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스와 빅나티의 비프
한국 힙합 신에서 래퍼 스윙스를 둘러싼 패싸움이 벌어졌다. 시작은 빅나티라는 젊은 래퍼의 ‘선빵’이었다. 지난 16일, ‘INDUSTRY KNOWS’라는 음원을 공개하며 스윙스를 저격했다. 둘의 해묵은 알력과 감정싸움부터 스윙스가 운영하는 레이블의 비리 의혹까지 폭로했다. 스윙스는 당일 새벽에 라이브 방송을 켰다. 맞디스를 하는 대신 폭로 내용을 하나하나 해명했다. 다른 래퍼들의 참전과 여론이 맞물려서 이 사건은 인터넷 세상의 큰 화젯거리가 됐다.
여론의 반응? 스윙스의 압승이다. SNS와 커뮤니티에선 입을 모아 스윙스를 두둔하고, 손을 모아 빅나티를 손가락질한다.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스윙스의 해명에 설득됐을 거다. 논란은 거의 밈이 됐다. 빅나티의 끝없는 ‘트롤 짓’에 시달리는 스윙스가 동정을 얻는다.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다. 이렇게까지 원사이드한 게임이 된 이유는 정말 그뿐일까. 여론에는 일관성이 어긋난 부분이 있다.
한 매체는 이번 디스 전을 13년 전 ‘컨트롤’ 대란과 비교했다. 컨트롤 때는 래퍼들이 “예술가로서의 가치관, 씬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음악적 태도에 대한 논쟁”을 두고 경쟁했지만, 이번엔 법적 사안과 사실관계가 논점이기에 음악적 대결이 이뤄질 수 없다는 말이다(‘너네끼리 알아서 해’ 빅나티·스윙스 디스전이 씁쓸한 이유, 뉴스엔) 이런 분석은 상상으로 그린 평행우주에서 혼자서 떠돌고 있다.
컨트롤 대란과 이번 디스 전은 오히려 주제가 겹친다. 컨트롤 대란은 미국 힙합 신에서 불타오른 디스 전이 국힙 신으로 번진 사태였다. 미국에서는 힙합 신의 반성과 발전이라는 공적 주제가 화두였지만, 한국에서는 개인 신상을 공격하고 계약 문제를 논하는 사적 분쟁이 테마가 됐다(힙합장, 힙합 진정성, 그리고 상징투쟁 : 한국과 미국의 컨트롤대란 사례연구, 성연주 김홍중). 컨트롤 대란의 빅 매치였던 개코와 이센스의 디스 전에서도 소속사와 아티스트의 계약이라는 ‘법적 사안’과 ‘사실 관계’가 쟁점이었다. 이번 분쟁의 당사자 스윙스도 그렇다. 컨트롤 대란 때 일약 화제의 인물로 만들어 준 노래 ‘황정민’에서 제삼자 이센스가 맺은 ‘노예 계약’을 성토하는 가사를 썼다. 그 지점에서 빅나티의 디스 곡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무슨 말하고 싶은지 안다. 스윙스의 폭로는 정당했지만 빅나티의 폭로는 사실관계가 틀린 음해라고 반박하고 싶을 거다. 하지만 둘의 주장에서 무엇이 참과 거짓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정확한 경계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런 건 법정에나 가야 가려질 수 있는 진실의 조각들이다. 디스 전은 원래 그런 거다. 랩으로 가릴 수 없는 진실을 두고 랩으로 부딪히는 ‘개싸움’이다. 그래서 디스는 비프(Beef), 알력과 분쟁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엔터테인먼트다. 승패의 관건은 사실 관계가 아니다. 그걸 웅변하는 래퍼의 기량과 노래의 퀄리티, 적수의 치부를 까발리는 말놀이에 있다.
내가 궁금한 건 이런 문제다. 왜 사람들은 이번에는 디스를 디스로 즐기지 않는 걸까. 툭하면 세상의 잣대로 힙합을 판단하지 말라고 외치던 국힙 리스너들조차 말이다. 그들 역시 스윙스를 결사옹위하며 빅나티를 목 놓아 욕하고 있다. 스윙스는 아마도 국힙 신에서 가장 많은 디스 곡을 낸 래퍼다. 그의 커리어가 도약하는 데 발판이 된 것도 일련의 디스 전이었다. 그런 데도 리스너들은 스윙스의 디스를 응원했던 것과 정반대 논리로 빅나티를 비난한다.
현상에 유일한 원인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방향으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렇다. 미디어 문화, 인터넷 문화의 변화다. 컨트롤 디스 전이 신드롬을 불렀던 원인이 뭘까. 힙합이란 문화가 새로웠기 때문이고, 디스라는 형식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사인 간 분쟁은 사회면 뉴스나 연예면 뉴스에서 보는 것이었다. 대규모의 리얼한 분쟁이 미디어를 통해 엔터테인먼트로 재현된 건 컨트롤 사태가 처음이었다. 래퍼들이 멱살을 잡고 엉겨 붙는 광경에 사람들은 흥분했다. 그걸 지켜본 젊은 세대가 국힙 팬으로 정착하도록 이끈 것도 날 것의 해방감이었을 거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이받고 보는 힙합의 강령, IDGF(I Don’t Give a Fuck)다.
시간이 흐르면서 날 것의 문화는 국힙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이전까지 수면 아래에 있던 인터넷 방송이 번창했다. ‘인방’이야말로 검열되지 않은 말이 난무하고 분쟁이 숨 쉬듯이 오가는 상업 문화의 해방구 아닌가. BJ와 셀럽들이 서로 공개적으로 디스하고 치부를 폭로한다. 그 채널을 맡고 있는 포맷이 바로 ‘라이브 방송’이다. 이번 디스 전은 여러 가지로 힙합의 문화적 관성에서 벗어나 있다. 여론이 스윙스를 방어하며 화력을 퍼붓는 모습은 ‘인방’ 팬덤이 BJ를 수호하는 여론전을 닮았다. 빅나티를 ‘나락’으로 보내고 반대급부로 스윙스를 성인군자처럼 표백하는 광경은 영웅 숭배와 여론 사냥이 한 세트로 진행되는 요즘의 인터넷 문화 자체다.
말하자면, 이번 디스 전에서 발견되는 양상은 힙합 문화에 대한 인터넷 문화의 우위다. 미디어 형식으로는 디스 랩에 대한 ‘라이브 방송’의 우위다. 팩트를 둘러싼 분쟁의 맥락에서, 사람들은 ‘라방’이란 형식에 길들여졌다. 디스 랩은 용의주도하게 편집된 발화이고 라이브 방송은 꾸미지 않은 즉흥적 발화로 받아들여진다. 그 즉흥성이 ‘진정성’으로 오인되며 힙합의 관습으로 전유되던 진정성을 밀어낸 거다. 스윙스의 압승은 그의 대중적 이미지나 사건의 시시비비에 앞서서 미디어 포맷의 승리이기도 하다.
“랩에는 랩으로, 디스에는 디스로” 국힙 팬들이 외쳐 온 구호다. 그런 사람들이 분쟁에 관한 사실관계는 랩으로 따질 수 없고, 스윙스는 은퇴해서 더 이상 래퍼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자꾸만 ‘힙합 문화’ 바깥으로 이탈한 채 힙합 신의 사건을 평가한다. 국힙 신이 후퇴하는 동안 인터넷 문화가 국힙 신 문화를 침식했거나, 국힙 신의 근본이 결국 인터넷 문화에 있다는 증거일까. 스윙스와 빅나티의 비프는 정말로 오랜만에 한국 힙합의 이벤트가 대중의 호응을 얻은 사건이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건 국힙 신의 ‘대목’이 아니라 국힙의 기우뚱한 문화적 지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