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by 시우

중독


북녘 하늘. 능선을 타고 한 줄로 길게 늘어선 불빛이 장관이다. 밤바다 오징어잡이 배에 대롱대롱 달린 등불을 닮았다. 휴전선이다. 군장을 메고 산 아래 도로를 따라 행군 한다. 출발 직전 받은 편지에 이등병의 발걸음은 흥겹다. 가는데 보름, 오는데 다시 보름. 군사우편을 기다리는 마음은 애틋했다.


서신 주고받는 서로간의 긴 애틋함을 그만두고 복학해서 맞은 웹 환경은 입대 전 피시통신 시절의 단조로움에 비할 바 아니었다. 일생 마음에 품어야했을 첫정을 만나지게 하는 ‘아이러브스쿨’ 열풍에 종로거리는 주말마다 북적였다. 여섯 초등학교나 다닌 나 역시 그 중 한명이었다.


그 바람은 ‘싸이월드’로 옮겨갔다. ‘일촌’이란 이름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미니홈피를 파도 타듯 넘나들며 일상을 뒤적였다. 하루에 몇이나 나를 클릭하는지, 올린 글에 어떤 댓글이 달리는지 그때그때 확인했다. 유독 방문자가 는 날이면 왠지 들떴고, 악플이라도 달린 날엔 분에 못 이겼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인터넷이 한 손에 들어오며 조바심은 더해가, 보낸 카톡메시지엔 바로바로 답이 와야 성이 찬다.


발 닿는 대로 떠나보자던 나그네마저 내비게이션 없는 길을 망설일 만큼, 온라인을 떼놓고 도시의 삶을 말하기 어려워졌다. 그리운 이의 답장이 왔나 우편함을 들추던 소년시절이나,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려, 라디오 방송을 들으려, 제 시각에 맞춰 TV앞에 옹기종기 앉거나, 이어폰을 꽂던 모든 이야기가 흘러간 추억이 되어간다.


작은 스크린을 누르는 족족 부지런히 흥미로운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쏟아내는 스마트폰에 거북이 목을 내민 이들로 그득하기는, 뉴욕과 서울이 다르지 않다. 사랑이나 통찰은 여전히 긴 시간을 요하기에, 가벼운 즐거움을 쉽고 빠르게 얻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맨다. 키보드를 딸깍하거나 마우스를 클릭하기도 하지만, 이젠 가벼운 터치 하나로 족하다. 기다림의 시간이 오히려 낯설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화면에 손가락을 댄다. 우리 몸의 정전기에 액정 위를 흐르는 전자가 딸려오고, 이를 센서가 읽어내 그에 맞게 즉시 보여주고 들려준다. 눈과 귀에 닿은 정보는 곧 신경세포 뉴런을 타고 뇌로 전달된다. 만족감에 홀린 중추신경에 신경호르몬 도파민이 때맞춰 분비되며 즐거움이 지속된다.


문제는 좋아하는 모바일게임이나 웹서핑을 멈춰 도파민 농도가 떨어졌을 때 나타난다. 불안과 공포다. 그래서 마음의 힘이 약해, 놓쳐버린 행복감을 되찾으려는 갈망에 좌지우지되는 몸은, 끊임없이 강한 자극을 좇아 결국 다시 게임이나 성인물에 빠져든다. 이렇게 기다림이 생략된 쾌락은 중독의 지름길이다. 술이나 마약의 유혹에 사람들이 넘어가는 이유 역시 쉽고 빠르게 환락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눈, 귀, 코, 혀, 피부와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색이나 소리, 냄새, 맛 등에 드나들되 섞이고 물들지 않도록 수행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지만, 어느덧 많은 이들이 도파민 중독에 힘겨워하고 있다.


서울에 와보니 어머니는 월 8,800원을 아끼시려 인터넷서비스를 끊으셨다고 했다. 마치 인적 없는 산에 들어온 듯, 승차권구입, 길 찾기, 쇼핑, 이메일, SNS 어느 하나 마음대로 안 된다. 고민 없이 누리던 편리함을 예고 없이 잃자 짜증나고 불안한 마음이 꼭 젖 뗀 아이의 칭얼거림 같다.


투덜거리며 집 뒤 길 건너 교회아래 커피숍을 찾아간다. 와이파이에 연결되자 동시에 안도한다. 알게 모르게 느끼던 편안함이 고작 컴퓨터 통신망 연결여부에 달렸다는 사실이 우습고 또 부끄럽다.


오프라인에 놓여 고단하다면 스스로를 거듭 돌아볼 일이다. 혹여 도파민에 중독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불안이, 무엇과든 연결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자.


꽃 한 송이, 물, 바람, 햇살, 그리고 이웃... 이미 우리는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의 관계로 얽힌 한 몸 · 한 생명으로, 인드라망Indra’s Net 안에 있음을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음의 눈을 떠, 만물이 본래 하나의 이치로 한 울안에 있음을 알 때야, 업은 아이 3년 찾는 어리석은 외로움은 미소에 녹아나리라.


이미 있는 것은 멀고 또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 기독교 구약 전도서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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