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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참 어렵다

교묘한 악인은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by 유리멘탈 심리학자


선생님 그 사람 사진 보셨어요?



동네에 성범죄자가 이사 왔단다. 어린아이들이 많은 신도시라 그런지 엄마들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카톡으로 그 사람 사진이 공유되고 서로서로 조심하자 다짐한다. 나도 그 사진을 받았는데. 음. 성범죄자 알림 사이트에 사진이 뜨지 않았어도 길에서 마주쳤으면 흠칫 놀래 피할 인상이었다.


사람은 자기가 살아온 인생 그 모습대로 인상이 남는다는 말이 있다. 느낌이라는 게 있다. 으스스한 아우라, 날 선 눈빛, 거친 행동과 말투 등등. 인간의 행동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어떤 상황이든 일관적으로 악의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대처하기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조심하고 멀리 도망가거나 피해 가면 된다. 되도록이면 멀리멀리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내 일상생활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초토화시켰던 성격장애자들을 몇 번 마주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숨도 안 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다. 그렇게 난 그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병리적인 진단기준에 딱 들어맞는 사람들이 우리 일상 속에서 드물지만 같이 생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거듭 강조하지만 도망가야 한다.


하지만 인간사가 그렇게 단순할리가. 사람은 엄청나게 복잡한 존재다. 그래, 완전히 아닌 사람과 악인은 걸러낸다 치자. 그런데 내 일상에 가장 크게 영향주는 빌런은 타고난 악인도 정신병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 진짜 교묘한 빌런의 경우는 정말 평범한 보통 사람의 모습일 수 있다. 나의 경우 어디에선가 마주칠 법한 평범한 인상이 나중에 보면 제일 위험했었다. 그런 얼굴로 우리나라 서민들이 느낄법한 정서를 솔직 담백하게 얘기하며 접근한다. 너무 처절하게 고통스럽고 가난한 얘기를 하면 오히려 공감이 어렵고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막 그렇게 마음이 쉬이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백하게 얘기할 때 마음이 확 무너졌었다.


아픈 사랑을 끝내고 상처투성이인 채로 본가로 돌아와 엄마가 해준 따스한 흰밥에 갓한 겉절이를 먹으며 눈물이 차올라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밥을 넘겼던 경험, 넉넉하지 않은 집안 환경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던 알바를 하며 그래도 자기가 처한 환경 탓하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산 과거, 어렸을 때 가족들과 가까운 곳에 놀러 갔던 소중한 추억, 먼 곳으로 이민 와서 더 이상 자주 볼 수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 90살 노모와 반려동물과 같이 살며 더 바라는 것 없이 노모가 그저 건강하게 조금 더 사셨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 등 이런 평범하지만 지극히 서민적이고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얘기에 상대방은 마음이 활짝 열리고 내 경계를 무너뜨렸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에 나중에 알고 보니 나르시시스트들이 꽤 있더라. 교묘한 악인들이라고나 할까. 이런 이들은 상대방의 감정 조절에 능통해 상대방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마구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경계가 허물어져버렸으니 그 후에는 감정적으로 속수무책당할 수밖에. 차라리 처음부터 선하고 좋은 모습으로 연기했으면 이 사람이 뭔가 꿍꿍이가 있나 보다 싶어 경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못돼 처먹은 본성과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포장해 버리면 속기 쉽다. 그렇다고 딱 정신병자라고 하기에는 또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애매하게 진단기준에 안 걸린다고 할까나.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딱히 도적적으로 썩었다는 범주에 들지는 않는 애매한 악인들이 정말 대처하기 어렵다. 이런 부류들은 꼭 이러더라. 내 약점을 들었다 꼭 기억해 나중에 상황이 변했을 때 공격하거나 나와 늘 비교하고 공격했다. 대화는 늘 하소연, 신세한탄이고 남 험담 일색이다. 나도 처음에는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 잘못된 점을 좋게 타이르고 얘기해 줘도 변화 없이 반복되는 도돌이표에 질려버렸다. 내 골수까지 쪽쪽 빨아 먹히는 기분이랄까. 우리 일상생활에서는 아마 누가 봐도 대놓고 악인보다는 이런 빌런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물론 평범한 모습으로 다가와 내 심리적 경계를 허물고 확 친해지려는 사람들이 다 빌런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시작한 관계가 좋게 좋게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종종 보통 사람의 가면을 쓰고 타인의 삶에 마구 쳐들어와 자기 사람이 됐다 싶으면 그때부터 가면을 벗을 때가 있었다. 그 가면을 일단 벗으면 내 몸에는 이미 심리적인 갈고리가 걸려있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아무도 믿지 않고 철벽치고 사는 것도 답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관계에서 얻는 행복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행복을 얻으면서 먼저 나 자신을 확실히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보호해야 한다. 이 악물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가 어떤 모습의 사람에게 경계가 확 무너지는지 취약한 부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 또한 내 사적인 일상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던 정신병리에 대한 지식을 좀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주 오래전 정신병리에 대해 처음 배울 때 교수님은 이 정신병리 진단기준은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이지 남을 비난하는 데 사용하는 수단이 아니라고 그 용도로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 가르침을 신념 삼아 미련하게도 강박적으로 지켜온 것이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딱히 타인을 까내리기 위한 용도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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