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이 방송을 개발하고 수명을 이어가는 수법은 아직 방송 스테이지가 설치되지 않은 분야, 비주류 문화를 찾고 오디션 방송의 포맷에 집어넣거나 기존 오디션 방송의 외연을 확장하며 시청자를 포섭하는 것이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힙합 신이 상업 문화 중심부에 들어왔고 다음 차례는 댄스 신이었다. 이 과정은 선정적인 경연 방식과 문화의 왜곡, 대기업에 종속된 방식의 상업화 등 많은 질병을 초래했지만, 문화를 살 찌운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방송계 구석 자리에 있던 문화를 많은 사람 앞에 전시하고 단편적인 면모로나마 알려지게 한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스트릿 우먼 파이터> 시리즈를 통해 댄스 신이란 생태계를 탐험했고 그 연장선에서 관심을 넓힐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댄스는 아이돌을 보며 감상하는 것이었지만, 댄서들이 주인공인 무대가 세워졌고 댄서와 아이돌의 차이가 알려졌다. 앞서 말한 공식에 따라 출연자 외연이 해외로 확장된 이번 시즌에는 한국 댄서들과 해외 댄서들의 차이를 알게 됐다. 그중 츠바킬이라는 팀, 특히 아카넨 미요시라는 댄서를 알게 된 것은 무엇이라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만남이었다.
아카넨은 츠바킬의 리더로서 일본 코레오그래피(안무를 창작하는 기술) 신의 베테랑 댄서다. 1989년생, 올해 나이 34살로 댄스를 시작한 지 24년째라고 한다. 그 외에 내가 아카넨에 관해 아는 사실은 많지 않다. 방송에서는 일본 코레오 신의 일인자이자 댄서들의 연예인 같은 존재라고 소개되었는데 얼마나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이름을 검색해 봐도 국내외 위키피디아에는 기본적인 신상 정보만 뜬다. 몇 안 되는 예전 문서에선 장기린이란 한국 댄서와 호주에서 워크숍을 진행했었고, “한국에서 아카넨 스타일이 유행”했을 정도로 아시아의 대표적인 댄서라고 전하고 있다.
나는 댄스에 관해 무언가를 규정할 만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아카넨 스타일’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아카넨의 춤을 찾아보고 있노라면, 저 스타일이란 말을 스탠다드로 바꿔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아카넨은 박자 감각이 아주 좋고 표현력이 디테일하며 상체를 잘 쓴다. 아카넨의 춤에선 균형과 조화란 낱말이 떠오른다. 뿌리가 깊고 정갈한 가지를 거느린 나무가 바람을 타고 흔들리며 원운동을 하는 이미지가 펼쳐진다.
내가 찾아본 영상에서 아카넨은 팔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크게 뻗어서 움직이는 동작을 안무의 베이스처럼 취하고 있었다. 팔의 움직임은 호를 그리거나 곡선적 궤적을 그렸고 팔꿈치를 접은 채 원심력을 이용해 돌리는 동작도 종종 보였다. 이 원운동은 굳건한 몸의 코어를 통해 지탱되고 그런 반면 몸의 이동이 무겁지 않다. 아카넨의 안무에선 모서리 진 궤적이나 직선적으로 힘이 발사되는 장면을 찾을 수 없다. 동작과 동작은 선을 따라 물 흐르듯 연결되고, 힘은 겉으로 과시되지 않고 동작 속에 자리 잡은 채 춤의 흐름을 이끌며 순환한다.
아카넨의 춤에는 늘 여유가 있다. 아카넨은 언듯 보기에도 코어 근력이 두터운 댄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힘을 전력을 다해 쏟거나 절도 있게 동작을 끊는 데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여력을 남긴 채 동작에 따라 힘이 배분되고 춤의 흐름 내부에서 무게 추처럼 힘이 운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돈되고 정확한 춤을 안정감 있게 추는 것 같다. 유현한 곡선의 연쇄 속에서 약동하고 있는 순정한 에너지, 이것이 아카넨 미요시의 춤을 보며 내가 받은 인상이다.
아카넨의 춤은 강인하면서 부드럽고, 유려하면서 심플하고, 활달하면서 무겁고, 멋있으면서 섬세하다. 춤이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성질이 공존하고, 통속적으로 표현하면 페미닌(feminine)한 스타일을 바탕에 둔 채 매니시(Mannish)한 스타일이 융합돼 있는 것 같다. 짐작건대, 이렇듯 힘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캐주얼한 매력은 아마도 많은 여성 댄서가 이상적으로 여기며 닮고 싶어 할 만한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잘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서 아카넨 스타일이 유행” 했다는 말은 그런 맥락에서 짐작된다.
시청자들이 아카넨의 춤을 두 눈에 각인한 건 방송 2화에서 미니와의 배틀이 공개되면서였다. 압도적 텐션과 리듬감, 몸놀림으로 이전까지 루즈하게 진행되던 방송을 강렬하게 환기시켰고, 베일에 싸여있던 일본팀과 아카넨 미요시라는 댄서가 어떤 퀄리티를 가지고 있는지 선포하듯 알렸다. 방영 직후 많은 시청자가 아카넨의 춤에 관한 소감을 공유하였으며 이번 시즌 가장 인상적인 배틀로 꼽는 사람이 많다. 인생 최초의 댄스 배틀이었다는 본인의 후기와 함께 입소문은 한층 퍼져나갔다. 아카넨은 그 적은 방송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저 춤사위를 한 번 보여준 것만으로 인기 출연자 중 한 명으로 급부상했다.
아카넨과 츠바킬이 인기를 얻은 계기는 춤 실력이었지만 단순히 그 이유 만은 아니다. 그들은 기존 <스우파> 시리즈의 관성 바깥에 있는 존재였다. 시즌1에선 출연자들의 대결과 충돌이 날 것의 캐릭터와 에너지로 표현되었지만, 이번 시즌에선 그 점이 전작의 성공 비결로 학습되며 작위적이고 평면적인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출연진들은 하나같이 화만 내고 이유도 없이 상대를 도발하는 인물로 획일화돼 버렸고 그 결과 개개인의 캐릭터가 희미해졌다.
츠바킬과 잼 리퍼블릭은 방송 시리즈에 대한 체험이 없는 상태로 합류한 외부인이며, 자신들 본연의 행동과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상황에 반응하였다. 작위성과 피로감에서 벗어난 면모가 그들을 다른 출연진들과 차별화했고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가닿았다. 아카넨은 어려 보이는 얼굴과 귀엽고 유순한 인상이 세련된 춤 솜씨와 갭을 이루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팀원들과의 우애 넘치는 관계, 구김살 없이 순박해 보이는 성품은 더욱 마음이 끌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츠바킬 멤버들은 모두가 댄스 실력이 수준 높은 한편, 저마다 다른 캐릭터와 댄스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 개성이 선명한 동시에 화목한 조화를 이룬다. 이것이 이들을 팀 단위로 응원하는 팬들이 늘어난 이유다.
아카넨은 제작 발표회에 참석해 일본에도 좋은 댄서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댄스 신을 소개하고 싶어 방송에 출연했다고 말했다. 그 바람은 현실화됐다. 많은 시청자가 일본의 댄스를 제이팝 아이돌을 통해 함부로 넘겨짚고 있었을 뿐 일본의 댄스 신이 어떤지, 어떤 댄서들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카넨이 벼려진 칼날을 뽑듯 솜씨를 펼쳐 보였을 때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이 강렬했을 것 같다. 이제 사람들은 일본의 댄스 신이 얼마나 뿌리가 깊은지, 거기에 얼마나 훌륭한 댄서들이 있는지 알고 있다. 모두 츠바킬과 아카넨을 보며 알게 된 사실이다. 행여나 첫 번째 탈락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책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목표 한 바를 가장 먼저 이루고 떠난 최초의 승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