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인천 26센터 첫째 날 - 1
‘주말에 쿠팡 알바를 나가봐야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백수도 아니고 멀쩡히 회사 잘 다니고 있는데 무슨 주말 알바인가 싶겠지만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그동안 너무 나태하게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 정신 무장이 좀 필요했다. 주로 사무실에 혼자 앉아 일을 하면서 편안함에 익숙해져 버렸달까. 그리고 최근 몇 년간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체력이 좀 떨어졌던 터라,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을 좀 해보고 싶었다. 또한 살을 좀 빼야 할 필요를 느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살을 빼시는 게 도움이 됩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으니까. 아아, 좀처럼 줄지 않는 비루한 몸뚱어리의 무게여...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투잡, 쓰리잡을 뛰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교육비니 생활비니 하며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게 점차 많아지면서 조금씩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엔 이런저런 곳에서 돈을 헐어 썼지만, 이런 생활이 조금만 더 이어지면 그땐 정말 위험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모아둔 돈도 딱히 없는데, 갑자기 중학생 1학년인 큰 아이가 여느 천재들이 그러했듯 월반하여 이른 나이에 대학에라도 들어가면 등록금부터가 걱정이 될 지경이다. 물론 이런 애비의 고민을 알고 있는 것인지 다행히도 큰 아이는 천재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을 보이며 오늘도 게임에 몰두하고 있지만 말이다.
살아오면서 이렇다 할 알바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다만 사회생활을 좀 일찍이 시작한 편이었다. 이십 대 초반 친구들은 모두 군대를 갔을 때 방위산업체로 전화기를 만드는 공장에 들어가 어린 나이에 월급의 맛을 보았다. 24개월만 근무하면 공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음에도 그곳에서 4년 가까이 생활했다.
공장을 나온 이후로도 한 1년 정도 놀고 줄곧 일을 했으니, 아르바이트 경험만 많이 없을 뿐 사회생활은 꾸준히 해온 셈이다. 그러다가 사십 대 중반 쿠팡 일용직 알바를 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버린 것이다. 정신 무장을 좀 하려고. 체력을 좀 키우려고. 살을 좀 빼려고. 그리고 돈을 좀 벌어보려고.
최근 쿠팡에서는 이런저런 사회적인 사건사고 문제가 있었지만, 이곳에서 그런 이야기는 차치하기로 하자. 그저 투잡으로 돈 좀 벌어보겠다는 일개 일용직 희망자에게 그런 거대 담론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렴.
쿠팡 알바에 나가기 전에 쿠팡에서는 대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봐야만 했다. 인터넷에서 돈은 잘 주지만 일은 힘드니까 도망치라는 후기를 몇 번 본 적 있는데, 도대체 얼마나 돈을 잘 주고, 얼마나 일이 힘들기에 이런 후기가 올라오는지는 좀처럼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전에 쿠팡 알바 지원은 어떻게 하는지 먼저 살펴보았는데, 아예 쿠팡 알바 지원 전용 어플이 있고, 또 그런 알바들을 물류센터까지 데려다주는 셔틀버스 어플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안내를 해주니, 일하고자 하는 물류센터를 선정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대기업은 다르구먼!
그렇게 휴대폰을 열어 쿠팡 알바 지원 전용 어플 ‘쿠펀치’를 깔았다. 어플 사용법은 어렵지 않았다. 회원 가입을 하고, 업무 신청 버튼을 누른 후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 원하는 근무 센터를 누르면 업무 ‘확정’과 ‘반려’로 그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셔틀버스 정류장을 보았더니 고양 물류센터 행이었다. 12월 13일 토요일 고양 물류센터 오후 조에 지원 버튼을 눌러보았는데, 반려가 되었다. 물류센터 알바를 할까 말까 꽤 긴 시간을 고민하다가 나름 큰마음을 먹고 지원을 했는데 반려가 되니 허탈해졌다. 무엇보다 그동안 글을 쓰고 출판사에 보내면서 수많은 ‘반려’ 메일을 받았는데, 이곳에서조차 반려를 받는가 싶어 져, 순간 서러움이 몰려왔다. 반려... 그것은 확실히 서러움을 부르는 단어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쿠팡 알바를 해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못 하게 되니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집에서 다음으로 가까운 셔틀 정류장을 보니 인천26센터 행이었다. 근무 시간은 역시나 오후 조.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의 업무. 업무 지원을 해보았는데 밤늦게까지 확정과 반려 연락이 없었다.
아내에겐 이번 토요일부터 쿠팡 알바를 나가겠다고 말해두었던 참이었다. 아내는 좀 덜 쓰면서 지내면 되지 무슨 알바냐고 하면서도, 쿠팡에서 연락이 없다고 하니 주말에 애들 데리고 나가서 밥이나 먹고 오잔다. 이것 봐, 집에 있으면 나가서 돈이나 쓰지.
쿠팡 알바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나름의 경쟁이 있구나, 이번 주말엔 마음먹었던 일을 못 하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쿠팡에서 카톡 연락이 왔다.
‘인천 26센터 오후 조 입고 출근확정.’
카톡이 온 시간은 새벽 두 시였다. 쿠팡은 낮이고 새벽이고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업무 확정 연락을 받고 셔틀버스 탑승권 신청까지 했다. 이제 잠을 자고 일어나 오후 4시 20분까지 셔틀버스 정류장에 가서 물류센터행에 몸을 실으면 생애 첫 쿠팡 알바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다음날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마음이 들면서도,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에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아, ‘쿠팡 알바’ 그것은 알바 경험이 많지 않은 사십 대 중반 아저씨인 나에게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