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밖으로 I

불혹의 시그널 여행

by 김성원

드라마 시그널은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과거의 그날과 현재의 그날을 보여주고 있다.

살다 보면 지금 내 모습에서 과거 내 모습이 그리워 지거나,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보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바로 그때가 2008년 가을로 기억한다.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 잠시 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무작정 떠났던 여행길...


무엇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였을까?

돌이켜 보면, 나 자신에 대한 조바심과 업무 성과 압박감, 사람 관계 부적응이 컸던 것 같다. 걸맞지 않은 옷을 입고, 많은 일을 고려하고, 책임이 따르는 위치에서 몇 년간 버터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결국은 견디다 견디다 못해 휴직을 신청하고 떠나게 된 여행!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나를 찾는다는 것이 어쩌면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당시에 있었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지에 대한 해답 아닌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불혹의 시그널 여행"을 시작했다.



작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할 나이에 뜻을 세우기 위한 고민으로 방황했던 나날의 연속.

"평범"이라는 말을 동경하며,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잣대에 맞추어 살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를 위로하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실패에 따른 아픔은 허무한 하루의 공허함을 채우고 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이것은 아니다는 생각도 함께 스쳤다.


살아온 날을 부정할 수 없고,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여기 왜 서 있는지 찾고 싶었다.


기억을 거슬러 살아온 날의 기억과 공간을 찾아 나서려 할 때, 절망과 행복과 사랑과 슬픔의 감정을 고스란히 안겨준 청소년 시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 시절 혼자 정말 많은 감정과 생각으로 내 안에서 힘겨워했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 중반...

사춘기 고민은 불확실한 미래와 현재를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함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괴감과 공부 순위에 따라 존재감을 결정짓는 당시 내가 숨 쉬고 있던 그 시공간이 너무도 싫었다. 몇 번을 고등학교 자퇴를 어머니와 상의했지만, 어머니는 학교만은 꼭... 그렇게 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학교를 오갔다. 학창 시절 어느 선생님의 말씀처럼 빈 가방만 메고, 학생 흉내를 내고, 영혼 없는 생활을 했다. 그나마 내가 찾은 도피처는 학교 도서관이었다. 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목적을 알 수 없는 수업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선생님 몰래 읽었다. 시, 역사, 소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돌이켜 보면 반항심과 도피처를 찾고 싶었고, 나만의 세상에 머물고 싶은 욕구가 작용했던 것 같다.

당시 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심취하였다.

지금은 가물가물한 책 내용...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 데미안은 당시 나에게 위로였고, 학교생활을 내 방식대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책이었다.


학교 생활은 나름 착실하게 생활 학생이었지만 난 당시 머릿속에 온통 내가 상상하는 그 무엇으로 가득 채웠었다. 선생님들은 말씀하셨다. "문제 일으키지 않고, 수업태도 좋은 녀석이 왜 성적이 내려가니? _ 그 이유는 당시 행복하지 않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며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지 않았고 공부만 강요했던, 이유 없이 공부만 강요당하는 시절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데미안은 세상의 탈출구였다. 아프락삭스를 알게 되고, 헤르만 헤세를 알게 되면서 삶의 다른 모습들을 찾아갔다.

데미안과 지와 사랑은 맥락이 이어지는 책으로 기억된다. 당시 헤르만 헤세 작품을 몇 권 더 읽었는 데.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 두 권뿐이다. 헤르만 헤세 이후 나에게 의미를 준 책은 카뮈의 이방인이었다. 어쩌면 그 제목에 내가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방인은 대학 시험일이 1주일 남겨 놓고, 우연히 맞이한 책이었다. 그 책에 빠져 난 그 1주일을 이방인과 함께 했다.


80년대 남자 고등학생이 시를 읽는다는 것은 흔한 상황은 아니었다. 당시 난 우연한 계기에 시를 접하게 되었고, 이후 시에 심취를 하게 되었다. 좋아하던 동네 여자 친구(실제는 짝사랑 감정이었다.)가 있었다. 그 친구 덕분에 읽게 된 시는 나의 감수성을 일깨워 주었다. 처음 읽은 시는 푸시킨의 삶이었다. 당시에 나에게 꽂혔던 시구절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펴하거나 노하지 말라"였다. 이후 시가 가진 함축적이고 중의적인 의미에 매료되어, 국내에 출간된 60대부터 80년대 거의 모든 시를 읽었다.


당시에는 누군가 나에게 시 한 구절만 말하면 어느 시인의 제목이 무엇이고, 그 시 구절의 앞 뒤를 읊을 정도였다. 지금은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당시 시는 나에게 정신적 위로가 되어 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시의 글 귀 한 구절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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