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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a Noon 미디어 눈 Jan 13. 2020

어중간한 내 인생, 대안을 찾다

[우리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1] -  대안학교 청소년 이야기

40만 명, 57만 명 조사하는 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적지 않은 수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다.  청소년은 곧 학생으로 인식되는 한국에서 이제는 학교 밖 청소년보다는 그냥 청소년, 청년으로 불리고 싶은 10인을 만났다. 각 스토리는 <미디어눈> 에디터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내러티브 혹은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기사에 사용된 이름은 청소년들의 신상보호를 위해 일부 수정이 있었음을 사전에 밝힌다. 

- 기자 말


  


"어중간한 내 인생, 대안을 찾다" 

                                                                                                                                                   송준호 에디터



“평균 점수 75점, 반에서 36명 중에 18~20등. 학교, 학원, 집만 계속 왔다 갔다 했지만, 굉장히 어중간한 점수였어요. 이렇게 살면 어중간한 대학과 직장을 다니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바득바득 해서 1등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박형준(19)은 고등학교, 대학, 직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인생의 유일한 길이 아니리라 생각했고 다른 길을 찾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시기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연기를 시작했어요. 연기 학원에 다니고 엑스트라지만 나름 공중파 드라마와 영화 합쳐서 4편에 출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보니 수학이랑 영어가 엄청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수학, 영어) 학원도 다 끊어버렸죠.” 형준은 사람들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이 좋았고 배우들이 멋져 보여서 한 때 연기자의 꿈을 꾸기도 했다. 연기했던 것은 다양한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끌렸다고 한다. 


“세상을 통해 배우고 싶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교과서를 보는 것처럼 드라마 대본을 봤고 일반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대안학교를 선택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어요.”


"세상이 제 학교였습니다."

◇ 첫 번째 학교 : 시간의 쓴맛과 단맛을 본 PC방과 대안학교


PC방에서 시간을 때우던 형준  ⓒ박형준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한 다른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형준은 PC방으로 향했다. “생각해보세요. 매일 학교에서 학원으로 정해진 대로만 다니는데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시간이 많으니까 어떻게 보낼지도 모르겠고 그동안 못했던 게임이나 실컷 했습니다.” 형준은 대안학교에서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도와줬지만 노는 것이 더 즐거워서 열심히 놀았다. 문득 자신이 일반 학교 다닐 때 생각하던 놀기만 하는 ‘양아치’의 모습이 겹쳐 보이자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저희 학교(대안)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구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1년이 지나면 학생과 부모님이 함께 모여서 그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데 (같이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이 나와는 달리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형준은 환경을 위해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국토 대장정, 해외 탐방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해낸 친구들을 보고 자극을 받아 대안학교에 재입학하였다.



“(두 번째 도전에서) 기획한 것의 70%를 성공했어요. 30%는 돈이 부족했고 예전의 게을렀던 습관이 완전히 고쳐지지 않아서 실패했어요. PC방만 다니며 시간을 낭비하던 제가 삶을 열심히 계획하고 성공을 거둔 변화에 놀랐어요. PC방과 대안학교를 통해 스스로 생각해서 계획을 세우는 법,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이제 없습니다. 사는 방법을 배웠으니까요.”


혜화에 혼자 놀러 가기, 아르바이트해서 돈 100만 원 모으기와 같이 단순한 것에서부터 통일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형준은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 계획을 세웠고 성공시켰다. 공교육 학교와 학원에서 나와서 갑자기 마주한 수많은 선택과 시간에 방황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를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 두 번째 학교: 필요를 채우는 법을 배운 아르바이트 



“저희 (대안) 학교에서 사회 교육의 일환으로 아르바이트 3개월이 필수 과목입니다. 용돈이 필요하기도 해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봤습니다. 웨딩홀에서 청소, 서빙, 설거지를 했고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 고깃집, 카페 그리고 코엑스에서 열리는 행사 안내원으로 일했습니다. 어디 가서 일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정도는 됐습니다.” 형준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제가 아르바이트 면접을 10번 이상 봤는데요. (공교육) 학교 안 다닌다고 하면 항상 무슨 문제 있냐고 물어봅니다. 머리도 까맣고 욕도 안 하는데 양아치 같이 보나 봐요. 나이 얘기하면 똑같은 알바생인데 저한테는 반말하시고요. 진짜 황당한 일도 있었는데 같이 일하는 대학생 형이 저보다 시급이 높았어요. 저는 최저시급(2017년)인 6,450원을 받았고 그 형은 7,000원을 받았습니다. 일도 제가 더 오래 했고 더 잘했는데 불공평했다고 생각합니다.”


형준은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업체에서 ‘만 19세 이상’ 혹은 ‘청소년 시급 0000원, 성인 시급 0000원’으로 청소년을 차별하는 기준을 대놓고 올려놓는 경우도 보았다고 한다. 


“월급을 한 달씩 밀려 받은 적도 있는데요. 사장님이 나쁜 분도 아니셔서 말도 못 하고 참 힘들었습니다. 사회 속에서 학교 밖 청소년이 어떤 시선을 받고 있는지를 알았고 굉장히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직접 사회를 마주하고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을 일찍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돈 벌기가 힘든 것을 아니까 부모님이 대단해 보였어요.” 


2019년 4월 그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학력을 얻었다. 한국 사회에서 무엇을 하든지 고등학교 학력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형준은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알았고 그것을 충족하면서 성장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카페가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형준 ⓒ박형준


◇ 세 번째 학교: 도전과 도움의 의미를 배웠던 자전거길 600km


“강원도의 고성에서 부산 시청까지 약 600km의 길을 자전거를 타고 완주하려는 프로젝트를 세웠습니다. 친구들까지 4명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 열심히 달렸어요. 딱 1시간을 달리니까 그때부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고 숨이 차서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만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리던 중에 돌조각이 자전거 바퀴를 뚫고 친구와 사인이 안 맞아서 낙차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자전거 타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어요.”


당장 방법이 없어서 근처 식당에서 식사하고 나왔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서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식사한 곳 옆에 개업을 준비하던 식당에 볼펜과 종이를 빌리러 갔다. 개업을 도와주러 오셨던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무슨 일이야? 자전거가 터졌네! 아줌마 차에 실어.” 시내에 있는 수리점에서 자전거를 고쳤다. “멋진 청년들이 도전하는데 든든하게 먹고 해야지” 아주머니는 식당을 하신다며 식당에서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고봉밥을 차려주셨다. 


“그냥 하고 싶어서 자전거를 탔는데, 뜻밖의 선물들을 받았어요. (자전거 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같이 출발했던 친구들과 서로 격려를 해줬어요. 함께하면 불가능이 가능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그리고 그냥 모르는 아주머니가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고 따뜻한 밥까지 차려준 것을 보고 세상이 살 만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도 조절하는 방법도 배웠고요”


600km의 자전거 대장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결의를 다지며 환호하는 모습이다. ⓒ박형준


"햇살같이 따뜻한 시선을 주세요.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정말 많이 성장한 것을 느낍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는 힘을 얻어가는 제 모습에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색안경은 더 낮은 시급과 막말로 드러났습니다. 차별 없는 시선은 수리된 자전거와 따뜻한 밥에 김치찌개 한 상으로 드러났습니다. 600km의 자전거 여행을 통해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도 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청소년들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합니다.”


영상 편집도 배우고 운전면허도 따고 싶고 스페인어도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학교 밖 청소년 박형준은 청소년 지도자 자격증은 꼭 따고 싶다고 했다.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차별 없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달라고 부탁했다. 



현재 형준은 본인이 다니던 대안학교에서 홍보와 청소년 캠프 운영 파트 인턴을 하고 있다.       ⓒ박형준



미디어눈은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미디어팀입니다. 이번 <학교밖청소년> 프로젝트는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6개월 동안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찾아서 인터뷰하고 기사와 영상으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누구이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미디어눈의 기사와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학교 밖 청소년 영상 콘텐츠를 아래 링크를 통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눈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7KdbP4pOc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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