벗어던지고 청바지에 옅은 화장을 해야지. 그리고 이 네모난 방을 탈출해 바깥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다닐 거야. 오늘은 나의 자가격리 14일 중 마지막 날이야.


신기해. 태양이 뜨고 지면 또 똑같은 날이 반복되고, 그렇게 영원히 멈춰 있는 것만 같던 시간이, 사실은 쉬지 않고 태초의 그날과 같은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는 게.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리든, 시간은 공평하고 잔인하게 흘러온 거야. 14일 만큼의 나이를 더 먹은 거지.  


자가격리 덕분에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거, 정말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는 거, 나 태어나서 처음 해봤어. 아일랜드를 떠나기 전부터 자가격리하는 시간이 어떨지 상상하며 은근히 긴장도 되고 걱정도 했었는데, 자가격리 마지막날인 오늘 지난 2주를 돌아보니 나름 독특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하는 부자유의 시간인 동시에, 짜여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시간.

처음에는 아일랜드 시간에 맞춰져 있는 생체리듬을 한국 시간에 맞추려 애도 써봤는데 안 되더라. 새벽 네다섯시까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어. 그래서 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몸이 반응하는 데로 따르기로 했지. 정해진 스케줄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어. 자정이 될 때쯤 누워 잠을 청해 보다 정 잠이 안 오면 그냥 다시 일어나 잠이 올 때까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봤어. 아침 9시가 되면 햇빛에 눈이 부셔 저절로 잠이 깼지.

아침에 일어나면 요가를 하고 방을 정리한 후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주로 스페인어 공부와 친구들이 집으로 보내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어. 사이사이 존과 통화를 하거나 몇몇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 받고, 인터넷으로 궁금한 정보를 찾거나 지인들 SNS 피드를 훑어 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금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곤 했어. 마스크를 쓰고 식당으로 가 내 상을 차려서 방으로 가져와서 유튜브를 보면서 혼상을 했지. 가족과 한상에서 밥을 먹으면 안된다는 지침 때문에 엄마랑 같이 저녁을 먹지 못했거든. (이게 뭔가 싶게 우습고 슬펐지만 그것도 이제 오늘까지! )


저녁을 먹고 나면 알람이라도 맞춘 듯 '자가진단을 해야 할 시간'을 알리는 메시지가 떴어. 아침저녁 하루 두 번 체온을 재고 증상 여부를 체크해서 자가격리자안전보호앱에 등록해야 하거든. 한국 도착 당일 바로 코로나 검사를 받고 다음날 음성 판정을 받았는데도, 나중에 증상이 발현되기도 한다고 하니 첫주는 괜시리 조마조마하더라. 둘째주 접어드니 마음이 좀 편해지고 격리생활에도 나름 적응이 되어서 하루가 지루한 줄 모르게 빨리 흘렀어. 가장 힘들었던 점은 매일매일 얄밉도록 날씨가 좋았다는 거. 창으로 엿보는 파란 하늘과 울긋불긋 온통 가을색으로 물든 거리, 창틈으로 잠깐씩 맛보는 햇살과 바람.... 멀리 두고 온 연인처럼 가질 수 없고 만질 수 없어 애가 탔지. 그럴 땐 자가격리가 끝난 후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계획을 짜기도 하고, 곧 만날 친구들과의 시간을 상상하기도 했어. 그러면 아쉬운 마음이 조금 가시고 마음속에서 살랑이는 기대들이 부풀어 올랐거든.


캄캄해진 밤에는 침대 위에서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보거나 넷플릭스로 영화를 봤어. 그 사이 떠오르는 잡념들은 그냥 그렇게 서성이도록 내버려 두고서. 불쑥 미래에 대한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했지만, 그럴 때는 '한국에 머무는 시간 동안 혼자, 때론 좋은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면서 즐겁게 길을 찾아보자' 다짐하며 마음을 다독였어. 그리고 오늘은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며 밤을 지나고 있어.


내일 낮 12시. 자가격리가 종료되는 시간. 그게 뭐라고 이렇게 마음이 들뜨도록 기다려지는지! 12시에

이른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설 거야. 쌀쌀해진 늦가을의 공기를 마스크 사이로라도 마음껏 마시고 싶어. 코로나가 더 이상 번지지 않고 잦아들기를, 아일랜드에 있는 존과 전 세계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밤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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