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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Dec 03. 2019

주민센터에서 #1.

출퇴근하기 편하고, 근무 일수도 적당한 기관에서 한국어 교원 채용 공고가 나왔다.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구인 공고라 반갑기보다 놓치면 다시 언제일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마음이 바쁘다.

겨우 3개월 강의 조건이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서류심사에서도 통과가 될지 안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 일 걱정에 딸막대며 주춤거릴 시간이 없다. 준비해야 할 서류만 최소 6-7가지.

정규직도 아니고 1년 계약직도 아닌, 딸랑 12주 단위 일자리 확정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6-7가지 니..

따라붙는 투덜거림이 한 사발이지만 어쩌겠나. 일자리 구하는 사람이 거쳐야 할 과정인걸.


최종학력 증명서(졸업증명서). 이걸 떼려면 어떤 방식으로 신청을 했건 한 번은 주민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거기에 3개월 내에 발급한 주민등록등본도 필요하다. 급해진 마음 때문인지 20여분 걸어야 도착하는 주민센터가 오늘따라 꽤나 멀다 싶다.

그렇게 허위허위 도착을 했는데 이건 또 웬 익숙지 않은 분위기인가.

동네 사람들이 죄다 모였나 북적북적. 하필이면 마음 바쁜 내가 일 좀 보려 하는 이 마당에...!

띵똥 띵똥 아무리 울려도 앞에 버티고 있는 사람이 16명 이란다. 족히 30분은 기다려야겠군. 안 봐도 알겠다.

짜증으로 가득한 내 눈빛.


이럴 때 꼭 짜증에 기름을 들이붓는 일이 생긴다.

등받이가 없는 대기 의자 때문에 안 그래도 불편한데 넓은 앞자리를 두고 할아버지 한 분과, 남자 한 명이 내 앞을 지나 내 옆에 앉으려 한다. 하필..!!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두껍게 옷을 껴 입어서 일까.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시면서 내 발을 지긋이 꾹 밟아 주신다.


“하…….” 소리를 지르려니 어르신이고, 가만히 있으려니 아프다.

아니, 아픈 것보다 총체적으로다가 ‘짜증!’ 짜증이 울컥 밀려오고 있다.

‘지나가자. 지나가자…’


그렇게 앉으신 부자지간의 두 남자. 딱히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취미가 있는 건 아니고,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안 들을 수가 없었다. 안 듣기엔 너무 가까운 지리적 요인? 그랬다.


남자 1 : “아버지. 그러니까 여기에 말하면 다 알아볼 수 있다고요. 부동산이랑 현금. 하여튼 다 나와요.”

할아버지 :  “…………..”

남자 1 : “**(고모의 딸로 추정)가 아무 말 안 하는 걸 보니까 이미 다 조회 끝내고 준비하고 있는 거라고요.”

할아버지 : “그거야 모르지..”


아들의 말투는 무언가 캐내서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 의지가 가득해 보이는 반면 할아버지는 목소리에 영 힘이 실리지 않으시는 게 탐탁지 않은 느낌이다. 그 와중에 아들에게 걸려온 핸드폰. (이 대화에서 대충 방문의 목적을 눈치챌 수 있었음)

 

남자 1 : “지금 아버지 모시고 와 있어. 다 알아내서 나눠야지. 어디 슬쩍 넘어가려고.”


약 5분간의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니, 아버지의 어머니. 즉, 남자의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친할머니 명의의 재산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 정리를 안 해놓고 돌아가신 건지, 돌아가시자 남겨진 재산이 무엇이며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해진 모양. 남자는 고모 집 딸, 사촌이 나서서 이미 할머니가 남기신 재신이 무엇인지 확인을 해서 어떤 것을 가져갈지, 심지어 감출지 모의를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눈치. 그래서 오늘 맞불로 아버지를 직접 모시고 주민센터를 방문 할머니 재산의 실체를 밝히려 하는 듯.

그런데.. 남자 1. 궁극적인 목표가 따로 있었다.


남자 1 : "그러니까 이번에 받으시면 일 그만두세요. 그냥 그거 쓰시면서 사세요."

할아버지 : "……….."

남자 1 : "이제 일 안 하셔도 되는 나이예요. 그 정도 받으면 그만두세요. 네?"

할아버지 : "…………."


피할 수 없는 바깥공기와 해 때문에 그을리고 주름진 것이 분명한 할아버지의 얼굴.

족히 70은 훌쩍 넘기신 것 같은데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시다니 멋쟁이 시구나!! 하려니 남자 1의 말로 미루어 몸이 편한 일을 하고 계신 건 아닌 모양. 제발 아버지가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남자 1의 거듭된 당부와 달리 할아버지는 시원한 대답 한 번을 안 하셨다. 돌아가신 부모의 돈을 애써 찾아 그 돈으로 쉬고 싶지 않으신 건지, 얼마큼 일진 모르나 형제자매가 아닌 손주들이 재산 정리 일선에 나서 움직이는 모양이 탐탁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돈과 상관없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던 일, 노동(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 없지만)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을 져버리고 싶지 않아선지. 여하튼 할아버지의 의중을 엿듣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 뒤, 띵똥! 내 번호를 알리는 소리에 나는 졸업 증명서를 찾으러 일어섰다.


돈을 벌려고 일 하는 건 아니라면서 돈이 많으면 당장 일을 그만둘 거란 사람들이 내 주변엔 참 많다.

그러니까 ‘돈 때문에 일 하는 거냐’ 물어보면 나이가 많아질수록(특히나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고 한창 돈 쓸 일 밖에 없는 중년일수록)’아니진 않다..’라는 답변을(거의 말 꼬리를 흐리면서) 한다.

그런데 그 소나기 같은 시기가 지나고 나면 또 답변이 달라지기도 한다.

애들은 다 키워놨고, 놀면 뭐하냐, 움직여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벌어야지 혹은 일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거기에 이제부터라도 노후를 살펴야 하므로.... 일 앞에선 늘 이유가 떠나질 않아 말이 많아진다.

당장 내 앞에 로또 당첨, 몰랐던 거액의 상속..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쩔까…


문득 대체 나는 왜 이렇게도 일을 하려는 거고, 하고 싶은 걸까.. 싶어 졌다.

 이력서를 내야 하는 이 시점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이 생각들! 고개를 저으면 사라진다. 얍!!     


할아버지는 당장 일을 그만두셨을까, 어쩌셨을까...

내가 남자 1이어도 늙은 나이에 일하시느라 고생하시는 내 아버지를 봐주는 건

마음이 너무도 힘든 일이었을 거다.

어떤 결론이 났건, 뭐라도 아주 많이 받으셔서 신나는 일이 생기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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