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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의 뜨거운 유산

세대를 건너뛴 상속의 비밀

by 하기

영감님의 뜨거운 유산 : 세대를 건너뛴 상속의 비밀


고풍스러운 한옥, '만추당(萬秋堂)'의 안방에는 묵직한 침묵이 감돌았다. 한 폭의 동양화처럼 좌정한 노신사, 바로 이 가문의 대들보인 김영감(85세)의 눈빛은 창밖의 푸른 소나무처럼 단호했다.


“재산은… 희찬이에게 바로 물려줄 걸세.”


영감의 말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고개를 떨군 채 초조하게 앉아있던 아들, 김석진(60세)은 흠칫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장남인데….”


“장남? 자네가 내 재산을 받으면 뭘 할 텐가. 사업 실패로 날린 돈만 얼마인데. 내게는 자네보다 손자 희찬이(30세)가 더 믿음직스러워.” 영감의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함께 섭섭함이 묻어났다. 마치 사도세자가 미웠던 영조가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던 것처럼, 영감은 자신이 일군 부(富)가 아들의 손을 거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영감의 결정은 단지 개인적인 선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대생략 상속'이라는 법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30%의 벽, 세대생략 할증과세


며칠 후, 영감의 유언을 들은 가문의 재산 관리 변호사 박정민이 김석진을 만났다. 박 변호사의 표정은 심각했다.


“회장님(김영감)의 뜻은 알겠습니다만, 세금 문제가 만만치 않습니다.”


“세금이라니요? 상속세야 당연히 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석진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 아드님인 사장님을 건너뛰고 바로 손자분께 상속하시면, 국세청에서는 '세대생략 할증과세'를 적용합니다. 세대를 건너뛴 상속이라 하여 상속세 산출세액에 기본적으로 30%를 가산해야 합니다.”


“30%나 더 낸다고요?”


“네. 국가 입장에서는 사장님께 한 번, 그리고 사장님 사후에 손자분께 또 한 번, 총 두 번의 상속세를 받을 기회를 한 번에 포기하게 되니 그에 대한 '패널티' 성격인 셈이지요. 만약 손자 희찬 씨가 미성년자이고 상속재산 가액이 40억 원을 초과했다면, 그 할증률은 무려 40%까지 치솟았을 겁니다. 다행히 희찬 씨는 성인이시라 30%입니다.”


김석진은 한숨을 쉬었다. "결국 아버지 마음 편하자고 세금을 더 내는군요."


단기재상속 공제 : 아들의 배려


박 변호사는 이어서 복잡한 상황을 하나 더 설명했다.


“만약 회장님께서 사장님께 상속하시고, 사장님께서 만에 하나 10년 이내에 갑자기 사망하셔서 손자분께 다시 재산이 상속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번 연속으로 상속세를 내야 한다니… 손해가 막심하겠군요.”


“그렇습니다. 너무 단기간에 이중으로 상속세를 내는 상속인들에게는 법이 배려를 해줍니다. 바로 '단기재상속 공제'입니다. 재상속 기간이 짧을수록 공제율이 높아져, 1년 이내라면 100%, 10년 이내라면 10%까지 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법이 상속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인 셈이죠.”


하지만 영감의 계획은 이 길을 아예 피하려는 것이었다.


'불가피한 상속'의 예외, 대습상속


며칠 뒤, 희찬은 박 변호사를 찾아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변호사님, 만약… 만약 제가 상속을 받기 전에 아버님(김석진)께서 먼저 돌아가셨다면요? 그때도 할증과세를 내야 하나요?”


박 변호사는 미소를 지었다.


“그 경우에는 다릅니다. 그것을 법에서는 '대습상속(代襲相續)'이라고 합니다. 피상속인(영감)이 돌아가시기 전에 상속인(김석진)이 먼저 사망하여, 그 배우자나 직계비속(희찬)이 상속인의 지위를 대습(대신)하여 받는 경우죠. 이 상황은 세금을 절세하기 위한 '계획된 세대생략'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세대를 건너뛴 상속'으로 봅니다. 따라서 법에서는 이 경우 할증과세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7조 단서 조항).”


희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할아버지께서 아버님을 건너뛰고 저에게 직접 상속하는 것은, 아버님 생존 시에는 국가에 '벌금'을 내는 것과 같군요.”


박 변호사는 영감의 결정이 단호했음을 확인시켜주며 최종 서류를 내밀었다.


“영감님께서는 30%의 할증과세를 감수하고라도, 본인의 뜻과 부가 희찬 씨에게 바르게 전달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세법은 할증과세로 두 번의 세수 확보 기회를 보전하고, 영감님은 재산에 대한 최종적인 통제권을 행사하신 셈입니다.”


만추당의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렀다. 김영감의 뜨거운 유산은 그가 미워했던 아들에게는 섭섭함으로, 그가 사랑했던 손자에게는 묵직한 책임감과 함께 30%의 할증세금이라는 현실적인 부담을 안겨주며 마무리되었다. 세대를 건너뛴 상속의 결정은 개인의 감정뿐만 아니라, 냉철한 세법의 계산 속에서 이루어지는 드라마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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