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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Jan 14. 2024

11년 산 참기름 선물

11년 전 살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1년 산 참기름 선물 [ 11년 만에 참기름으로 돌아오다 ] 

 

[ 이 글은 경첩의사 의심이 살짝 들어간 추리 소설, 에세이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해피엔딩입니다. 

미리 말씀드려 흥미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경첩의사가 다시 읽어봐도 흥미진진합니다! 

자~~~ 갑니다!  

오늘의 글!  ]


 11년 만에 11년 산 참기름으로 돌아오다! 




1.

 "외래로 택배가 왔어요!"

 

어? 이상하다. 나에게 올 택배가 없는데...

병원으로 오는 택배이기에 환자나 환자 보호자가 보냈을 가능성이 1순위다.

간혹 감사의 선물,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오는 경우가 있다.

 

"커다란 아이스박스예요"

 

그래도 내 이름으로 온 택배이기에 외래로 가서 택배 상자를 받았다. 

정말 큰 아이스박스다.

 

보낸 사람 이름은 '이 OO '이다. 

모르겠다. 약간 흔한 이름이다.

최근 2~3년 이내 환자 이름들은 어느 정도 기억한다. 물론 모든 환자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 정도 크기 상자에 택배를 보낼 정도의 환자라면 큰 수술이나 경첩의사를 엄청 고생시킨 한 환자였으리라 생각이 된다. 

아무리 머리를 돌려도 '이OO' 환자를 모르겠다.

 

 

그래도 택배 상자는 열어보는 재미, 순간의 기쁨이 있기에 외래 간호사들과 함께 열었다. 솔직히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하였다.

개봉 박두!

보이는 것처럼 참기름, 들기름 10병이 가지런히 담겨있다. 조심스럽게 뽁뽁이와 신문지를 사이사이 잘 채워서 넣은 참기름 상자다. 그때 갑자기 옆에 있던 외래 간호사가 말한다. 지난주 외래로 전화가 왔었던 것이 생각났다고. 어느 환자가 나를 찾는 전화, 그리고 나에게 선물, 택배를 보낸다는 전화가 왔다고 한다.

 

[ 사진은 참기름, 들기름 몇 병을 꺼낸 후, 생각나서 찍어놓은 인증 사진이다.

처음 열었을 때 모습은 정말 정갈, 정성이 포개져 담긴 모습니다.

정성이 신문지, 뽁뽁이에 가득 들어있었다^^ ] 

참기름, 들기름 열병. 그리고 환자 이름, 전화번호만 안다. 

 

순간 너무 고민이 되었다.

 

최근 불안, 불신의 사회, 이상한 영화, 사건사고 뉴스를 많이 봐서 그런지 머릿속에 의심의 싹이 트기 시작하였다.

아주 조금의 의심이 살짝 들었다. 

나는 도저히 누군지 모르는 사람, 정말 내가 본 환자가 맞는지?

 

10병이나 되는 참기름, 들기름... 과연 사람이 먹는 기름이 맞는지도?

정말 참기름인가? 

성분 조사를 의뢰해야 하나???

합리적 의심은 아니지만 충분히 의심의 눈초리, 의심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참기름 병을 열고 마셔볼 수도 없다.

마시고 혹시나 쓰러지면... 누가 나를 응급실로 끌고 가려나?

그냥 마셔보고 검증을 해야 하나?

열병을 모두 마셔볼 수도 없고???

 

 

이때 외래 간호사가 찾는다. 

이름과 전화번호, 외과 외래에 다녀간 기록을 역으로 찾는 방법을 동원한다.

 

"2013년에 입원, 외래에 다녀간 기록이 있는데요!"

"이OO 환자. 기억하세요?! " 

"교수님 앞으로 그때 입원도 하였는데요?"

 

 

2013년이라고요?

 

그때는 경첩의사가 초짜, 외과전문의 시절인데요?

컴퓨터 포맷 시키는 것처럼, 머리 안에 2013년 기억은 다 사라졌다. 

20,30대 경첩의사 머리라면 11년 전 기억도 자동으로 꺼내 재생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기능이 매우 떨어져 버렸다.

 

아... 정말 모르겠다.

누구인가?

이 OO 환자!!!

그리고 저 참, 들기름의 정체는???

 



2.

 

내가 본 환자였다는 객관적 기록은 확보하였다. 

 

환자는 기억 못 하지만 경첩의사 머리에 환자 CT 사진은 기억하기도 한다.

환자 병록번호를 찾아 환자의 CT 사진을 열어본다.

첫 CT 가 없다. 

정확히는 환자는 CT 도 찍지 못하고 수술실로 직행하였다.

그만큼 최악의 상태였나???

1차 수술을 한 이후 CT만 있고 추가로 하나 더 CT 가 있기는 하다.

[ 간혹 환자 얼굴보다 수술 소견, CT 상 출혈이나 장기 손상이 너무 심해서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환자는 수술 전에 CT 검사를 통해 출혈이나 손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수술 결정, 수술을 시행한다. 너무 심한 문제, CT 검사할 상황이나 환자 혈압이 매우 불안정할 경우 바로 수술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 환자는 배에 피가 가득 고인 CT 가 없기에 매우 불안정하였던 환자가 분명하다. 

 

CT 사진으로 도저히 기억은 안 난다.

 

'이 OO 환자' 이 환자는 과연 내가 본 환자가 맞는지???

계속 의심이 남아있고, 참, 들기름 10개는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 연속이다. 

 

이럴 때는 정공법을 따른다.

정면돌파!

  

이 OO 환자가, 내가, 경첩의사가 입원시켜서 보고, 외래진료도 본 객관적 기록이 있다. 의심이 약간은 해소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쪽은 살짝 이상한 느낌이 계속 있다.

 

전화를 한다. 

[ 이때는 꼭 병원의 유선전화를 이용한다. 

 혹시나 내 개인 핸드폰 번호가 유출되면 안 된다. 유출되어 몇 년 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건강 문제 상담 전화가 온다.]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한다. 

 

"안녕하세요! 

 경첩의사라고 합니다. 

 OO 대학병원에 있는 경첩의사입니다"

"기억하시나요? 혹시 참기름?"

 

"반갑습니다!"

"이렇게 전화까지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당연히 기억납니다!"

"참기름 별것 아닌데 너무 고마워서 보내드렸습니다"

 

"10년도 넘었는데, 그때 정말 잘 치료, 수술해 주셔서 너무 기억에 남습니다!"

"덕분에 지금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도 도저히 기억에 안 난다.

어떻게 내가 수술한 환자인지, 교통사고 인지? 다른 문제인지?

목소리는 한 60대 여성분으로 들리는데... 

아 답답하다.

 

우선 목소리, 나와 3분간 대화를 복귀해 보면 참기름이 진짜 참기름, 내가 먹어도 되는 참기름으로 100% 장담할 수 있겠다. 내가 본 환자는 확실하고, 이 OO 분께서도 본인이 직접 짜서 보내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살려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환자들 건강, 치료도 중요하지만 경첩의사분 건강도 잘 챙기세요!"

이렇게 전화를 마무리하였다. 

내가 본 환자, 나에게 정말 감사해하는 환자가 맞나 보다. 

경첩의사 건강 걱정을 이렇게 해주시는 것 보니.

 

고민은 해소가 확실히 안되었지만, 참,들기름이 먹어도 된다는 확신은 생겼다.

총 10병의 참,들기름을 나누었다. 

나는 세병을 가져왔고 나머지는 간호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집에서 참,들기름으로 맛있는 요리를 해서 드시라고!

역시 환자에게 받은 선물은 병원에서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야 제맛이다. 

 

 

 

3.

 전화 통화를 하고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참기름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의심은 확실히 없어졌으나 어떤 환자인지 너무 궁금하였다. 참기름을 먹기 전에 정확히 확인을 더 하기로 한다. 

 

 

방법을 찾았다. 

경첩의사가 직접 외래진료, 입원하였던 환자는 당시 수술기록지 등을 간단히 조회가 가능하였다. 

 

찾았다. 

내가 쓴 수술 기록지를 찾았다.

2013년 기록.

"총 2,000 cc 출혈, 복강 내 혈액.

복강 내 상장간막 동맥과 정맥이 일부 찢어지고 손상. " 

 [ 상장간막동맥은 복부 대동맥에서 직접 분지가 되어 복강 내 소장, 췌장, 대장 일부에 혈액을 공급한다. 이 상장간동맥은 지방조직인 장간막 사이에 숨어 있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 

서서히 기억이 날 듯하다. 

CT 사진과 2,000 cc 출혈, 상장간막 동맥과 정맥 손상

마지막에 수술에 들어간 시간 새벽 2시.

 

아...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무슨 추리 소설도 아니고, 그래도 2,000 cc 가까이 출혈과 새벽 2시 수술.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1년이 더 지났다.

내가 O 십 대에서 O 십 대로 변하였기에 뇌 저장 용량에 한계가 다다른 것 같다. 100% 퍼즐이 다 맞춰지지 않는다. 

초보, 초짜 외과 전문의, 경첩의사 시절에 어렵고 힘들게 수술, 치료한 환자였던 것은 확실하다. 

 

모든 환자, 아픈 사람들은 중요하고, 어렵겠지만, 

가령 손가락뼈 하나, 발목뼈 하나 혹은 감기 등은 쉽게 '네~ 기억납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2,000 cc 출혈, 커다란 동맥과 정맥, 새벽 2시'는 참 어려운 조합이다. 

 

 

경첩의사가 받는 것은 11년 지나서도 환자 기억에 남은 의사라는 것.

그 마음을 잊지 않고, 11년 동안 간직하고 경첩의사에게 선물을 보냈다.

경첩의사 기억 용량의 한계는 이미 지워졌지만,

그 환자, 이 OO 환자에게는 10년이 지나도 

기억이, 생명을 살려주었다는 감사 마음이 참,들기름처럼 찐득하게 남아 있나 보다!

 

11년 산 양주가 아닌 11년 산 참,들기름 선물이다. 

이OO 환자에게 자신을 살려준 의사로 경첩의사를 기억해 주고 있다.

참,들기름이 이번에 짠 2023년 산 참깨, 들깨가 아니라

이미 10년 전에 짜놓고 묵혀 놓은 10년 산, 11년 산 참,들기름이 아닐까 하다.

 

이 OO 환자분!  

건강하셔서 경첩의사도 행복합니다! 

 

경첩의사 책 나오면 꼭 사서 보세요! 

 

글을 쓰면서 기억을 다시 꺼내고 조각들을 맞춰본다.

'2,000cc 피, 상장간막동맥, 새벽 2시' 조합으로 합쳐보니 기억이 날듯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OO 환자 얼굴은 기억은 안 납니다.

그러나 '이OO' 환자분 뱃속은 기억이 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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