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부가 아니다

광부화가 황재형 작가, 지난 2월 27일 별세

Hwang Jae Hyoung_외눈박이의 식사_162.2x130.3cm_Oil on canvas_1984-1996.jpg 황재형_외눈박이의 식사_162.2x130.3cm_Oil on canvas_1984-1996, 가나아트센터 제공


예술가의 시선이 머무르며, 걸음이 향하는 곳. 그의 몸이 뿌리내리고, 사유가 꽃피는 땅. 동거하는 이들과 몸을 접속하고 서로의 통증을 보듬어 아픔을 나누는 자리. 예술가가 거주하는 땅은 그런 곳이다.


그가 머무르는 자리는 자연적이고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다. 중립적인 공간은 '자연이라는 환상'이 만든 곳에 불과하다. 예술가가 서 있는 자리는 언제나 권력과 자본이 창출한 계획된 공간이자 산업의 기지로서 자본과 노동이 투쟁하는 현장이다. 이러한 공간이 바로 황재형이 마주하고자 했던 영토다.


#황재형의 첫 번째 영토, 강원도 태백


황재형, 작은 탄천의 노을, 193.5x130cm, 캔버스에 유채, 2008.


광부화가 황재형(1952~2026)이 지난 2월 27일 자신의 자리를 비웠다. 그가 1980년대부터 삶을 마칠 때까지 살았던 강원도 태백은 산업화 시기 탄광과 막장으로 상징되는 '우리 안의 제3세계'였다. 빛나는 희망과는 거리가 먼 어둠과 절망이 숨 쉬고 있는 영토가 황재형의 자리였다.


탄광 마을은 검은 탄천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황재형이 본 것은 탄가루 섞인 어둠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 빛나는 섬광 한 줄기, 탄광촌에서도 희망을 밝히며 살아가는 태백 사람들의 표정, 그들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 자체가 태백이었고 그는 그곳에 머무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탄광은 태백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전체에 깃들어 있어요. 희망이 좌절된 곳, 암담한 절망만 있는 곳은 전부 탄광입니다"


#황재형의 두 번째 영토, 광부의 얼굴


황재형, 황지330, 227×130cm, 캔버스에 유화, 1981.


지난 40여년 간 황재형은 탄광의 굴 속과 광부의 맨 얼굴, 탄광촌과 강원도의 속살을 그려왔다. 그가 그리고자 했던 영토의 거주자들은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황재형이 붓을 놓을 때까지 천착한 주제의식이자 실제로 그가 마주하며 함께 살아 간 사람들이었다.


1982년 중앙미술대전에서 수상을 하며 주목을 받았지만 스스로를 현장의 '구경꾼'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이길 바랬다. 그가 결정적으로 광부 화가로서 살게 된 계기는 청년 황재형 스스로가 태백이라는 공간에서 느낀 어떤 부끄러움이었다.


"방학 때 탄광에서 신입생, 신입적자를 하게 되었는데, 떠나는 날 저의 선산부가 식사를 초대했어요. 그 분이 자개상에 차려준 라면 밥상을 차려줬는데 자개가 떨어진 자리에 고추가루, 반찬 찌꺼기들이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역겨움이 느껴지고 구토를 하게되었어요. 그때부터 제 자신을 보게 된거죠. 나는 그동안 구경꾼이었구나. 진정으로 내가 그리고자 하는것에 솔직한가. 나의 거부감도 이기지 못하면서 가난을 이야기하고 산업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작품 <황지330>은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자신의 얼굴이자 그에게 광부 일을 가르쳐주었던 선배의 얼굴이다. 그가 찾아나선 '사실'과 '세계'는 도시와 개발이 빛나는 서사가 아니라 가려진 역겨움과 싸우는 공간, 굴 속으로 드나들었던 이름 없는 얼굴들이 착용했던 작업복과 같은 한 인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세계였다.


#황재형의 세 번째 영토, 가려진 얼굴


선탄부권씨, 1996.jpg 황재형, 선탄부권씨, 72.6x60.7cm, 캔버스에 유채, 1996. 가나아트센터 제공


"시대가 진실을 가리고 은폐할 때 예술가는 그것을 드러내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사실대로 그리는 리얼리스트가 아니라 진실을 찾아가는 리얼리스트다"


그가 다가가고자 했던 진실은 산업과 자본이 예고하는 희망의 빛이 아니라 막장에 던져져 움크린 채 한 줄 빛에 의지해 삶을 맡기는 그야말로 맨 사람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가 가고자했던 길은 자기 정체성을 포장하기 위한 뜨내기 예술가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곳'에 살아가는 동료로서 예술가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작품 <선탄부 권씨>와 <드러난 얼굴>은 예술이 지상에서 머무르는 한 결코 인간 그 자체와 삶의 역사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진실을 적시한 증명서다. 그들의 두 눈은 연약하기보다 단단한 목소리로 생의 의지를 말하고, 입과 코를 가린 마스크와 다문 입은 자신들의 검은 정체성을 증언하고 있다. 탄이 켜켜이 쌓인 회색빛 얼굴과 주름은 그 자체로 자신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광부의 초상이다.


황재형, 드러난 얼굴, 2017,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2x130.3cm.jpg 황재형, 드러난 얼굴,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ⅹ130cm, 2017, 가나아트센터 제공


#다만 함께 할 뿐, 나는 광부가 아니다


"나는 화가인데, 내가 광부가 된다고 진정으로 광부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그들과 함께 할 뿐이지, 나는 광부라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러나 황재형은 태백에서 주변인이나 구경꾼으로 살지 않았다. 예술은 그저 예술가로, 작품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탄광 노동자들과 문화연대 활동을 실천했고, 미술교육 운동도 이어갔다. 끝없는 자기부정이 있음에서야 결국 온전한 자기존재가 완성되는 것일까. 다만 함께 할 뿐이라며, 끝내 광부라는 정체성을 부정한 황재형의 작품은 이제 '쥘 흙은 있어도 늴 땅 없는 이'들을 위한 노래가 되어 영원히 남게 되었다.


아버지의 자리. 캔버스에 유채, 2011-2013.jpg 황재형, 아버지의 자리, 227.3x162.1cm, 캔버스에 유채, 2011-2013, 가나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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