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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새롬 Jan 19. 2018

푸코, 담론의 질서

푸코의「담론의 질서」 서평

  한 사회에는 담론들이 존재하는 동시에 담론 밖에 존재할 수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도 함께 존재한다. 이에 푸코(Michel Foucault)는 ‘욕구’와 ‘제도’ 사이에 가상의 대화를 제시한다.


욕구 : 나는 내가 담론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제도: 당신이 담론의 질서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존재한다. 담론이 어떤 권력을 지니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로부터 취하게 되는 것이다.


  푸코의 『담론의 질서』는 주체를 희박화(reréfaction)시키면서 시작된다. 그의 기본 전제는 말하는 주체들이 담론에 예속되든, 역으로 담론이 말하는 개인들에게 예속되든 주체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말하는 한 주체가 담론들을 보존하고 생산하고 순환시키는 ‘담론적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 언표를 발화하더라도 주체가 희박한 것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그 주체에가 작동하는 배제와 거부의 메커니즘, 즉 담론적 통제는 말하는 주체가 아니라 발화된 언표의 형태나 내용에만 근거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론을 생산, 재생산시키는 담론적 사회들이나 담론적 사회의 역(逆)처럼 보이는 독트린적인 그룹들이나 모두 담론적 예속의 거대한 과정이 된다.


  이러한 전제 아래 그가 밝히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말한다는 사실 속에 담론들이 무한히 증식되고, 배제의 과정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구체적인 담론의 작동 원리가 글의 주된 내용이다. 이 글은 그의 여러 저작들인『정신병과 심리학(1954)』, 『광기의 역사(1961)』,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이 출간된 이후 그가 ‘꼴레쥬 드 프랑스’에 취임하면서 강의한 내용으로, 그동안 나름대로 정립된 푸코의 담론 개념과 관점을 조망하기에도 좋다.


1984년 푸코의 공개강연 (http://culture.pl/en/article/the-polish-connections-of-the-college-de-france)




  푸코는 담론이 수행하는 배제의 과정을 ① 금지, ② 분할과 배척, ③ 진위의 대립 등으로 정리하면서, 이를 종합하여 담론을 ‘특권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소’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담론은 ① 어떤 대상에 대한 금기, 어떤 상황에 있어서의 관례, 말하는 주체에의 배타적 권리를 드러내고, ② 발화된 말들을 거부하도록 만들거나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권리를 특정 집단에 부과하며, ③ 진리에 대한 의지를 강화시키고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에 담론이란 단지 욕구를 드러내거나 은폐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욕구의 대상, 사람들이 탈취하고자 하는 권력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푸코에게 담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우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담론들이 서로 교차하고 이웃면서도 서로를 배제하는 불연속적 실천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담론의 사건적 특성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생각은 그의 역사관과 맞닿아 있다.


  푸코는 역사에 일련의 방향이 존재한다는 생각, 전쟁·선언·왕조 등 묵직한 현상들이 중심 사건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사건은 물질적 요소들의 관계, 공존, 분산, 교차, 축적, 선택 등 물질적 분산의 효과로서 생산되는 동질적이고 불연속적인 것이기에, 사건들은 인과나 필연으로 얽혀있지 않고 불연속적인 계열 내지는 집합이 규칙성을 가진다. 이는 푸코의 작업에 바탕이 되는 핵심적인 컨셉으로, 그간 거대사건 중심의 인과적, 선형적으로 조망되었던 역사를 평평하게 펼쳐놓고 끊임없이 수정되는 복잡한 그물로 바라보게 해준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푸코는 담론들이 담론적 사건들의 집합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집합들의 형성과 변형을 추적하는 작업이 푸코의 담론분석이며, 담론의 우연성과 사건적 특성을 통제하고 제한하는 과정 내지는 원리를 밝히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는 그동안의 분석 사례를 통틀어 담론의 우연성을 제한하는 원리를 ①주석(해설)의 원리, ②저자의 원리, ③과목의 원리 등으로 정리한다. ➀ 담론은 주석들의 조건화된 반복과 변용 속에서, ➁ 저자-기능에 의해서 우연하고 사건적인 생산이 제한되고 ➂ 또한 의학, 식물학과 같은 과목들은 ‘맞는 것’과 오류의 틀을 바탕으로 담론의 생산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담론의 우연성’을 제한·통제하는 과정에 대한 비판 작업이 푸코의 주요 연구 내용이라면, ‘담론의 현실성’을 제거하는 철학 비판은 그의 인식론적 기반이다. 그에게, 칸트, 훗설, 메를로-퐁티 등의 '초험적 주체 철학'들은 비판 대상이다. 직관을 통해 사물의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거나, 사물이 이미 의미를 중얼거리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담론을 거치지 않아도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또 헤겔의 경우에도 담론을 로고스 운동을 통해, 사변의 중심에서 만날 수 있는 것으로 보기에, 합리적 이성을 통한 역사 및 사건 전개를 거부하는 푸코의 담론 철학과는 대치된다. 주체 철학들이 담론을 희박화한다고 비판하는 푸코의 노선은 확실하다. 주체를 희박화함으로써 담론을 지표화하는 것이다.




  '담론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표현처럼, 푸코의 작업에서 주체의 거의 소거된다. 주체를 희박화함으로써 갖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푸코의 담론 철학은 담론의 거대하고 부단하고 무질서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힘이 있다. 담론과 주체를 균형 있게 보려는 여타 학자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주체의 희박화 작업이 어느 정도 요청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담론분석은 역사, 사회, 문화 또는 그 유사한 것의 그물에서 어느 부분이 더 촘촘해지고 격자들이 늘어나는지, 그물의 생성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재분배하는 일련의 (배제) 과정이 어떻게 작동하였는지 살펴볼 때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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