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미움 받을 용기
육사 생도는 매혹적이었다. 어쩌면 나는 장교보다 사관생도에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잿빛 롱코트 제복에 붉은 장미를 안고 첫사랑을 재회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자신할 만큼 입학시험에 소홀함이 없었다.
그러나 신체검사 불합격이라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불행이 닥쳤다. 망연자실하게 화랑대 숙소를 나오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행여 도움이 될까하여, 며칠을 두고 참 군인에 대한 나름의 소회를 적어본 면접시험 자료를 침대 곁 탁자 위에 두고 왔다. 그 안에는 이순신 장군 이야기가 빼곡히 담겨있었다.
1597년 초,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전술적 판단 아래 왕 선조의 부산포 진격 지시를 거부했다. 그해 여름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끌던 조선수군이 전멸하다시피 참패하자, 선조는 백의종군 후 복직한 장군에게 수군을 버리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명을 내린다.
그러나 그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며 다시금 주군의 뜻을 거역했다. 이미 1594년에는 왜군을 치지 말라는 명나라 황제 신종의 칙사 담종인의 명령도 따르지 않았었다. 충무공은 온갖 비난과 박해를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항명했다.
장수로서 그는 ‘이길 수 있다면 군주가 막아도 싸우는 것이 옳고, 아니라면 군주가 싸우래도 않는 것이 옳다.’는 손자병법의 원칙과, ‘장졸들을 위험에 몰아넣지 말고, 이길 수 없는 적을 공격하지 말라.’는 순자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무엇보다 그의 항명 저변에는 ‘백성은 귀하고 군주는 가볍다民貴君輕.’는 맹자의 사상이 자리했으리라. 임금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기보다 백성에 충성하는 선비. 그는 검을 든 조선의 선비였다.
열아홉 어린 내 눈에 비친 참 군인을 메모지에 가득 채워 육사 인터뷰를 준비했었다. 국민을 배반하는 지휘관의 잘못된 명령에는 응하지 않겠다고서도 과연 합격할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정농단에 연루된 이들이 검찰조사를 받고 법정에 서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구치소에 수감된 옛 상관에 대한 변함없는 존경을 밝히며 모든 혐의가 자신의 소신에 따른 행위였다는 이도 더러 있으나, 국가공무원법 제57조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를 핑계로, 대통령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소연하며 선처를 구걸하는 안쓰러운 피고인들이 날로 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엘리트로서 실권자의 세력을 업고 한때 시민 위에 군림하던 그들이, 제 살길을 찾으려 늘어놓는 비겁한 변명이 이렇게 초라하다. 권력자의 법에 어긋난 요구에 No라고 일갈할, 총구 앞에서도 자유로울 만한 기개 넘치는 고위공직자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기대했던 건 무리였을까.
윗사람의 눈 밖에 나 미움 받는 게 두려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못하며 오늘도 어디선가 잔뜩 움츠려 있을 영혼 없는 공무원에게, ‘부당한 일은 죽기로써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바른 길을 다시 비추는 복된 소식이겠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따르는 것이고,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 영화 ‘명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