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산 영락공원 화장터에서, '12번실'의 화장 화면이 송출되는 자리 앞에 앉아 엄마는 내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목장을 하고 싶다.
-네, 나는 그냥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줘요.
-그건 네 장례를 봐줄 사람한테 말해야지.
이상하게도 엄마는 당신이 내 장례를 보게될 일이라곤 없는 것처럼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그리 오래 살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도 그는 나의 장수를 기정사실로 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의 생각이 맞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에요. 나는 불행하게도 오래오래 살게 되겠지요. 그런 예감이 듭니다.
할머니가 죽은 것은 한달 하고도 며칠 전의 일입니다.
나는 야간근로를 마치고 와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별안간 잠에서 깼습니다. 잠을 방해받지 않으려 휴대폰은 '방해금지 모드'를 켜놓고 잠드는 까닭에 아버지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아무런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때 내가 깨어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할머니 돌아가셨다. 내려와라.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온몸이 예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나는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라면을 한 그릇 끓여먹었고, 맥주를 한 캔 마셨고, 그리고서도 한참 후에야 파트타임잡과 수업과 상담 일정을 미루기 위한 연락을 돌렸습니다.
부산은 따뜻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에요. 눈이라곤 오지 않는 도시니까요. 어릴적 부산에 살때 딱 한번 눈이 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와 내 동생은 2층 마당에서 작은 눈사람을 두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이 될때까지 그것을 냉동실에 얼려두었지요. 싸인펜으로 그린 얼굴이 모두 녹아 없어질때까지 그것들은 그 안에 있었습니다.
동생은 할머니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조차도요. 하지만 살다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 않던가요. 동생의 존재 방식 역시 제게는 그렇습니다. 나는 그애를 이해할 수 없게 된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왜 그애가 더이상 집에 오지 않는지를 궁금해하곤 했습니다.
그건 7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요. 할아버지는 임종 직전에 제게 물었습니다. 그애는 어디에 있느냐고요. 나는 그애가 있는 시골마을의 이름을 읊었으나 그것은 답이 되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왜 자신을 보러오지 않느냐고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모릅니다.
죽은 사람을 산 사람 취급하는 게 어려운만큼 산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하기란 어려운 모양입니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모두들 그애를 찾았으니까요. 나는 이제 그냥 일가친척들이 그애를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나 역시 그애를 보지못한지 3년이 다 되어 갑니다. 더이상 내가 할말이라곤 없습니다.
이튿날 아침 8시, 할머니는 입관했습니다.
정확히는 할머니의 육체가 입관을 한거지요. 할머니의 혼은 이미 멀리 떠나고 난 뒤일테니까요. 적어도 혼이란게 있다면 말입니다. 상주석에 앉아 맞절을 할때마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극락왕생을 하시옵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다음 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렇다면 이번에는 미국의 부자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다 하고 사시라고.
그 시대의 여성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할머니는 당신이 뭘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로 한 평생을 사셨습니다. 그저 결혼을 하고, 밥을 짓고, 자식을 여섯명이나 낳고, 그 여섯명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고, 그러고 나서는 나와 동생이 태어났지요. 그래서 또 나와 동생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고, 그걸 다 하고나니 당신은 이미 노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식이지요.
고모들 중 누군가가 할머니의 차가운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고마웠어요.
정말 그렇습니다. 고마웠어요. 그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마웠어요.
할머니는 그림그리는 걸 좋아했던가요.
재봉틀로 예쁜 옷을 지어입히는 것을 좋아했던가요.
꽃을 좋아했던가요.
국수와 생선구이를 좋아했던가요.
엄마를 따라 서울로 이사오고난 이후로도 방학마다 나와 동생은 부산에 가서 지냈습니다.
마지막 날이면 할머니는 항상 돈까스를 튀겨주곤 했습니다. 커다란 접시에 돈까스를 올리고, 직접 만든 소스를 올리고, 시장에서 사온 콘통조림을 올리고, 양상추를 썰고 케찹을 뿌리고, 동그랗게 모양을 낸 밥에 참깨를 올려서 경양식을 차려주었습니다. 그게 할머니의 가장 큰 정성이라는 것을 어린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성인이 되고 대학에 들어갈때까지 줄곧 마지막 날이면 나에게 그 돈까스 경양식 한 접시를 차려주었습니다.
할머니는 나와 동생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이름들에는, 사람 이름에는 잘 쓰지 않는 한자가 들어가 있었지요.
할머니에게 왜 그런 한자를 썼느냐고 묻는 것을 나는 언제나 깜빡했습니다. 열한 살때부터 열입곱 살때까지, 또 스물 한살부터 스물 일곱살때까지 언제나 깜빡했습니다. 그래서 한번도 물어보지 못한채로 할머니가 먼저 그 이유를 잊었습니다. 마지막 직전에 본 할머니의 모습은 내 얼굴을 알고 있을 뿐 다른 모든 것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장례식에 다녀온 후 나는 서울 내 집에서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연명치료거부"에 대해 검색했습니다.
할머니의 장례가 끝난 날은 내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기로 동의하자는 결심을 한 날이 되었습니다.
나는 알부민이라는 영양제를 때려넣어 의식도 없는 채로 숨만 붙어있고 싶지 않아요. 할머니는 눈을 감은 채 영양제를 맞으며 한 달 동안 더 숨 쉬었을 뿐입니다. 나는 그냥 죽고싶습니다. 나를 죽도록 허락해주길 원합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쩌면 먼 훗날일지도, 어쩌면 근시일일지도요.
마음이 몹시 궁핍하였던 이십대 초반의 어느때마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대해 상상하기를 즐겼습니다. 내 상상속에서 그것은 10년 후도 20년 후도 아닌 분명한 근시일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내 장례식에서 틀 음악에 대해 생각하거나 내 장례식에 모여들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리곤 친구가 별로 없어서 어떡하지, 같은 생각을 하곤 했는데요. 그것은 한국의 장례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했던 생각으로, 아마도 그즈음에 실제로 내 장례식이 치러졌다면 내 친구가 아닌 엄마와 아빠가 아는 모든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할머니의 장례식에는 할머니의 손님 같은 건 한명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 중에는 얼마전 자살한 자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그 장례식은 어땠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것을 언제나 참습니다.
나는 단지 순수하게 궁금합니다.
자살한 사람의 장례에서도 육개장은 펄펄 끓을지, 종이컵에 탄 믹스커피는 텁텁할지 말입니다.
나는 관념만으로 그곳을 상상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 결코 나의 일이나, 내 친구의 일이 될 일이라곤 없는 것 처럼 두려움에 떨면서 말입니다.
죽음에 대해 할 말이라곤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까지도, 아니, 어쩌면 비로소, 나를 죽음보다는 삶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싫은 날은 언제나 찾아오고, 그런 날이면 나는 노트를 꺼내 '죽으면 안 좋은 것들'이라는 우스운 제목 아래 목록을 써내려 갑니다.
1. PTA(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 영화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된다.
2. 바밍타이거, 실리카겔, 한로로, 레드핫칠리페퍼스, 오아시스, 뉴진스의 신곡을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된다.
3. 내 고양이들이 평안한 삶을 잃게 된다.
4. 원피스 결말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ㅅㅂ 원피스는 뭐였던 건데?)
5. AI와 기술의 발전이 도달할 경지를 볼 수 없게 된다.
뭐 이런 것들을 적어보다가 6번째 항목을 급하게 덧붙입니다.
6. 꿈...을 이룰 수 없게 된다.
꿈이란게 아직도 있었던가요.
그제서야 나는 아주 오랜만에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만, 삶의 끝까지 도달해야만 역설적으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돌아가서 나를 있게 하는 것, 나를 지탱했던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즐겨듣는 라디오에서는 '국민배우'라고 칭해지는 한 배우의 죽음에 대해 3일째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제이는 라디오의 클로징멘트로 덧붙입니다. 이 라디오를 듣는 지금 이순간만큼은 그 배우에 대해, 그 배우의 영화에 대해 생각해달라고요.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생각합니다.
누가 나의 죽음을 기억해줄까.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나는 백만가지 재앙 속에서도 성실하게 일합니다. 그리고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장기기증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그만 생각하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