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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눈물과 확정일자

'보증금 지킴이'의 비밀

by 하기

사장님의 눈물과 확정일자 : '보증금 지킴이'의 비밀


서울 종로의 오래된 골목, ‘청춘포차’는 인근 직장인들의 사랑방이었다. 넉넉한 인심과 칼칼한 찌개 맛으로 소문난 이곳의 주인, 박철수 사장(40세)은 매일같이 가게 문을 열며 희망을 키웠다.


철수 사장이 이곳에 들어올 때, 부동산 중개인은 신신당부했다. "사장님, 상가 임대차는 주택과 달라서 보증금 보호가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사업자등록과 함께 확정일자를 꼭 받아두셔야 합니다."


철수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확정일자가 무엇인지, 주택의 전입신고와 확정일자처럼 상가에서도 필수적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사업자등록 했으니 됐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닥쳐온 먹구름, 경매 통지서


평화로운 일상도 잠시, 어느 날 철수 사장의 가게 문에 충격적인 빨간 딱지가 붙었다. '부동산 임의경매개시 결정' 통지서였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건물주가 사업 실패로 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해 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철수 사장은 곧바로 계약서를 들고 법무사를 찾아갔다.


“법무사님, 저 큰일 났어요! 제 보증금 3억 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월세는 300만 원인데,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의 보증금 환산액(월세 * 100)}은 6억 원{3억 + (300만원 * 100)}으로 서울 지역 보호 기준인 9억 원 이하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은 맞습니다!”


법무사는 계약서를 꼼꼼히 살폈다.


“사장님, 사업자등록은 하셨네요. 그런데 확정일자를 받으셨나요? 임대차 계약서에 관할 세무서장의 도장이 찍혀 있습니까?”


철수 사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확정일자요? 그냥 사업자등록만 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주택도 아니고 상가는... 그걸 꼭 해야 하나요?”


법무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사장님! 주택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가 생명인 것처럼, 상가에서는 사업자등록과 확정일자가 보증금을 지키는 방패입니다.


'확정일자'의 마법 같은 효과


법무사는 냉정하게 설명했다.


“확정일자는 관할 세무서장이 ‘이 계약서는 이날 존재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해준 날짜입니다. 이 날짜가 찍혀 있어야 ‘효과’가 발생합니다.”


“무슨 효과 말인가요?”


“건물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갔을 때, 사장님의 보증금은 확정일자를 받은 그 날짜를 기준으로 다른 채권자들(은행, 다른 채권자 등) 중 후순위 권리자들보다 우선하여 돌려받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우선변제권입니다.”


"만약 확정일자가 없다면요?"


"확정일자가 없다면, 사장님은 그저 '일반 채권자'가 됩니다. 경매 대금으로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했던 은행이나 확정일자를 먼저 받은 다른 세입자들이 돈을 다 가져간 후, 남는 게 있다면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매에서는 남는 돈이 거의 없죠…."


철수 사장은 뒤늦게 후회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건물에는 이미 5년 전에 은행의 거액 근저당이 설정되어 있었다. 철수 사장은 사업자등록만 했을 뿐, 확정일자는 받지 않은 상태였다. 즉, 은행보다 후순위로 밀린 것이다.


'보증금 지킴이' 신청 방법


철수 사장은 당장이라도 세무서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미 경매 개시 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확정일자는 오직 계약 시점이나 입점 후 최대한 빨리 받아야 그 날짜를 기준으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사는 상가 임차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철수 사장에게 마지막으로 확정일자 신청 방법을 설명했다.


“사장님, 꼭 기억하십시오. 상가 임대차 계약서를 들고 건물 소재지 관할세무서 민원봉사실로 가셔야 합니다. 신규 사업자든 기존 사업자든, 임대차계약서 원본사업자등록(정정)신고서, 그리고 신분증을 들고 가서 '확정일자'를 신청해야 합니다. 세무서 직원이 계약서에 날짜와 도장을 찍어주는 순간, 사장님의 보증금은 비로소 법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철수 사장은 결국 보증금 대부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날 밤, 청춘포차의 불은 꺼져 있었고, 철수 사장은 뒤늦게 깨달은 '확정일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상가 사업자들에게 확정일자는 단순히 서류상의 절차가 아니라, 수년간의 땀과 희망이 담긴 보증금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라는 것을. 그의 눈물은 다른 수많은 상가 임차인들에게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남겼다. "사업자 등록과 동시에, 반드시 확정일자를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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