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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Aug 26. 2022

걸그룹 음원과 '유사 대중성'

뉴진스와 아이브


멜론 차트 탑 100을 열어 보면 낯 설고 익숙한 광경이 펼쳐진다. 차트 상위권에 걸그룹 노래가 무더기로 포진해 있다. 아이돌 음악은 원래부터 최첨단 유행가였다. 아이돌 붐이 일어난 2010년대 초반엔 해 마다 멜론 연간 차트 20위 안에 아이돌 노래가 10곡 가량 있었다. 특히 걸그룹 노래는 보이그룹보다 더 많은 ‘대중성’으로 사랑 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입지는 2010년대 중반부터 약해졌다. 각종 음악 서바이벌 방송 출신 가수들, <쇼미 더 머니>를 타고 떠오른 힙합 음악이 공존하며 차트에 ‘장르 다양성’이 생겼다. 2010년대 중후반으로 가면서 발라드 음악이 강세가 됐고 케이팝 신은 세계화되는 한편 국내에선 주변화 되어갔다. 2018년까지는 아이돌 음악이 선전했지만, 2019년 연간 차트 20위 안에 2 곡, 2020년엔 4 곡만 들어갔다.


아이돌 음악은 기득권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신 멜론 주간 차트에선 걸그룹 음악이 10위 안에 7곡, 20위 안에 11곡이나 랭크 인 해 있고, 탑100 차트 10위 안엔 8곡이 있다. 차트 상위권이 이만큼 아이돌 노래로 채워진 건 가요계 획일화 비판이 나왔던 10년 전 음원 차트에서 볼 수 있었던 추세다. 아이돌은, 아니 걸그룹은 어떻게 긴 시간을 돌아와 음원 차트를 되찾은 걸까?


환경적 요인과 개별적 요인이 모두 있다. 작년 8월, 국내 최대 음악 사이트 멜론은 차트 시스템을 바꿨다. 재작년 ‘음원 사재기’ 논란을 의식해 실시간 차트를 없애고 24시간 동안의 음원 이용량을 집계하는 걸로 바꾼 개편안을 24시간 차트 + 실시간 차트 50:50 비중으로 재개편했다. 바뀐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 확인하긴 힘들다. 다만, 개편안의 메커니즘은 여타 음원 감상 플랫폼 및 SNS 트렌드와의 상호 연동성을 높이는 한편, 차트 인한 음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절충적 방향이다.


국내에서 케이팝이 한 동안 인기가 없었던 원인은 여타 장르 가요의 부상과 폐쇄적인 팬덤 산업화고, 걸그룹에 한해서는 해외 시장 취향에 맞춘 콘셉트의 유행일 것 같다. 흔히 말하는 ‘걸 크러쉬’, 강한 박자감과 사운드 중심 음악이다. 국내 차트 동향 역시 서구적 음악 취향과 호환이 진행되고 취향이 다변화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멜로디 소비를 선호하는 소비자 성향 상 호불호가 갈렸을 수 있다. 팬데믹으로 케이팝 신 활동이 위축되면서 아이돌 그룹이 소비자들 눈에서 멀어진 것도 요인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 불현듯 나타난 변수가 브레이브 걸스 ‘Rollin'’이다. 2017년에 발표됐지만 작년 ‘역주행’을 통해 흥행했고, 걸그룹이 ‘대중성 있는 멜로디’로 사랑받던 시절의 히트곡 작곡가 용감한 형제가 제작한 노래다. 즉, 오랫동안 차트가 비 아이돌 음악에 쏠려 소비자들이 질릴 수 있는 시점에 범취향적 속성을 갖춘 ‘Rollin'’이 재발견돼 유튜브와 방송가, 음원 차트를 넘나들며 히트했다. 걸그룹 음악이란 선택지를 다시금 대중 앞에 노출시킨 셈이다. 인과관계를 결론짓긴 힘들지만, 2021년엔 ‘Rollin'’이 히트한 상반기 이후 브레이브 걸스의 후속곡을 포함해 에스파와 스테이씨 같은 걸그룹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그후 작년 12월부터 메이저 급 신인 걸그룹이 쏟아져 나왔고 수요와 공급이 합치되며 걸그룹 차트 점령으로 귀결된 흐름이다.


현재 차트를 선도하는 건 뉴진스와 아이브다. 아이브는 데뷔 곡 ‘eleven’이 성공했고 ‘love dive’를 거쳐 이달 발표한 ‘after like’는 멜론 일간 차트 4위에 올라있다. 뉴진스는 센세이션하다. 이 달 초 발표된 데뷔 앨범에 수록된 네 곡 중 무려 세 곡이 멜론 탑100 차트 10위에 들었고 ‘Attetion’은 부동의 1위다. 두 그룹의 음악 콘셉트엔 교집합이 있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사운드에 멜로디가 강조된 ‘이지 리스닝’ 계열이고, 가사와 콘셉트, 마케팅 노선의 초점이 ‘여초 팬덤’에 있다. 즉, 현재 걸그룹 음악은 ‘걸 크러쉬’가 불러온 여성향 기조가 좀 더 부드럽고 취향을 덜 타는 빛깔의 콘셉트와 융합되는 흐름을 타고 있다. 신인 그룹 중 전형적 ‘걸 크러쉬’에 가까운 음악으로 데뷔한 케플러와 엔믹스 노래는 인기가 없었다. 이상은 소비자 취향 동향, 음악 산업 생태계 재편이 맞물린 현상이고, 이제 막 데뷔한 그룹들이 차트에서 기득권을 획득하고 있다. 걸그룹 음악 강세는 유행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될 잠재력이 있다.


‘걸그룹 노래’는 곧 ‘대중성’과 통하는 키워드였다. 대중가요는 늘 시대의 표정과 감정을 사람들 마음속에 각인하는 기록 사진이었다. 다른 매체보다 접근성과 향유의 편의성이 좋고, 가장 정서적인 차원에서 가장 감각적으로 수용되는 매체다. TV와 라디오 같은 매스 미디어를 통해 한정된 종류의 음악이 공급되면서 그 노래들은 ‘대중성’을 얻었다. 하지만 뉴 미디어의 번영으로 미디어가 파편화되고 레가시 미디어의 매스 미디어 지위가 박탈된 지금 시대엔 대중성이란 개념이 성립할 수 없다. 십 년 전, 이십 년 전 젊은 대중과 호흡하던 아이돌 노래, 걸그룹 노래가 ‘비대중화’된 건 큰 틀에서 그것이 부산한 증상이다. 그렇다면 걸그룹 노래가 다시금 인기를 얻는 현상에서 역으로 그들의 대중성이 복원될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을까?


십 년 전엔 방송과 음원 차트가 단일한 계통으로 쌍방향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노래가 인기를 끌면 방송에 나가 스타가 되거나 방송에 나가 얼굴을 알리면 노래가 히트하는 복권에 당첨될 수 있었다. 지금은 숱한 SNS와 미디어 플랫폼이 산재해 있고 그것들을 모조리 관통해야만 대중성이라 칭할 만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될 만한 역량을 가진 포맷이 음원이다. 영상 포맷과 결합하기 쉽다. 그래서 음원 플랫폼과 방송은 물론 유튜브와 틱톡 같은 영상 플랫폼, 각종 SNS에 대한 유통성이 좋다. 흥얼거림을 통해 파편화된 군중이 서로 직접 만나는 일상에 침투하기도 쉽다.


즉, 대중성이란 개념이 한 데 모인 군중이 구성하는 덩어리 진 양태라면, 음원과 조각 영상 같은 포맷은 분산된 점 조직들을 관류하는 혈액이 되어 대중성과 유사한 양태를 재현할 수 있다. 걸그룹은 대중 산업에서 팬덤 산업이 된 지금도 음악 히트를 통해 대중적 인기를 노릴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러한 유사 대중성, 그와 결부된 이미지 자본은 보이그룹의 세일즈 규모를 쫓아갈 수 없는 걸그룹이 품을 수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이다. 뉴진스는 인기있는 보이 그룹에 비해 약소한 수치인 초동 앨범 30만 장을 팔았지만 방탄 소년단 군입대 설 이후 하락하던 하이브 주가를 반등시키는 구원 투수가 되었다.


당연히 한계는 있다. 뉴미디어를 관통하는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있는 것만 더욱더 보게 만든다. 취향과 관심사의 단절을 가속하며 군중을 분해하는 관성이 있다. 걸그룹 노래가 아무리 흥한다고 해도 원더걸스 ‘Tell me’처럼 세대와 계층을 통합하는 ‘국민가요’는 다시 나올 수 없다. 유튜브 뮤직 인기 순위를 보면 10위 안의 9곡이 걸그룹 노래로 멜론 차트 보다 젊은 계층 편향성이 강하다. 또한 음악 프로모션 구조가 방송가에서 곧장 음원 차트로 연결되어 단순하던 과거에 비해 무수한 미디어를 프로모션으로 연결하는 건 쉽지 않다. 자금력과 인적 네트워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아이브는 소속사 스타쉽이 언론 방송 및 광고, 커뮤니티와 SNS를 아우르는 집요한 마케팅으로 그것을 일정 부분 수행해 낸 케이스로 보인다. 걸그룹 음악이 차트를 점령했음에도 중소 기획사 걸그룹은 차트에서 보기 힘든 이유다. 브레이브 걸스 같은 희귀 사례에도 불구하고, 십 년 전 카라, 씨스타, 시크릿, 티아라처럼 비 대형 기획사 아이돌이 히트곡으로 일약 스타가 되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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