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뉴진스 멤버 하니가 '스시 랜드'란 말을 써서 논란이 생겼다. 뉴진스 멤버들이 트윗을 쓰는 트위터 공식 계정에 일본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며 "our short trip to sushi land"라는 코멘트를 붙였다. 이 트윗이 퍼져 나가며 일본에 대한 비하적 표현인지 말하는 코멘트들이 붙었고 ‘스시 랜드’가 일본 검색어 일위까지 올라갔다.
하니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을 리는 없다. 이건 모욕이나 혐오 표현이 아니라 대상화의 문제로 봐야 한다. 대상화는 특정한 코드를 통해 타자의 존재를 규정하거나 인식하는 태도다. 타자는 단면화되고 스스로 존재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를 인식하는 이들에 대한 대상이 된다. 혐오와 차별의 바탕엔 대상화의 기제가 깔려 있지만, 거기에 늘 나쁜 의도가 끼어 있는 건 아니다. 대상화는 사람들이 타자를 대하는 뿌리 깊은 사고방식이자 가장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다. 대상화가 혐오의 등가물이라기보다 나와 다른 존재를 대하는 태도엔 그만큼 상투성이 도사리고 있고 그래서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사례는 널려 있다. 미국 백인들은 황인종을 키 작고 뚱뚱한 사람이나 코미디언처럼 여기는 고정관념이 있고, '강남 스타일'은 거기 정확히 부합하는 싸이의 이미지를 통해 대상화의 환대를 얻으며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여성은 꽃이다" 같은 문장도 전형적인 대상화의 관용구다. 여성을 찬미하는 말이지만, 여성을 예쁘고 해롭지 않은 이미지에 가두며 장식품처럼 주변화하고, 그에 부응하지 않으면 '여자답지 않다'라고 배제되기도 한다. 흑인은 모두 운동 능력과 예술 감각이 탁월하다고 믿는 건 신비화된 인종적 속성을 일반화하는 것이며 타자를 숭배함으로써 진귀한 객체로 만드는 인종적 페티시즘이다.
‘스시 랜드’ 역시 타국의 대표적 기호를 통한 대상화다. 하니가 이 말을 쓴 것 자체에 복잡한 함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별 뜻 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룹 공식 계정을 통해 쓰일 때엔 사적 발화에 머물 수 없고 공적 의미망에 실린다. 일본에서 많이 나타난 반응 중 하나는 “스시 사진을 올리지도 않았으면서 스시 랜드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냐”라고 의아해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스시’란 말이 일본을 부르는 속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다른 의미가 담긴 게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다.
한국에선 "일본 정부가 일본을 'THE LAND OF SUSHI'라고 홍보한 적도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라고 항변하는 이들이 보인다. 같은 말이라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것과 타인이 그렇게 부르는 건 맥락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역시 자국을 김치의 종주국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을 김치란 말로 부르는 건 꼭 달갑지 만은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예민한 국가적 정서를 품고 있기에 이런 호칭의 문제는 더욱 첨예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이 지적하듯, 일본 가수가 한국을 ‘김치 랜드’라고 부르는 것을 역지사지해서 상상해 보면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평소 케이팝 팬 계정을 운영하는 한 일본 트위터 유저 역시 "외국인이 스시 랜드란 말을 쓰는 건 의도와 달리 위험할 수 있다"라고 의견을 냈다.
이번 일과 비슷한 사례는 이미 케이팝 신 안에 기록돼 있다. 보이그룹 세븐틴이 노라조의 노래 ‘카레’를 커버했을 때도 논란이 일었다. 이 노래는 일본의 스시와 마찬가지로 인도를 대표하는 음식 카레를 코믹하게 예찬하며 인도 풍 느낌을 키치하게 꾸며낸 노래인데, 인도인들이 카레를 먹고 요가를 하는 사람으로만 묘사되는 건 인종 차별이 될 수 있다고 비판받았다. 노라조는 실수를 인정한다고 밝히며 사과문을 올렸었다.
케이팝은 명실공히 글로벌 산업이 되었다. 이 말은 케이팝의 우월성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니 그것을 믿고 타국의 참견을 묵살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한국이 케이팝을 통해 더 많은 국가와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할 책임도 늘어났다는 뜻이다. 그룹 공식 계정에 올라오는 글은 다양한 국적의 팬들이 보는 만큼 그들의 문화적 코드를 헤아리는 기준이 필요하다. 실제로, ‘문화적 전유’나 타국 문화에 대한 무지로 인한 논란은 케이팝이 세계화된 시점부터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지구상엔 무수한 나라가 있으니 그걸 다 챙기는 게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쉽게 생각하면 그만큼 쉬운 일도 없다. 실수를 지적받으면 접수하고 하나씩 고쳐 나가면 된다. 그런 일들이 전례로 축적이 되면 참고하기 쉬운 기준이 된다.
더욱 중요한 건 타자와의 공존에 대한 정치문화적 감수성이다. 대상화의 개념을 이해하고 비판의식을 내면화하고 있다면, 세세한 쟁점들에 관한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무엇이 문제가 될지 짐작하고 예방하는 판단력을 가질 수 있다. 예컨대, 다른 국가나 인종을 바꿔 부르는 호칭의 민감한 성격을 인지하는 사람이라면 '스시 랜드'란 말의 어감만 들어도 무언가 부적절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타자와의 관계, 평등과 차별 같은 보편적 의제에 대한 보편적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기에, 국제적 쟁점은 물론 성 정치적 쟁점과 각종 소수자 쟁점을 아우르는 교차적 관점을 갖추게 한다. 케이팝 기획사들이 사업적 리스크를 관리하고 글로벌 친화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그 내부에서 정치문화적 교양과 감수성을 배양해야 하는 이유다.
말했듯이, 하니에게 악의가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일본이란 나라를 친근하게 불러 보고 싶었을 것이고, 어떤 일본인들은 그 말을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이제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스무 살 밖에 되지 않은 외국인 아이돌이 한일 양국의 정서와 민감한 문제들을 파악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회사의 돌봄과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앞서 말한 기준에 따라 주의할 사항에 대한 교육이나 아이돌이 공식 계정에 쓰는 글 사전 검수가 적절히 이뤄졌다면 멤버 이름이 논란의 도마에 오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뉴진스는 올해 초 다른 멤버가 팬 소통 애플리케이션에서 “chinese new year”란 말을 써서 사과문을 올린 적이 있다. 저 말이 사과까지 할 표현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멤버의 공적 발화 속 국제적 호칭으로 논란을 겪었음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 건 아쉬움이 든다. 소속사 어도어 레이블의 가수 케어와 검수 체계가 미흡한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진짜 문제는 논란을 둘러싼 국내 여론 동향이다. 케이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니를 옹호하고 일본에서 제기되는 비판을 묵살하려는 목소리가 크다. 이건 논란의 규모를 키우는 것일뿐더러, 해당 아이돌과 소속사를 사이에 두고 한일전 줄다리기를 하면서 그들을 더 곤란하게 만들고 운신의 폭을 강제적으로 좁히는 것이다. 심지어 “방사능 랜드라고 부르지 않은 걸 고마워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마저 튀어나온다. 그들은 ‘스시 랜드’라는 말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대상화의 표현이 어떻게 악의가 충만한 혐오 표현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