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9
예전에 내게 시간을 갖고 거리 두기를 원했던 후배가 있는데, 그녀에 따르면 내가 그녀에게 상처가 된다고 했다. 그녀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족한 생활을 어릴 때부터 누려왔는데 행복하지가 않다고 한다. 그녀는 능력 있고 미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다 돌아온 재원이다. 다만 나이가 차서까지 제대로 연애를 못하고 있긴 했다. 딱히 사이가 나빠질만한 이유는 못 찾겠는데 내가 상처가 된다니 괜찮아지면 보자 했고, 그런 말로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그녀가 한편 훌륭하게 여겨졌다. 다음 친구 결혼식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스스럼없이 인사하고 대화했지만, 아마 그 이상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여튼 그녀는 내게 자신의 불행을 얘기하며 샤넬백이 가지고 싶으면 그냥 가서 집어 오면 된다고 한다. 그게 자기의 불행이라고.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정말 그래본 적이 없어서인지 그게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모르겠노라고. 나는 정말 그녀의 어려움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그게 그녀에게 상처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주 솔직하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늘 말했다.
문득문득 그녀를 떠올리긴 했지만, 연락 없이 거의 5년이 흘렀다. 그런데 이제 그녀의 말을 조금씩 이해하겠다. 내가 돈이 많아져서 그걸 가슴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그녀가 하려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그 말자체를 조금 알겠다는 거다. 가끔 부잣집 따님들이 하는 얘기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나는 그런 걸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다. 또 너무 가난해 본 적도 없기에, 사실 너무 가진 게 없는 이들도 이해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요즘 생각하는 건 메타인지가 제대로 발동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능력과 나의 꿈] 사이의 괴리보다 [나의 능력과 나의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더 큰 혼란을 느낄 거란 거다. 그냥 가지고 싶어 떼를 쓰는 수준에 머무는 사람은 느끼지 못할 혼란이다. 그들은 메타인지가 부족하다. 나의 4세 딸이 그러하듯이.
가난한 집에서 아주 공부를 잘했던 우리 부모님은, 어서 돈을 벌기 위해 선생이 되어야 했다.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라 월급쟁이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더 큰 부를 축적했을 텐데, 조금 아쉬운 선택이지만( 내가 왜?!). 여하튼 열심히 쌓으신 덕에 딸 둘에 타시던 아반떼 한 대씩을 물려주셨다. 내가 엄마가 출퇴근용으로 쓰시다 물려받은 아반떼가 저 녀석이다. 엄마는 의사가 된 두 딸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 세대는 불행한 세대다. 노력으로 제 집하나 사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다. 너희가 불쌍하다."
그 말을 그대로 기억하고 있다가 가끔 곱씹으면 씁쓸함이 밴 깊은 맛이 나는 것 같다.
사실 내 손톱 밑 가시는 내 후배의 공허함보다는, 나의 능력과 나의 현실 사이의 괴리에 가깝기 때문인지, 그 후배 생각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