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C 워너비 Oct 13. 2018

구세주가 된 사업가

국정 감사에 나타난 백종원, <골목식당>과 프랜차이즈


내가 <골목식당>을 보기 힘들어하는 포인트는 백종원이 업자들을 호통 치는 장면과 시청자들이 솔루션을 따르지 않는 업자를 비난하는 상황이다. 백 씨는 촬영장에서 조언만 주면 끝이지만 업자들은 촬영이 끝나도 밥벌이가 걸린 인생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의견을 줘도 자기 줏대로 걸러 보고 의견도 내는 건 인지상정이다. 역시 제삼자(이자 잠재적 식당 소비자)인 시청자들이 이 문제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말 안 듣는 업자들을 꾸짖는다면 능력과 권위에 복종하라고 명령하는 건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기껏 답을 줘도 못 받아먹는 ‘노답 업자’들에 대해 백종원에게 토 달지 않는 ‘개념 업자’들이 칭찬을 받는다. 이 대구 관계가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이 인터넷 여론이 <골목식당>을 소비하는 한 방식이다. 백종원에게 순종해 덕을 본 업자들의 후일담이 공유되며 ‘싹수’가 비교당한다. 그러니까, 성공한 사람은 성공하는 이유가,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이유가 그 사람 안에 있다.


실제로 ‘노답 업자’들은 조리 능력과 위생 관리에 불신할만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확하게는, 방송에서 그런 모습이 중점적으로 조명된다. 내가 골목식당에 느끼는 역설은 방송이 진행되며 백종원의 조언, 구제받는 식당이 쌓여갈수록 골목 상권의 입지는 좁아진단 것이다. 방송의 메인 콘텐츠가 골목식당이 얼마나 구제불능인지, 백종원의 말을 빌면 “장사할 준비가 안 된 업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폭로’라서 그렇다. 성공한 식당들의 후일담은 이런 획일적 토양에서 백종원이 건져낸 ‘예외 사례’다. 그 아래에선 “이래서 역시 골목식당은 가고 싶지 않아”가 두터워진다. 이 반응의 뒷면은 "저래서 프랜차이즈가 차라리 나아"다. 백종원이 호통을 뱉을 때마다 백종원 식당의 상권 진출은 정당화된다. 이 전개가 골목식당을 살리는 솔루션이란 명목 아래 일어난다. 어제 백 씨가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뭐라고 했는가. “도태될 업자는 도태되는 것이 시장논리다.” 아주 솔직한 발언이다.


말이야 맞는 말이다.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고 그럴 가망도 없는 식당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현재 자영업 시장은 과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계기로든 구조조정이 들어가는 게 장기적으로 상권이 정상화되는 방안일지 모른다. 그런데 식당이 문 닫는 이유가 시장논리 밖에 없는가? 골목 식당의 경쟁 상대는 다른 골목 식당만이 아니다. 골목 식당과 프랜차이즈 식당의 경쟁이 공정한 시장 논리인가? 골목 식당이라도 그 질은 천차만별이고, 백종원 식당이라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다들 인정하겠지만, 백종원 식당에도 뾰족한 맛은 없다. 적당한 가격에 적당히 표준화된 맛을 제공하고 위생관리에 신뢰가 가는 장점이 있는 거다. 이건 싼 단가에 재료를 대량 매입해 공급하는 프랜차이즈 업체이기에 가능한 점이 있다. 오히려 어떤 방면에 특화된 메뉴를 파는 업소, 사람들에게 소문난 맛 집은 다 자영업 식당이다. 그럼에도 방송을 통해 다수 업자들의 이미지가 싸잡힐 소지가 있다. 반면, 백종원은 골목식당을 살리는 방송으로 성인의 이미지를 얻고, 그것이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의 브랜드 가치로 환전되어 골목 상권 진출의 첨병이 된다. 굴지의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골목상권 활성화 토론에 초대받고 따끔한 직언을 뱉어 화제를 부른다. 뭔가가 바뀌어도 한참 뒤바뀌었다. 정치인들이 안건의 본질보다 이슈 창출과 여론 영합에 치우친 것이다.


백종원이 <골목식당> 출연을 통해 얻는 건 자신의 기업으로 골목식당을 구조 조정하는 헤게모니다. 이 모든 가면극과 힘의 논리("네 가게 살려주려고 몸소 지도하는데 말을 안 들어?")는 '백 주부'의 성인군자 이미지, 평소 시청자가 식당에서 느끼는 불편함으로 분칠 된다. 백종원이 뱉는 호통은 그에게 권력을 주는데, 시청자들은 "아낌없는 희생"으로 찬탄하고 그를 ‘노답 업자’들에게 고통받는 피해자로 미화하며 휴머니즘까지 조공한다. 바로 이 점이 내가 <골목식당>을 보며 정말로 괴로운 부분이고, 방송과 백종원, 시청자가 합작해서 빚어내는 독소와 비윤리다. 평소 SNS 등을 통해 윤리와 평등,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 예민한 촉을 뻗어내던 사람들마저 이 점에 무감각한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거기엔 어떤 식당들을 들리며 겪는 짜증과 불만, 내 편의와 욕구가 투영돼있으니까. 유능한 강자를 향한 동경심, 그동안 그가 해결해준 실용성이란 기준, 내 욕구를 충족해 주지 않는 업자들을 미워하는 소비자 심리가 어울려 도덕적 판단 체계를 뒤집는다. 한 사업가의 이윤 활동을 위한 행보에 희생과 이타심, 정의구현 같은 윤리도덕이 있다고 칭송하는 것이다. 도덕적 평판도 한정된 자원이다. 그것이 돌아가야 할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보전해야 한다. 백종원은 사업가니 사업을 하게 두고, 골목상권은 공공의 안건으로 남겨두자. 비록, 이 사회가 무능해 사업가가 공공의 구세주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겠지만 말이다.


-ps: 백종원 질투 안 합니다. 골목 식당 주인 아닙니다. 자영업 안 합니다. 저 황교익 아닙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