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과 보장을 포기하고 MLB에 도전하는 나의 작은 영웅 양현종.
SBS 정우영 캐스터의 양현종에 대한 극찬
"에이스가 되기에는 키가 너무 작다고 했다. 프로 입단후 3cm가 컸다. 그래도 여전히 작다고 했다.
불같은 빠른공을 뻥뻥 던지는데 심지어 그 공에 타자들이 헛스윙을 붕붕 돌려대는데 저렇게 높게 던지면 안된다고 했다. 심지어 제구가 좋지 않다고 했다.
슬라이더로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도 저래선 안된다고 했다. 체인지업을 던져야 에이스가 된다고 했다. 체인지업을 던졌다. 삼진을 산처럼 쌓아올려도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는 아니라고 했다."
"몸이 아파서 성적이 떨어졌는데, 군면제 받았더니 정신이 풀어졌다고 했다. 멘탈이 약한 선수라고 했다. 단지 몸이 아파서 못던진 것 뿐인데 정신을 걸고 넘어졌다."
"많은 승수를 올렸더니 평균자책점이 높다고 했다. 여름이면 자책점이 올라간다고 했다. 자책점을 낮췄다. 타고투저의 시대에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리그 평균자책점 1위가 됐다.
그래도 리그 에이스는 아니라고 했다. 에이스라면 이닝을 더 소화해야한다고 했다. 200이닝을 넘게 책임졌다. 그랬더니 이제는 또 좀 이기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20승을 했다.
지금까지 서술한 이야기는 한 투수가 지난 11시즌 동안 수많은 선입견에 맞섰던 이야기다. 그는 양현종이다.
이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에이스 양현종. 수많은 선입견을 극복한 그의 20승을 축하한다."
(출처=2017년 정우영 캐스터 인스타그램 @woo0c)
정우영 캐스터가 써놓은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다.
상대 간판 타자에게 홈런을 맞고 분해서 울던 투수, 방출당한 친구를 위해 등번호를 37번에서 54번으로 바꾼 선수. 군면제 후 부상,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던 투수. 2년간 위태로웠던 자신을 위해 겨울 내 3000구를 던진 투수. 팀의 재정상황이 꼬이자 수많은 계약금을 포기하고 1년계약으로 팀에 남은 선수. 팀의 최근 우승때 선발 등판을 포기하고 마무리 투수로 우승을 끝낸 선수.
그리고 모두가 끝났다고 말했을 때, 그 편견과 순간들을 스스로 증명해냈던 선수. 그는 명실상부 기아타이거즈, 한국프로야구 에이스 양현종이다.
많이 위태로웠던 2020시즌, 그리고 미국도전
사실 양현종의 미국 도전 의지는 2020시즌 시작 전부터 명확하였다.
2019시즌 3,4월의 부진(3월 2경기 2패 12이닝 평균자책점 5.25/ 4월 4경기 3패 18이닝 평균자책점 9.82)을 뒤로하고 6월부터 폭주한 그는 2019시즌 2.29라는 놀라운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2019시즌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고질병이었던 후반기 체력 난조를 위해 시즌을 천천히 준비하는 양현종만의 루틴 탓이었을까, 최근 3년간 양현종의 3,4,5월은 흔히 말하는 "폼이 덜 올라온 모습"이었다. 그래도 양현종은 자신만의 루틴대로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키며 6월부터 10월까지의 기아타이거즈를 지켜냈다. 팬들도 이를 인정하였다. '양현종은 올라올꺼니까.' '그래도 잘하겠지.' 라는 생각은 대부분의 기아팬들이 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언가 조금 이상하였다. 직구 구속이 현저히 떨어져보였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기아팬으로, 양현종을 응원하며 지켜봐왔던 나는 양현종이 좋을때와 좋지 않을때가 보인다. 유난히 변화구가 많고, 직구구속이 140km 초반에서 형성되는 날. 그런 날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계속 되기 시작했다.
양현종은 커브를 잘 던지지 않는다. 정확히 표현하면 커브가 주 구종이 아니다. 직구와 체인지업으로 카운트를 잡은 뒤, 슬라이더로 결정구를 뿌리는 그런 투수이다. 그러나 2020시즌 양현종에겐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직구에 힘은 없었고(평균 구속은 144정도이나 시즌 초반엔 140km 초반에서 많이 형성되었다.), 체인지업은 자주 난타당했으며, 남은공은 슬라이더 하나뿐이었다. 그마저도 직구가 뒷받힘 되어주지 않으면서 2013~2020시즌 이래 가장 좋지 않은 시즌을 보내야만 했다.
나와있는 사진 외에도 여러가지 주어진 상황과 데이터를 보면 여러가지를 추측해볼 수 있다.
1. 너무 많이 던졌다. 2000이닝에 가까운 통산 이닝, 그리고 2014시즌부터 연속해서 170이닝을 던지며 이닝 소화가 무리가 되었다는 주장은 기사까지 나왔다. 투수의 팔은 소모품이다. 피로가 쌓일 수 밖에 없고 2015~2019시즌까진 5년연속 180이닝을 던져왔다. 게다가 양현종은 국가대표 경기에도 큰 거부없이 던져왔다. 2017 WBC, 2018 아시안게임, 2019 프리미어 12 등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던져온 경기들을 포함하면 매년 200이닝에 가까운 투구를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탈이 안났던게 더 이상하다.
2. 2020시즌의 비정상적인 시작. 양현종은 시즌 준비에 예민한 투수이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인해 시즌이 무기한 연기가 되었고, 이로 인해 양현종의 시즌 준비 루틴도 무기한 연기되었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상황에 예민하지만, 양현종은 2월 후반에나 되야 실전 투구를 시작하는 선수이다. 그런 투수가 계속 해서 공을 쉬고있다가 급작스럽게 준비를 한다? 모든 선수들에게 조건은 같았겠지만 루틴에 예민한 양현종에겐 좋지 않은 상황이었음은 분명하다.
3. 가장 큰 문제는 직구와 체인지업 두 구종의 가치가 대폭 하락한 문제이다. 양현종의 주 구종은 직구-슬라이더-체인지업이다. 여기서 직구과 체인지업의 힘이 죽어버렸고, 힘이 죽은 직구와 체인지업은 타자들의 좋은 먹이감이었다. 한 구종이 문제가 된다면 그 구종을 덜 던지거나 그립을 바꾸는 등의 시도를 하면 되지만, 2개 구종이 동시에 꼬이면 문제가 커진다. 특히 양현종 같은 파워 피처에게 직구 구종가치의 하락은 엄청난 치명타이다. 직구로 먹고사는 투수가 직구가 죽었다? 정상적으로 시즌을 마친게 다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3-1 체인지업 역시 마찬가지다. 양현종의 체인지업은 결정구보단 카운트를 잡는 구종이다. 투스트라이크 이후엔 슬라이더를 많이 사용하지만 스트라이크보다 볼이 더 많다면 슬라이더보단 [직구나 체인지업]을 이용한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카운트를 잡기 위해 들어가는 2가지 구종이 모두 꼬이면서 이전이었으면 타자들이 지켜봤을 공이 안타가 되었다. 투수들이 모든 공을 전력투구를 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이 문제는 골치 아파진다. 체인지업이 밋밋해지고 직구도 힘이 떨어지며 카운트 싸움을 하지 못하는 투수가 된것이다. 당연히 피안타가 많아지고 힘든 경기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이것보다 더 많은 데이터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복합적으로 양현종에게 힘든 시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물론 7~9월이 되며 우리가 알던 양현종의 모습으로 되돌아왔고, 썩 나쁘지 않은 투구를 보여준 건 분명하다. 만약에 한국에 남는다면 괜찮은 대우를 받으면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다들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프랜차이즈인데. 양현종은 양현종이지. 한시즌 정도는 뭐,,,
양현종, ML 도전 최종 선택…데뷔 14년 만에 KIA 떠난다
양현종의 1차 데드라인은 1/20이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열흘을 미뤘고 결정의 날인 1/30. 무난하게 기아와 계약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대부분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양현종은 30일 기아와의 협상을 종료하고 미국 도전을 선택하였다.
왜 동시 협상을 하지 않고 미국을 우선적으로 택했냐를 물어본다면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1. 미국의 스프링캠프와 한국 스프링캠프 시작이 다르다. 미국은 시범경기를 치루면서 스프링캠프가 이뤄진다. 현재 계획되어있는 MLB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은 2월 중순. 한국의 스프링캠프는 2/1부터 시작이다.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에 따라 구단들은 움직인다. 한국의 입장에서야 양현종이 스프링캠프때문에 조급할 수 있겠지만, 미국 구단들 입장에선 아직 2,3주나 여유 기간이 있다.
1-1 여유기간. 여러가지 의미를 담는다. 시간이 될 수 있고, FA시장의 여유를 말할 수도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미국 구단들은 고액 선수들의 옵션을 실행하지 않고(n+1년 계약에서 +1년을 보통 옵션이라 칭한다.), 심한경우는 방출을 하기도 하며, 구단 직원들을 대량 해고 하기도 하였다.
어느 나라나 코로나 19로 힘든 상황을 보냈지만 MLB는 시즌 자체가 단축시즌으로 이뤄질 정도로 더욱 힘든 시즌을 보냈다. 수익은 없는데 지출은 많은 상황. 구단들이 지출 자체를 꺼리면서 FA시장도 너무 더디게 흘러갔다. 그나마 시즌이 임박한 지금에서야 상황이 흘러가니 메인 선수들의 행선지가 정해진다면 양현종에게도 눈길&관심&기회가 갈 수 있다.
2. 양현종의 조건은 단 하나이다. 40인 로스터 보장. 물론 쉽지 않은 조건은 맞다. MLB의 40인 로스터라는건 40인 안에 있는 선수로 메이저리그를 운영할 것이다라는 의미와 같다. (그마저도 40인 로스터 중에서 메이저리그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는 25인이다.) 또한 MLB는 선수연봉으로 그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문화&느낌이 어느정도 있다.
2-1 그러나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40인 로스터에만 나를 들어가게 해준다면, 마이너리그에 뛰어도 괜찮고 연봉이 낮아도 괜찮다는 본인의 의지를 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구단들이 지출을 줄이는 마당에 본인 스스로 연봉을 낮추고 들어오는 선수가 있다면? 어느 구단이든 선발 투수는 필요하다. 특히 중하위권 팀들에게 양현종 같은 선수가 1-2년을 버텨주면서 자신들의 투수 유망주를 키울 수 있다면 꽤나 괜찮은 복권일 수 있다.
3. 더할말 없이 자신의 의지이다. 류현진과 김광현, 오승환의 성공, 그리고 꿈의 무대라는 메이저리그. 어쩌면 1이닝, 1타자만이라도 미국에서 던져보고싶다는 그런 생각이 있었을 수 있다. 얼마전 황재균이 유튜브 방송에 나와 "백업이라도 좋으니 미국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계속 있고싶다"라는 발언은 헛으로 흘리기 힘들다.
내 마음속 대투수 양현종.
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동안 꽤나 열혈한 기아팬이었다. 같은 양씨라는 이유로 양현종을 좋아했고, 양현종이 힘들때도 큰 비난을 하기 힘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인데.
2017년, 스무살때 어렵게 잡은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양현종이 올라왔다. 나의 영웅같던 선수의 손끝에서 8년만에 기아의 우승이 만들어졌다.
2009년 어렸던 선수는 2017년 팀의 주장같은 존재로 팀을 이끌었고, 팀의 우승까지 함께하였다.
해태 팬들이 이종범과 선동열을 기억하듯, 기아팬들에게 양현종은 2009년과 2017년 우승을 이끈 우리의 [대투수]였다.
인성은 더할나위 없는데 야구까지 잘하는 선수. 안좋아하려야 안좋아 할 수가 없다.
첫문단에 써놓은 수많은 편견들을 기억하는가? 제구가 안되서 좋은 투수가 되기 힘들 것이다. 평균자책점이 높아서, 승수가 적어서, 팀을 이끌 지 못해서 에이스가 안된다. 등등 수많은 편견을 이겨낸 그는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기아팬들의 자부심, 영웅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그의 구위는 예전 같지 않고, 그의 미국도전은 또다시 편견과 무리일 수 있다. 정말 솔직히 미국에서 좋지 못한 대우를 받거나, 계약 자체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여태까지 그래왔듯,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 아니 왠지 잘 이겨낼 것 같다. 수많은 편견을 이겨내고 미국 무대에서 당당히 공을 던져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MLB 30개 구단에 자리가 없겠나 싶다. 데이터가 있는 한 감성이 이성을 지배하려고 잘 하지 않는데, 정말 진심으로 양현종은 마운드에 잘 올라와서 잘 던져줬으면 좋겠다. 내 마음속 작은 영웅이었던 당신의 소중한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