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세종 어디서 살아야 할까?

결혼을 준비하던 5년 전, 나의 선택에 대하여

by 쓰는 유진

서울과 세종 어디에 집을 구해야 할까?


5년 전 결혼을 준비하면서 어디에 집을 구해야 할까?라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저는 서울에서 일하고 남편은 세종시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장거리 연애하는 동안 두 도시의 애매한 물리적 거리를 체감했기에 더 어려웠어요. 서울과 세종 사이에 있는 도시(예를 들면, 천안)에 살아야 할까? 그래도 둘 중 한 명은 직장과 가까워야 하지 않을까? 주말부부로 두 집 살림을 할까? 우리는 두 집 살림을 할 돈이 있나? 등을 고민했죠.


결론은, 적어도 신혼은 같이 살아보자! 였습니다. 남편은 출퇴근 시간이 오전 9시 - 저녁 6시로 고정되어 있고, 저는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보다 유연하게 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세종시에 집을 구하고 제가 세종-서울 출퇴근을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지 않아도, 각자 소중히 여기는 일과 일상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균형을 잡아가며 신혼 생활에 정착해갔습니다.


기획재정부 바로 앞 아파트가 첫 신혼집. 꺼지지 않는 기재부 불빛 그리고 불꽃놀이 명당이기도 합니다요.



세종시에 신혼집을 구한 이유


1. 주말부부가 싫어서

단순합니다. 주말부부는 하기 싫었어요. 독립은 하고 싶었고요. 주말부부를 하게 되면 주중은 부모님 댁에서 지내거나 원룸을 구하는 방법이 있어요. 신혼부터 주말부부를 할 계획이었다면 결혼 시기를 조금 더 늦췄을 것 같아요.

2. 서울 집값 vs 세종 집값

세종시가 서울보다 집값이 덜 부담되거든요. 2015년 당시 기준으로 정부청사 근처 아파트 전세 가격은 30평형대 1억 5천만 원 정도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저희는 공무원 임대 아파트를 구해 살아서 훨씬 저렴한 가격 집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생활 물가는 서울보다 비싼 느낌이에요. 서울에 살 집을 따로 구하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이 서울에서 살고 계시기 때문에, 일 때문에 서울에 있어야 할 때 저는 부모님댁에서 지내고요.


3. 재택근무 / 유연한 출퇴근이 가능한 직장

직장에서 유연근무제를 시행했어요. 제가 일했던 곳은 오전 10시까지 출근해도 되는 탄력출퇴근제를 시행 중이었어요. 하루 8시간 근무 시간을 채워야 한다면 저녁 7시에 퇴근해야 되었겠지만, 저는 오후 6시쯤 퇴근하고 잔업은 KTX나 집에서 하는 것도 이해해주셨어요.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주 1회 재택근무/원격근무도 가능하게끔 근무 조건 협상도 가능했구요.

KTX에서 일할 때의 모습 - 3단 레이어 (노트북 충전기 + 핸드폰 & 포켓파이 충전기 + 이어폰)


4. 개인적 기질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거의 다 서울에 있다 보니 세종 주민이 된다는 건 무척 외로운 일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어릴 적에 아버지 직업 때문에 거의 1년에 한 번씩 이사/전학을 다녀서, 연고 없는 지역에서 적응하는 것에 대해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지내며 이민자 가족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세종시가 그런 느낌이 나요. 뿌리 뽑혀 온 사람들이라고 쓸쓸하게 표현하지만, 여기서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을 만나며 금방 결속되기도 해요.

5. 정착지가 아닌 정류장
평생 세종에 있을 건 아니란 생각도 해서요. 내 집은 어디든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해요. 내 집은 서울이 될 수도, 세종이 될 수도, 어딘가가 될 수도. 그래서 세종시에 어떻게 잘 정착할 것인가에 대해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의 인생 계획에 따르면, 남편이 바톤터치할 날이 올 거고요? :)




선택과 집중 그리고 포기


제 주변에 배우자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친구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고 종종 왜 세종시에 사느냐란 질문 뒤에 "신랑 따라갔구나" "네가 남편을 위해 희생했구나"라는 살짝 서글픈 말을 듣기도 하고요.


저는 꼭 누구를 따라서 이곳에 온 것만은 아닌데. 아닌데 맞기도 한, 그 미묘한 차이가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저에게 세종에 사는 것은 여러 요소들을 종합해 봤을 때, 최선의 선택지 조합이었어요. 결혼 전에는 2D 차원에서 2-3개의 점을 잇는 의사결정이었다면, 결혼 후에는 3D 차원에서 5개의 점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만드는 의사결정이란 것이죠.


서울에서 일하고 세종에서 사는 것은 여러 가지 삶의 가치들을 '저글링'하는 것 같아요. 진짜 저글링과 다른 점은 모든 공들이 다 똑같은 무게와 질감은 아니라는 점이죠. 저와 남편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모든 일을 다 해내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인생의 이번 시즌에는 어떤 일은 의도적으로 한쪽에 제쳐두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덜 중요한 것들은 편하게 포기하기로 했어요. 가령 대중교통비 같은 것이죠 (후후) 대신, 저는 제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경력 자산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미뤄두거나 포기하기로 내린 결정이 영원할 필요도, 영구적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삶의 어떤 구간에서 끝이 올 거니까요.


애정 하는 <그레이 아나토미> 제작자 숀다 라임스는 한 인터뷰에서 ‘포기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요즘 운동을 안 하고 있지만 그걸로 죄책감을 느끼진 않습니다. 아마 나중에는 죄책감을 느끼게 될 테지만요”라고 답했다고 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네요.



다시 5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음....


물론, 이 생활에 현타가 올 때가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때가 연말정산 시즌입니다. 대중교통비가 따로 계산돼서 항목 나오잖아요. 신혼 첫 해에는 거의 매일 열차로 출퇴근했고 교통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나 요령도 없던 때라 500만 원이 찍혔더라고요. 그래서 저 스스로도 굳이 이렇게 까지 일하면서 세종에 살아야 하나? 다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어요.


결혼 생활 5년 중 첫 1년은 매일 출퇴근을 하고, 다음 1년은 주말 부부를 했고, 일주일의 반만 출근할 때도, 100% 원격근무를 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종에서 직장을 구했던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소명 의식, 일의 의미를 따지는 까다로운 사람이라 쉽게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어요. 솔직하게는 나 스스로와 타협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고요.


퇴사 후, 매일 같이 자전거를 타고 세종호수공원으로 나가, 책을 읽으며 번민을 다스렸던 시간


그렇게 한 번의 경력 전환 시기에 ‘결국 어느 한 명은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직장도 서울에서 구했습니다. 한 명의 전적인 포기나 희생 없이, 둘 다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이런 생활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든 최선의 선택의 조합을 만들어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친구들이 주변에 생기더라구요. 끈질김이 전우애를 선물해주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남편처럼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힘들었을 거예요. 가치라는 추상적인 언어를 일상적인 삶, 행동, 습관으로까지 현실화하는 것은 정말 큰 에너지가 필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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