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의 이데올로기

by MC 워너비
글이 의도와는 달리 매번 오해받는것 같다면, 그건 글을 정말 지속적으로 못써서 그런겁니다. 아니면, 쓸데없이 두번 세번 꼬으는 바람에 선명하지 못한 글만 써서 그런겁니다. 오해하는 사람들 탓만 매번 하는거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언젠가 위와 같은 글을 트위터에서 봤다.


세상에는 못쓴 글이 많다. 내용에 비해 쓸데없이 부풀리고 에두르는 글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저런 비판이 보편적으로 성립하는 전제 조건은 독자들이 최소한 텍스트를 차분하게 일독하는 것이다. 포탈사이트 기사 란에 들어가 보면 알게 된다. 글은 안 읽고 제목만 보고 기자를 욕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기레기’들 제목 장사 탓도 있겠지만, 꼭 인터넷 뉴스에 한정된 이야기도 아니다. 정보의 노이즈로 가득찬 인터넷 도서관에서, 길고 복잡한 글은 분서갱유당할 사태에 처한다. "3줄 요약"이 공론장의 윤리가 된 시대에는 저런 말도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좋은 글’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경험에 비추면, 대중이 선호하는 ‘명문’이란 명료함보다 당파성이 강한 글이라 느낄 때가 많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내가 미워하는 대상을 통쾌하게 비판한다면 좋은 글이라 환호한다. 반대의 경우는 그럴싸하게 주워섬겼지만 논리는 없다며 침을 뱉는다. 너무나 단정한 문체로 너무나 논리 정연하게 문재인을 비판하는 글이 있다고 하자. 깨어있는 시민들은 과연 그를 ‘명문’이라 인정할까? 쓰레기 같은 글이라며 악플이나 던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쉽고 좋은 글’이란 십중칠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한다는 환상”을 파는 글이다. 이것이 ‘환상’인 이유는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쉽게 표현할 수 있으며 그것이 진정한 글쓰기의 재능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글의 논리와 뉘앙스를 단순화할 때 의미값과 정보값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필연적으로 떨어져 나간다. 이런 사람들이 경애하는 ‘쉽고 좋은 글’의 저자는 유시민, 김어준 같은 사람이다. 유시민은 훌륭한 대중 교양서 작가지만,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쉽게 풀 수 있는 게 사실이라면 “유시민의 경제학 까페” 보다 전문적인 경제학 서적이 존재할 이유도 없겠지.


독자가 곧 저자인 인터넷 시대에 독자의 눈높이는 ‘나’를 기준으로 재편된다. 4년제 대학 안 나온 사람이 없고, 정보화 시대엔 접근권이 차단된 정보도 없는데다, 누구든 게시판에 글을 써서 대중과 공유할 수 있으니 오늘날 계몽되지 않은 주체는 없다. ‘나’는 지식의 수용자인 동시에 지식의 관장자요, 지식인의 소비자인 동시에 지식인을 비평하는 지식인이다. 그러므로 내 지성과 안목으로 소화할 수 없는 글은 쓸모없이 복잡한 소리나 하는 ‘못쓴 글’이다. 진리는,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열람하는 백과사전적 지식이거나, '척 보면 아는' 직관과 감수성의 거죽으로 몇 점의 엑기스만 남긴 채 발라내어 진다. 그래서 어느 때 보다 대중의 평균 지성이 높아진 오늘날 반지성주의가 횡행한다. 어려운 글은 사실 공정하게 판단 받을 기회를 빼앗기는 면도 있는 것이다.


어려운 글이 곧 좋은 글은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내용이 같다면 어려운 글보다 쉬운 글이 낫다고도 생각한다. 한 편의 글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저자에게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하되 '내 마음에 안드는 글'이 못쓴 글도 아닐 것이며, '내가 볼 때' 이해하기 힘든 글이 나쁜 글도 아닐 것이다. 당연하게도, 쉽다는 것 말고 다른 미덕이 없는 글이 좋은 글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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