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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잌 Oct 16. 2023

영화 <친구>에 대한 이야기

사실 진 주인공은 동수가 아닐까?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다. 사실 그동안 그렇게 바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딱히 글을 쓰고 싶은 맘이나, 갑자기 뭔가 끄적이게 만드는 계기 같은 것이 안 생겨서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5개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새삼 시간이라는 게 참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어쨌든 방치를 넘어서 유기의 위기였던 나의 브런치 계정을 심폐소생 시킨 것은 나른한 3일 연휴 동안 소파에서 뒹굴거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2개의 유튜브 영상이었다.


첫 번째 영상은 이동진 평론가의 파이아키아 채널에 올라온 "한국 갱스터 조폭 영화 베스트"라는 영상이었다. 나는 종종 내 글에 이동진 평론가를 언급하곤 하는데, 그를 굉장히 좋아하고 그의 영화 평점과 한줄평을 많이 신뢰하는 편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좋은 점수를 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만약 그가 별 다섯 개를 준 영화가 있다면 딱 봐도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일단 무조건 한 번 볼 정도로 (예상대로 <애프터썬>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근데 나는 주로 그의 글만 읽고 영상은 거의 보지 않는데, 이번에는 영상 썸네일이 너무나 나의 눈길을 잡아끌어서 도저히 클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조인성 배우와 영화 <비열한 거리>, 그리고 이병헌 배우와 영화 <달콤한 인생>을 정말 좋아하는데, 마침 그 두 배우가 이동진 평론가 양 옆으로 딱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추가로 내가 툭하면 친구들과 성대모사하고 노는 명대사들로 가득 찬 윤종빈 감독님의 <범죄와의 전쟁>까지? 말 그대로 이건 못 참지.

나의 눈길을 한 눈에 사로잡은 영상 썸네일

TOP 7은 <폭력써클>을 제외하고는 내가 평균 10회 이상 시청한 영화들로만 가득 차 있었고, 한국 갱스터 영화를 논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영화이자 오늘 이 글의 주제인 <친구>가 가장 먼저 언급되었다. 영상은 물론 아주 재미있었지만, 여러분이 언젠가 직접 보실 수 있도록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두 번째 유튜브 영상과 관련된 부분만 간략하게 언급하고 영상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리스트에 선정된 영화들에 대해선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 영상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친구>의 플롯이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제목이 너무 길어서 앞으로 <원어아>로 지칭하겠음)와 매우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 말이 되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친구>는 최소 10회 이상 시청했고, <원어아>도 아주 오래전이긴 하지만 본 적이 있는데 딱히 그렇게 느꼈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자란 네 명의 친구들이 성인이 되어 갈등이 생기는 구조가 동일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한 동네(주로 뉴욕)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주로 4명)이 성인이 돼서 다시 만나는 설정은 헐리웃에서 꽤 흔한 편이다. 영화 <슬리퍼스>만 해도 뉴욕에서 자란 4명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오히려 <슬리퍼스>는 4명의 친구 중 2명이 갱스터인 부분에서 <원어아>보다 더 <친구>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어쨌든 이동진 평론가가 <원어아>와 <친구>의 유사성을 언급하는 바람에 <원어아>에 흥미가 생겨 바로 웨이브에 검색해 봤는데 3시간 48분이라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을 보고 조용히 웨이브를 껐다.  


그리고 며칠 후 <친구>도 <원어아>도 모두 까맣게 잊고 한가롭게 야구를 보고 있던 도중, 앞서 말한 오늘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제공한 두 번째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마침 야구가 좀 지루해지던 참이었는데 단톡방에 <이서진의 뉴욕뉴욕 2> 영상이 재밌다고 올라와서 바로 클릭해 봤더니 공교롭게도 거기서도 이서진 배우가 <원어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꾸 듣다 보니 관심이 커져서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이후 약 4시간 동안 <원어아>를 시청했다.

뉴욕 여행시 필수 코스인 브루클린 브릿지와 “덤보”를 유명하게 만든 바로 그 포스터

<원어아>는 확실히 잘 만든 영화다. 특히 로버트 드니로와 제임스 우즈의 연기가 매우 훌륭했고, 약간 <대부 2>와 비슷한 느낌을 내려한 티가 확연히 느껴지는 (영화 포스터의 제목 폰트도 약간 대부의 The Godfather 폰트를 연상시킨다) 몇십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스토리 역시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보니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친구>와의 유사성 역시 훨씬 와닿았다. 다만, 영화가 길어도 너무 길고, 마찬가지로 3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흡입력을 잃지 않는 <대부 2>에 비하면 솔직히 좀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꽤 많다. 그리고 <원어아>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이제 <친구>를 다시 봐야겠다"였고,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친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하다 보니 오늘 글의 주인공인 "동수" 이야기까지 오는데 참 오래 걸렸는데, 막상 뭔가 쓰기 시작하니까 신나게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나를 보니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나름 글이 고팠나 보다. 하튼 이제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앞서 이미 언급했다시피 나는 <친구>를 이미 10회 이상 시청했을 정도로 이 영화를 사랑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남자들만의 진한 우정과 의리에 열광하는데, 나 역시 예외는 아니며, 거기에 난 어린 시절이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영화에는 완전 쥐약이다. 거기에 복고풍이지만 감각적인 영상미와 쉼 틈 없이 터지는 명대사들까지 갖춘 <친구>는 단연 나의 최애 영화 중 하나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영화 <친구>는 부산에서 함께 자란 4명의 불알친구들의 이야기인데, 네 친구들의 유년 및 학창 시절을 다루는 영화의 전반부까지는 4명의 비중이 거의 비슷하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의 후반부부터는 화자인 "상택"(서태화 분), 그리고 개그를 담당하는 감초역에 가까운 "중호"(정운택 분)의 비중이 확 줄어들고 주로 "준석"(유오성 분)과 "동수"(장동건 분) 위주로 스토리가 진행되며 갱스터 영화의 느낌을 제대로 뿜어내기 시작한다.


사실 이 영화가 20년도 더 전에 처음 개봉했을 때 곱상한 도련님, 실장님 같은 역만 주로 맡던 꽃미남 장동건 배우의 조폭 연기 도전이 큰 화제가 됐었고, 그의 "동수" 연기 역시 매우 호평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니가 가라 하와이"와 "마이 뭇따 아이가, 고마 해라" (왠지 다들 "고마 해라, 마이 뭇따 아이가"로 기억하는데 실제 순서는 그 반대이다) 모두 "동수"의 대사들이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바로 "준석" 역의 유오성 배우였다. 유오성 배우의 카리스마 넘치고 진짜 조폭으로 오해할 정도의 리얼한 연기도 물론 큰 몫을 했지만, 사람들이 가장 남자답고, 가장 의리 있고, 가장 (깡패나 양아치가 아닌) 진짜 "건달"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준석"이라는 캐릭터에 너무나 열광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준석"이란 캐릭터가 가장 멋지다고 느껴졌고, <친구>는 "준석"이 주인공인 영화라고 늘 생각해 왔었다.

"마이 뭇따 아이가, 고마 해라."

그런데 이번에 <친구>를 다시 보면서 처음으로 이 영화는 사실 "동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부터 천천히 내가 그렇게 느낀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공감하시는 분이 계실지는 의문이지만. 먼저 영화는 어린 "준석"이 부산에서 유명한 건달인 그의 아버지와 식사를 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집밖으로 찾아와 놀자고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 첫 장면부터 왠지 "준석"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곧 이어서 4명의 친구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하나의 튜브에 매달린 채로 옛날에 "아시아의 물개"라고 불렸다고 하는 유명 수영 선수 조오련과 바다 거북이가 수영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지 말다툼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확히는 "중호"와 "동수"만 다투고 "준석"과 "상택"은 거의 듣기만 한다), 이 유치하지만 귀여운 "조오련 vs 바다 거북이" 논쟁은 네 친구들의 유년 시절 전체를 한 장면에 함축하고 있는 매우 상징적인 기억이자, 그들의 유년 시절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기억은 영화 내내 네 친구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동수"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그리워할 때 여러 번 다시 언급된다.


어쨌든 영화는 논쟁의 결말을 보여주지 않은 채 바로 이들의 고교 시절로 넘어가면서 슬슬 "동수"와 "준석"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네 친구들은 초등학교 (당시에는 국민학교) 때까지는 매일 바닷가에서 함께 뛰어놀며 가깝게 지내지만, 서로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이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기간은 따로 보내게 되는데, 이 3년이라는 중학교 시절이 이들의 관계를 어린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지게 만든다.


준석의 가장 친한 친구는 과연 누구인가?


영화를 보면 "준석"은 왠지 모르게 친구들 중 "상택"을 가장 좋아하고 각별히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상택"은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웃기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끄는 "중호"나, 싸움이 터졌을 때 "준석"과 함께 다른 친구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동수"에 비해 딱히 무리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없다.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오히려 샌님에 가까운 소심하고 겁 많은 학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석"은 항상 친구들 중 "상택"을 제일 챙기고, 그의 말은 진지하게 듣는 편이다. 심지어 가끔 "상택"이 선 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해도 평소의 그답지 않게 다 그냥 넘어가준다 (예를 들어 “도루코” 집에서 욱해서 음악을 꺼버리는 장면이나 "준석"이 건달 철학에 대해서 설명할 때 "느그 같은 건달들은 결국에는 깡패새끼“라고 하는 장면). 가장 같이 붙어 다니고 싸움도 거의 본인만큼 잘하는 "동수"는 조금만 대들어도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죽고 싶나?"라고 하면서. "상택"이 "준석"에게 미안함을 표할 땐 항상 "아이다, 친구끼리 미안한 게 어데 있노 (혹은 미안한 거 없다)"라는 한마디로 끝인 것과 너무나도 대조된다.


반면, "동수"와 "준석"의 관계는 보다 복잡하다. "준석"은 결코 "동수"를 "상택"과 동일하게 대하지 않으며, "동수" 역시 "준석"에게 묘한 라이벌 의식과 뿌리 깊은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 늘 "준석"이 싸움을 더 잘했고, 학교의 "통"이었으며, "동수" 본인 스스로도 자기가 예전에는 "준석"의 "시다바리"였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에 대한 열등감을 드러낸다. 내가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인 영화표 내기로 "Bad Case of Loving You"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자갈치 시장을 달리는 씬만 해도, "동수"는 죽을힘을 다해 "준석"을 쫓아 뛰고 몇 차례 바로 근처까지는 가지만 결국에는 간발의 차로 2등으로 도착하는데, 이 장면은 이후 닥칠 비극에 대비되는 이들의 학창 시절의 몇 안 되는 즐거운 추억임과 동시에, 한 번이라도 "준석"을 이기고 싶어 하는 "동수"의 간절함과 라이벌 의식을 보여주는 명연출이라 생각한다.


이후 "준석" 아버지 장례식에서 처음으로 "동수"와 "준석"이 친해진 계기가 언급되는데, "동수"는 자기가 5학년 때 자기를 놀리던 중학생 "연탄집 명길이"를 "준석"이 대신 혼내주었고, 본인 입으로 그때부터 그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작 "준석"은 단순히 "그랬나?“라고만 하며 ("동수"에게는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이게 "동수"에게 "준석"은 동경의 대상임을, 그리고 "동수"의 "준석"에 대한 마음이 "준석"의 "동수"에 대한 마음보다 큼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 모두가 한눈에 반한게 납득이 갈 만큼 매력적으로 나오는 진숙

이 외에도 영화 내 "준석"의 행동을 보면 "동수" 입장에서 서운하게 느낄만한 부분이 참 많은데, 특히 "진숙" 관련해서 가장 섭섭할 듯싶다. 故 김보경 배우가 연기한 "진숙"은 7인조 그룹사운드 (개인적으로 이 용어가 너무 올드해서 웃기다) “레인보우"의 보컬로 "연극이 끝난 후"를 부르며 처음 등장하는데, 카메라는 그녀를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는 "상택", "준석", "동수"의 얼굴을 순서대로 클로즈업으로 잡으며 셋이 모두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준석"은 "동수"도 그녀를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대놓고 날라리인 "진숙"은 같은 날라리인 "동수"와 훨씬 잘 어울릴 법한데도, 그녀를 "동수"가 아닌 "상택"과 이어주려 한다. 이어서 본격적인 대립 구조가 만들어지는 성인 시절 전까지 유일하게 "동수"가 "준석"에게 화를 내며 대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준석"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동수"에게 화를 내며, 이 일은 앞서 말한 "동수"의 뿌리 깊은 열등감과 라이벌 의식에 불을 붙여버리게 된다.

한눈에 진숙에게 반한 세 친구

하지만 나는 "동수"가 화를 낸 게 단순히 "진숙"을 빼앗겼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수"의 입장에선 자기가 동경하고 본인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라 생각하는 "준석"이 자기보다 "상택"을 선택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영화를 보면 "동수"는 "준석"에 비해 "중호"나 "상택"은 그렇게 막역하게 대하지 않는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상택"을 향한 미묘한 적개심이나 거리감이 많이 느껴지는 편이다. 그리고 극 중에서 "동수"와 "상택"이 둘이서 대화를 하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다 보니, "동수"는 사실 "상택"을 본인의 "친구"가 아닌 친구인 "준석"과 "중호"(그나마 "중호" 이야기에 웃는 장면은 꽤 나오고 "조오련 vs 바다거북이" 논쟁도 "중호"와의 일이다)의 친구 정도로만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모두 사실 별로 친하지 않은데 함께 엮인 친구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자주 같이 보게 되는 친구들이 한두 명씩은 있잖은가. 하지만 "동수"가 마지막에 공항으로 "상택"의 배웅을 가려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 "동수" 역시 복잡한 감정이긴 해도 "상택"을 본인의 친구라 생각한 것으로 보이긴 한다.


다시 "준석"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준석"이 "상택"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챙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반드시 "상택"이 그의 가장 친한 친구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준석"이 "동수"의 동경의 대상인 것처럼, "준석"은 "상택", 혹은 그와 같은 평범한 학생으로서의 삶을 동경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건달 집안에서 깡패 삼촌들 사이에서 자란 "준석"은 적당히 화목한 일반 가정에서 성실히 공부하고 어긋난 길로 가면 따끔하게 혼내주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상택"을 부러워했으며,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상택"의 순수함과 모범생으로서의 창창한 앞날을 지켜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영화 막바지에 나오는 "준석"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준석"은 고등학교 때 패싸움 사건 이후 가출하자고 찾아온 "상택"을 돌려보낸 일을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솔직히 그때 본인이 "상택"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타고난 보스 기질과 싸움 실력 및 족보로 인해, 그리고 그가 원하던 선량한 학생의 길로 그를 이끌려한 "상택"의 노력 및 다시 복학해서 성실히 학업을 마치려던 그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앞서 "상택"에게 누군가를 조질 일이 있을 때 확실히 조져 두지 않으면 분명히 나중에 해가 된다고 경고했던 바로 그런 우려가 현실로 되어 버리면서 결국 "준석"은 그의 아버지처럼 건달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 "동수"는 본인의 의지로, 장의사인 그의 아버지처럼 평생 죽은 사람 몸이나 닦다 죽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건달 세계로 들어가는데, 서로 반대파 조직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두 친구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이 영화에서 모든 것이 "준석"이 1등이고 "동수"보다 먼저이듯이, 먼저 건달 세계로 입문하는 것도 "준석"이고,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건달이던 아버지의 직계이자, 정통 건달에 가까운 조직에 들어가는 "준석"과 달리, "동수"는 어린애들한테도 약을 파는 양아치란 소리를 듣고, 오야붕 본인 입으로 2등이라 시인하는 조직으로 들어간다.

"라이벌" 건달이 아닌 "친구"로서의 마지막 진솔한 대화 이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동수. 다시는 친구 사이로 되돌아 올 수 없는 길로 떠남을 표현하는 연출이 일품이다.

동수가 준석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이 영화의 진 주인공인 이유


이후 "동수"와 "준석"의 조직은 공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는데, 각자의 조직에서 중간 보스 역할을 맡고 있는 두 친구는 필연적으로 자주 부딪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오해가 발생한다. 특히 "동수"의 밀고로 "준석"의 보스가 체포되면서부터 두 조직 사이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게 되는데, 복수심에 불타는 조직원들이 "동수"에게 해코지를 하려 하자 "준석"은 이를 단번에 일축해 버린다. 표면적으로는 "동수"와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부모님 장례식을 잘 치러준 것에 대한 감사함 때문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동수"가 염을 해준 것도 아니고, 그의 아버지의 경우 단순히 자신의 일을 한 것뿐이며, 사실 "준석"은 그냥 친구인 "동수"를 보호해주고 싶은 것이다. 건달로서 의리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목숨처럼 중요시하는 "준석"이 자신의 조직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라이벌 조직원을 용서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만큼 "동수"를 아끼고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사실 여기서 멈추기만 했어도 두 친구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텐데, 분을 참지 못한 "준석"의 오른팔 "도루코"가 독단으로 "동수"를 치면서, 두 사람 간의 관계는 절대로 봉합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악화된다. 특히 전후사정("준석"은 오히려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을 모르는 "동수" 입장에서는 "준석"이 지시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비록 대립 관계이긴 하지만 본인이 가장 친한 친구라 생각하던 "준석"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엄청나게 서운하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비교적 냉소적이고 차분한 성격의 "동수"가 냉동창고에서 "준석이는 어데 있노?" 물으며 "도루코"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보면 감정이 매우 많이 실려있는 것이 느껴진다. 참고로 "도루코" 살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드라마틱한 배경음악과 함께 "준석"이 인턴 사원들을 교육하고 있는 장면과 "동수"가 "준석"이 인턴 사원들에게 강의한 내용 그대로 최대한 몸에 칼이 들어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칼을 90도로 비틀며 "도루코"를 확실히 살해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는 연출이 아주 기가 막히다.


보스 밀고까지는 어떻게든 용서하려 노려했던 "준석"이지만, 자신의 오른팔이기도 하고 함께 지낸 시간으로 따지면 "동수"와 나머지 친구들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사이인 "도루코" 살해는 "준석"에게도 상당히 참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석"은 "동수"에게 자신들은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건달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한 번도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며 마지막까지 그에게 기회를 주고 어떻게든 살리려 한다. 사실 "준석"이 홀로, 그것도 맨몸으로 나이트클럽에 "동수"를 찾아갔을 때 그는 "동수"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준석"이 (충분히 자신의 조직원들을 총동원해 "동수"의 조직을 공격할 수도 있었음에도) 반드시 “동수"를 살리고 싶은 그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그곳에 간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준석"에게 "동수"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친구이다.


하지만 그를 하와이로 도피시켜 화를 피하게 해 주려는 "준석"의 간곡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동수"는 그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결국 "준석"은 클럽을 나오며 피우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리는 사인으로 "동수"를 살해하라는 오더를 내리게 된다. 나는 이 둘의 마지막 장면에서 서글프고 안타까운 감정이 많이 드는데, 먼저 "동수"가 "준석"에게 "누가 니보고 내 직이라고 시키드나?" 묻는 장면에서 대답을 하지 못하는 "준석"의 모습에서 그런 감정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에 "동수"는 단순히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루코"의 본인 살해 시도에 대한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여기서 "준석"이 "도루코"의 단독 행동이었다고 적극 해명했더라면 어쩌면 "동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동수"의 부하들이 떠나려는 "준석"을 살해하려고 할 때 무심하게 던진 "아버지 제사란다"라는 말 한마디로 그의 목숨을 살려주는 "동수"의 모습도 참 서글프다. "동수"의 입장에선 만약 거기서 "준석"을 죽였다면 앞으로 부산에서 넘버 1 건달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차마 친구인 "준석"을 죽일 만큼 모질지 못했고, 이 선택은 결국 바로 얼마 후 본인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두 친구의 상반된 선택을 보면 결국 마지막까지 친구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은 “준석“이 아닌 동수”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울컥해지는 부분은 앞서 잠깐 언급된 "준석"의 편지 내용인데, "준석"은 "상택"이 들으면 마음이 아플 수 있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는 대신, "동수"와 "속상한 일"이 있었다고만 적는다. "동수"에 대한 분노 및 서운함, 어린 시절 우정이 깨져버린 점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를 본인 스스로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및 두려움 등 오만가지 감정으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상태에서 저렇게 짧고 굵은 한마디로 모든 걸 표현하는 걸 보면, 진짜 "준석"은 공부와는 평생 담을 쌓고 산 건달임에도 불구하고 말 자체를 정말 멋지게 하는 재주는 타고난 듯싶다. 아니 영화 속 "준석"은 그냥 인간 자체가 남자답고 멋지다. 그러니 극 중에선 그를 진심으로 동경하고 따르는 건달 후배들이 많고,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멀리 유학을 떠나는 상택의 송별회에서 멋지게 그의 18번 “My Way"를 열창하는 준석

그리고 "준석"의 편지에는 영화의 제목인 "친구"의 어원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사실 나도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준석"의 표현대로 친구란 말이 "국산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한 데는 나름 근거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친구라는 단어 대신 붕우(朋友, 펑요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일본에서는 우달(友達, 토모다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세 나라 모두 한자로 된 단어를 사용하는데도 각각 다른 단어인 게 참 신기한데, 그래서 언어라는 게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난 이 "친할 친에 옛 구 자를 써서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이라는 표현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했을지가 정말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넷플릭스에는 한국어 자막만 제공되고 영어 자막이 제공되지 않아서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사실 그냥 한국어로만 된 대사도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면서도 맛깔나게 살리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한자까지 포함되는 대사는 정말 번역이 어려웠을 것 같다. 잠깐 영화를 멈춰놓고 나라면 어떻게 번역했을까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솔직히 나도 이 대사의 느낌과 멋짐을 제대로 살리는 번역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친구"란 단어의 어원 및 의미를 듣고 나니 진짜 억수로 멋있는 말 같다.

”사실 오늘 낮에 동수랑 속상한 일이 있어서 하루종일 집에 있다가 갑자기 "친구"라는 말이 한자라는 게 생각나더라. 나는 그때 친구라는 말이 국산 말인 줄 알았는데, 국어선생 얌생이가 친할 '친(親)'자에 옛 '구(舊)'자를 써서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이라고 썼던 게 기억난다.

억수로 멋있는 말 아이가?“

-극 중 "준석"의 편지에서

잠깐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나는 분명 "준석"이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는 "동수"라고 생각한다. "상택"을 가장 아끼고 챙겨주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역으로 이는 사실 "상택"이 가장 보호가 필요한 약하고 순수한 존재이기 때문이며, "동수"를 딱히 챙겨주거나 하지 않는 모습은 오히려 "동수"는 스스로 1인분 이상을 할 수 있는 본인과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준석"이 "조오련 vs 바다 거북이" 논쟁에서 "동수"의 편을 들었던 것 같다는 "상택"의 회상으로 끝나는데, 나는 이게 "준석"의 가장 친한 친구는 "동수"이며, "상택" 본인도 어릴 때부터 이를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려는 감독의 의도라 생각한다.


<친구>처럼 마초적인 영화에서 전형적인 상남자 스타일의 "동수"가 "준석"이 본인보다 더 편애하는 듯한 "상택"에 대한 질투심과 시기심을 숨기지 않는 모습이 참 의외이고 재미있는데, 사실 (내가 꼽은) 이 영화의 3대 주제인 네 친구들의 우정, "동수"와 "준석"의 일인자 자리에 대한 (일방적인) 라이벌 의식, "동수"와 "상택"의 "준석"의 절친 자리에 대한 (역시 일방적인) 라이벌 의식에는 모두 "동수"가 가장 크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 영화는 극 중 감정 및 캐릭터의 변화가 가장 큰 "동수"의 성장 스토리라 봐도 무방하다. 또한, 앞서 네 친구들의 유년 시절 그 자체라 볼 수 있다고 한 “바다 거북이 vs 조오련"에 대한 언급이 극 중 총 3번 나오는데, 세 장면 모두에 등장하는 것은 오직 "동수" 뿐이다. 그리고 영화 시작 부분과 엔딩 부분에 아역 버전으로만 등장하는 나머지 세 친구들과 달리, "동수"만 성인 시절에 "바다 거북이 vs 조오련" 기억에 대해서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반드시 주인공이 "센터"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레딧 순서 상으로는 장동건이 유오성 다음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포스터의 한가운데, 그것도 가장 크게 나오는 것은 바로 "동수"이다. 이 정도면 곽경택 감독님도 어느 정도 의도하신 게 아닐까? 어쨌든 난 이번 1N회 차 시청에서 처음으로 "동수"가 이 영화의 진 주인공이라 느꼈는데,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준석"의 보스를 작업한 뒤 착잡한 마음으로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는 동수

영화의 영문 제목에 대한 아쉬움 및 맺는말


마지막으로 이 브런치 계정의 컨셉에 맞게 영어 이야기를 좀 엮자면, 나는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이 좀 아쉽다. 단순히 "Friend"라고 번역하기엔 앞서 이야기한 "친할 친에 옛 구 자를 써서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벗"이라는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Friend는 뭔가 열댓 명 정도 들어가 있는 단톡방 멤버 중 하나인 정도 수준의 말 그대로 "그냥 친구" 같은 느낌이 강한데, 막상 생각해 보면 Friend 대신 쓸 단어가 딱히 없기도 하다. 힙합 느낌이 물씬 나는 "Homie"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중함이 없이 가벼워 보이고, 친우라는 의미의 "Crony"를 쓰자니 해당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테고, 단어의 발음이 뭔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앞에 Old나 Dear를 붙이면 단어 하나일 때보다 제목의 임팩트가 확 떨어지는 느낌이다. 발음, 의미 모두 영화의 분위기에 맞게 아주 묵직하면서도 함축적인 단어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나 역시도 더 적절한 제목이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 결국 그냥 "Friend"로 결정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영문 제목은 이 엄청난 명작의 거의 유일한 옥의 티라 생각되고 볼 때마다 너무 아쉽다.


그리고 나는 예전 미국에 있을 때 아는 형님을 통해 이 영화를 제작한 김동주 전 코리아픽처스 대표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을 첨 뵀을때 내가 얼마나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수십 번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게 인연이 되어 대표님이 쓰신 영화 시나리오 및 대본 몇 개를 영어로 번역해 드린 적이 있는데,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은 듣지 못한 것으로 미뤄볼 때 결국 엎어진 게 아닐까 싶다. 솔직히 그때 번역하면서 "이런 거 말고 <친구 2>를 만들어주시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2013년에 나온 (대표님은 참여하지 않으신) <친구 2>를 보고 후속작을 원했던 나 스스로를 원망했던 기억이 난다. 지나치게 과한 혹평을 하고 싶진 않지는 않고, 내게 그럴 자격도 없지만, 어설프게 <대부 2>와 <원어아>를 따라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스토리 라인, 개연성이 전혀 없는 원작의 설정 변경, 묵직한 느낌의 진짜 "건달" 이야기였던 1편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워진 고등학생 양아치들의 이야기인 <친구 2>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고, 나는 이후 <친구 2>는 만들어진 적이 없고 "준석"은 <친구>에서 사형당한 것으로 끝났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또 TMI지만 나는 영국에서 유치원, 한국에서 초등학교, 대만에서 중학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쭉 함께 자란 친구들이 없다. 물론 각 지역마다 친한 친구들이 있고, 아직까지 연락을 유지하며 친하게 지내고는 있지만, 이 영화 속 친구들처럼 모든 기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 없는 건 참 아쉽다. 어찌 보면 나 같은 Third Culture Kid, 즉 성장기 동안 2개 이상의 문화적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의 숙명인데, 그래서 내가 이 영화에 더욱 열광하고 대리만족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내가 이 영화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잊고 있었는데, 오래전 <친구>를 처음 보고 나서 영화의 주요 촬영지인 국제호텔 나이트클럽 앞에 가서 찍었던 그 시절의 우스꽝스러운 사진 한 장으로 오늘 이 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동수가 최후를 맞는 국제호텔 나이트클럽 앞에서 준석 흉내를 내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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