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친구가 내가 쓴 진단서를 보다.

세상은 좁다.

by 경첩의사

변호사 친구가 내가 쓴 진단서를 보다.




1.


세상은 좁다.


며칠 전 후배로부터 문자가 왔다. 십 년 만에 오는 문자. 문자 내용은 모 광역시 식당에서 식사 중, 옆 테이블에서 나의 친구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식당에 있던 두 사람, 각각 외과의사와 마취과 의사는 나를 중간에 두고 아는 사이가 된 것이다. 두 친구, 후배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이이기에 더 각별하고 신기하였다.

이곳 세상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어 언젠가는 한 번쯤 만나게 되는 것이 이 세상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서너 단계만 거치면 다 아는 사이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그만큼 사람들이 중요하고 인간관계, 연결의 중요성이다.



그만큼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 행동, 혹은 어느 서류나 글 하나도 멀리 누군가에게, 언젠가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도 남기지만, 그가 남기 모든 것들이 있다. 글이 될 수 있고, 그와 관련된 모든 모습들이 그것이 될 것이다.



2.



"지금 네가 쓴 진단서를 보고 있다!"


순간 깜짝 놀랐다.

변호사 친구는 친절하게 진단서 가장 아래 부분인 나의 면허번호, 이름과 서명이 있는 부분만 사진 찍어 보내주었다. 어느 환자, 어떤 사건은 절대 말하지 않고, 변호사 친구가 맡은 사건의 원고, 혹은 피고 어느 쪽에 해당할 것이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그렇게 쓴 진단서 일 것이다.

' ...... 상기 환자 OOOO 년 O 월 O 일 사고 ( 교통사고)로 수상 후

본원 내원 진료, 검사 시행 후 상기 진단명 진단되었습니다. OOO 진단명으로 응급수술 ( OOO ) 시행하였습니다. 수상 일로부터 O 주간 안정 가료 요합니다. 단, 현 상태에 한하며 추후 합병증 발병 시 추가 진단 가능합니다. .... '




물론 가끔은 위 양식에서 벗어난, 주저리주저리 더 추가하는 진단서도 있다.

하지만, 내가 작성하는 진단서 양식은 대부분 이렇게 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O 주 진단이다.

숫자 1부터 시작해서 가끔은 두 자리 숫자도 쓰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드물지만, 더 신중히 그리고 정해진 규정을 다시 한번 찾아본다.



이 부분에서 자주 환자, 혹은 환자 보호자와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말도 되지 않는 것을 우기면서 진단 주수를 늘려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절대로 누구가의 말, 그런 것으로 진단서는 작성하지 않는다. 정해진 규정에 따라 있는 그대로 적으면 된다.



오늘 친구가 들고 있는 나의 진단서에도 당연히 진단 주수가 있을 것이다. 친구인 변호사도 아마 이 진단 주수를 참고로 사건 해결, 재판을 준비할 것이다. 진단 주수, 그리고 상병명, 그리고 어쩌면 내가 쓴 글자 하나를 의뢰인 편에 어떻게든 유리하고 도움 되도록 해석, 변론할 것이다. 당연히 친구는 공과 사가 있기에 들고 있는 서류에 대한 내용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어떤 진단서인지, 내가 치료한, 혹은 내가 그 환자의 피를 얼마나 쏟아부으며 수술한 환자인지, 잠시 궁금하였지만. 너무 복잡하게 살지 않기로 하였다. 당연히 법의 기준에 다들 알아서 할 것이기에. 나는 내 본분만 지키면 된다.




3.


지금 쓰는 이 글을 누군가 보고 있다.


쓰고 있는 지금, 내가 가장 먼저 읽어본다. 읽으면서 수정할 부분들을 수정한다. 전체적으로 다 작성한 후 혼자서 리뷰, 퇴고를 해본다. 혹시 수정할 것들이 있는지. 그다음 이 글의 발행 버튼을 누른다. 나의 블로그를 예약, 알람 설정해둔 누군가는 글을 일찍 자연스럽게 볼 것이다. 의사와 변호사 그리고 진단서라는 제목에 호기심으로 자세히 읽어볼 수 있다. 간혹 누군가는 초록창에 검색 단어를 진단서라고 넣고 이 글이 알고리즘으로 뜰 수 있다. 그러나 글이 그리 정보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대략 읽고 넘어가버릴 수 있다.


'

내가 작성한 진단서를 누군가가 보고 있다.

변호사 동창이 경첩의사가 쓴 진단서를 보았다.

'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름 석 자도 남기지만 동시에 흔적을 남긴다. 나 혼자서 흔적일 수 있지만, 내가 하는 일, 혹은 누군가를 위한 그 흔적이 될 수 있다. 그날 내가 작성한 진단서는 무고하게, 안타깝게 타인의 실수나 고의에 의해 다치거나 피나는 환자의 억울함을 조금 덜어주기 위해 정성껏 작성한 진단서일 수 있다. 나도 사람이기에 억울하게 다친 환자의 진단서는 더 한번 확인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빠지는 진단명이 없는지 확인한다. 나의 진단서 A4 용지 하나로 그 환자의 건강을 단번에 돌아오게 할 수 없지만, 그거 그것이 나의 임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 생각을 내 친구인 변호사도 하고 있다. 공정한 법의 잣대,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 되길.


변호사 친구가 내가 쓴 진단서를 보다.

변호사 친구를 말하다 보니 어린 시절 이야기 꿈이 생각나네요.


https://blog.naver.com/mdearnest/223260055848



30년 전 변호사 꿈을 가졌던 시골 초등, 중학생 아이.

시간이 흘러 다시 나에게 질문한다….


'다시 선택하라면 의사 vs 변호사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요?‘


둘 다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지만, 내가 지금 하는 경첩의사가 맞는지 경첩변호사가 맞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경첩의사. vs 경첩변호사.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경첩으로 살아가겠다!‘






글 내용과 별도 이야기이지만, 나의 어릴 적 꿈 중에 하나는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길을 잘못 들었는지,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지금은 이 일을 하고 있네요. 그렇죠. 인생은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 또한 누군가 보고, 누군가의 꿈이 변호사에서 외상외과의사로 바뀌지 않을지? 아니며, 그대로 변호사 꿈을 이어갈지 궁금하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는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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