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짜기 의료정보학 이야기 - 생활정보 시리즈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이직도 하고 산골짜기를 떠나 대도시로 이사도 했습니다 살다보니 이런 날이 다 오고 ㅠㅠ 코로나가 겨우 끝나고 이제 좀 살아볼까 했더니 경기침체가 다가오는 힘든 시기에 독자 여러분도 무사히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의료정보를 전공하거나 현업에 계시는 분들 중에서 미국의 헬스 IT회사 취업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대략 취업이란 이런것이다 라는 팁과 개인적인 경험담을 드리고자 합니다.
필자는 미국에 온지 올해로 13년차이고 그동안 의료정보 분야에서 포스닥으로 시작해서 학위 과정 두번, 병원의 연구직, 대학의 겸임교수, 스타트업의 어드바이저 여러번, 온/오프라인 강사, 그외 자문역과 투자 등을 해봤습니다. 써놓고 보니 먹고살려고 안 해본게 없... 그 기간동안 Reorganization, 흔히 말하는 정리해고를 두번 겪었고 살아남긴 했는데 뼈를 묻으리라 다짐하고 들어갔던 조직에 오만 정이 떨어져서 회사를 옮기려고 원서를 백번 정도 내봤고 면접은 30번 정도 본 것 같고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은 연방정부 출연기관의 Lead급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미국의 의료정보분야에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동안 몸담은 경험으로, 미국에서의 취업은 여러 장단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장점은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수입이고 두번째는 전문성입니다. 연봉은 수평비교하기에는 어렵지만 느낌상 주니어의 경우 한국의 1.5배 정도이고 위로 갈수록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만 능력을 인정받으면 많이 법니다. 물론 높은 세금과 생활비를 고려해야 하긴 합니다. 전문성의 경우 미국이 워낙 시장이 큰 나라이다보니 하나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기 좋습니다. 이는 의료정보가 상대적으로 특수한 분야이다보니 더 두드러지는데, 예를 들어 미국은 FHIR나 SNOMED, NLP 등 하나의 세부 기술이나 표준에서 5-10년 정도 경력을 쌓아 전문가가 될수 있고 그 세부마다 잡 마켓이 따로 형성됩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시장이 작은 한국은 다방면에서 다재다능한 전문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점은 역시 언어와 문화, 네트워크의 장벽입니다. 대체로 언어의 장벽은 Hard working으로 Director 수준까지는 극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위인 Management, 일명 별들의 세계는 전혀 다른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데 여기에 가려면 일반적으로 최상위 학벌, 특출난 성과, 또는 정치적인 영향력 등이 필요하며 운도 잘 따라줘야 합니다. 물론 이런 한계를 싹다 밟아버리고 그냥 쭉 수직으로 올라가는 괴수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 기준으로 하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어느 조직의 최상위 레벨로 올라가기 매우 어려운건 꼭 외국인 아니라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적인 취업에는 경제상황이나 그 회사의 특징과 고유의 문화, 인사담당자의 성향, 뽑고자 하는 팀의 요구사항, 인터뷰 하는 날의 운빨 등 많은 요인들이 작용합니다. 필자는 미국 회사에 취업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취업을 하려면 인맥, 일종의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인맥은 갈비세트를 싸들고 가서 힘있는 사람한테 취업청탁을 한다던가 누가 여러분을 면접관한테 전화해서 직접 꽂아넣어준다던가 하는 뜻은 아닙니다. 이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속해 있을 의료정보 분야에서는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들이 대부분 대학원 학위가 있거나 현업에서 임상 경험도 있는 경우가 많을테니 여러분이 회사에 신입으로 채용되는 경우는 드물거라 생각합니다. 보통은 문서로 되어 있는 추천서를 받거나 (또는 추천인의 이메일을 입력해서 추천 요청을 보내기도 합니다) 원래 프로젝트나 협업 등을 통해 아는 사람이라서 채용하고자 하는 팀에서 "우리 이사람 뽑읍시다"라는 의견이 나와야 합니다. 넓은 의미로 보면 그런 추천 없이도 내가 어느 회사에 원서를 냈는데 자리를 만든 팀의 리더나 팀원들이 제 이름을 논문이나 학회 발표, 개발자 커뮤니티 활동, 산골짜리 의료정보학 블로그 등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 이미 알고 있다면 그것도 결국 일종의 인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잘 생각해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맥이 생기려면 일단 그분야에서 일을 해 봤어야 하는데 어디서든 일을 하려면 인맥이 있어야 하고 그 인맥이 있으려면 일을 했어야 하고 일을 하려면 인맥이 있어야... 이거와 비슷한 논리로 돈을 벌려면 원래 종잣돈이 좀 있어야 하는데 그 종잣돈을 벌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 종잣돈을 벌려면...
그래서 일단 어떻게든 시작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처음에 어떻게 시작할지를 몰라 답답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외국인으로 취업하거나 미국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경우 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얘기를 살짝 옆으로 새어서 대체 왜 미국에서는 인맥을 그렇게 중요시하는가 하면 여러가지 문화적 역사적 이유가 있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안전비용"이 한국보다 커서 그런 것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처럼 총기나 마약 문제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국토가 작은데 인구가 몰려 살아서 그 동네가 그 동네인 곳에서는 사람이 사고를 쳐도 크게 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팀에서 사람 뽑는데 관련 전공 및 경력자를 서류만 보고 뽑았다 쳐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봐야 업무 성과가 안나온다던가 팀원들과 다툼을 한다던가 입니다. 반면 미국에서 사람을 잘못 뽑았을때 생길수 있는 문제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한데 예를 들어
1. 마약이나 정신 질환 문제에 연루되거나 총기사고를 일으킨다.
2. 직장내 성희롱이나 인종차별, 윤리적 문제, 횡령 등을 일으키거나 고객이랑 싸우다가 일이 커지면 회사가 고소당하여 망할 지경까지 간다.
필자는 다행인지 미국에 온후 직장에서 저렇게까지 큰 문제를 겪어본 적은 없는데 병원에서 십 몇년 전에 큰 사건이 있었다고는 들었습니다. 어떤 환자가 수술 받은 후에 불만을 품고 총들고 병원와서 의사를 찾다가 인질극까지 가게되어서 막으려던 간호사 한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건 비단 직장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학교다닐때 부모들의 큰 걱정은 성적이 아니라 마약과 총기문제이니 어찌보면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거친 환경에서 단련(??)되면서 자란다고해야 하는건지
여기서 더 어려운 점은 미국은 하도 나라가 커서 새로 온 사람이 어디서 온 누군지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 회사의 구직 대상자는 기본이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지역이고, 확장하면 영어가 가능한 유럽인, 동아시아, 남미, 중동 (이스라엘 등) 출신등 거의 전세계가 대상입니다. 물론 그만큼 능력 있는 사람을 뽑을 가능성도 높지만 이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방법이 없고 사고치고 도망치는 경우 잡아서 처벌하기도 어렵기에 사람을 뽑을때 그만큼 신중하게 뽑을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취업을 결심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내가 일명 "Job martket"에 나왔다고 합니다. 일자리 "시장"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면 참 자본주의스러운 표현이 아닐수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취업해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시장 논리에 의해 이뤄지며 나중에는 자신이 꼼꼼하게 스펙을 매긴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집니다. 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 (구직 성공)까지 한번 해보고 나면 일명 경험치가 확 올라가는데, 자신의 경쟁력을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마켓에서 상대가 원하는 걸 어떻게 파악하고 맞출수 있는지, 협상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을 몸소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결혼해본 사람이 재혼도 잘하는 것처럼 뭐라고??? 취업도 한번 해본 사람과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의 차이가 큽니다.
Job market에 나오게 되면 일단 제일 먼저 할일은 나에게 구직 추천을 해줄만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경기가 아주 나쁘지 않다면 미국 회사들은 상시적으로 사람을 뽑는 편이며 내 주변에 평소에 괜찮다고 생각한 지인이 구직시장에 나온다면 우리 팀에 넣고 싶어하거나 같이 일하는 회사나 팀에서 뽑는 자리에 넣고 싶어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평판관리가 중요하며 구직 시기에는 평소에 만들어놓은 좋은 평판이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만약 평소에 별로라고 생각했던 지인이 구직시장에 나왔다고 하면 분위기 엉망인 회사의 고생길 훤한 자리에 꼭 지원해보라고 추천... 아 이건 아니고 그런 경우에는 웃으면서 너처럼 훌륭한 자격을 갖춘 구직자는 좋은 자리 나오면 꼭 알려주겠다고 선심쓰는 척 얘기하며 평판관리를 하면 됩니다 (......)
이렇게 주변에 밑밥을 깔아놓고 나면 그물에 고기가 걸리길 기다리지만 말고 적극적인 구직 활동도 나서야 합니다. 여기서 Job search라는 걸 시작하게 되는데 헤드헌터 회사에 의뢰할 수도 있고 요새는 대부분 Linkedin, Glassdoor, Indeed 등 온라인으로 지원할 수 있는 좋은 웹사이트들이 많습니다. 아까 위에서 인맥이 중요하다고 해놓고서 굳이 공개 채용하는 웹사이트에서 검색을 해야하나요, 정말 좋은 자리는 꽁꽁 숨겨놓지 왜 오픈하겠어요 라는 질문이 나올수 있는데 필자의 생각에는 그래도 공개채용도 지원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좋은 사람을 뽑고 싶은 회사 입장에서는 가능한 Search criteria(다른 말로 지원자의 배수)를 넓히는 것이 좋기 때문에 심지어 내부 채용을 정해놨다고 하더라도 외부 포스팅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좋은 구직자가 나타나면 계획을 바꾸기도 하기에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도 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둘째로 미국 회사에서는 인력을 채용할 때 실제로 그 사람을 쓸 팀장, 다시 말해 예비 상사 또는 의사결정권자가 재량이 상당합니다. 다시 말해 꼭 공고에 나온 포지션에만 맞출 필요가 없으며, 일단 최종 면접 후 오퍼까지 가게 되면 직급을 올려달라던지 요구할 수도 있고, 심지어 요구사항을 못 맞춰줄 것 같은데 놓치기 아까운 인재다 싶으면 다른 사업부나 회사로 Transfer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여기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밑의 스크린샷은 Glassdoor 사이트에서 Medical informaticist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나오는 화면인데, 채용중인 회사와 직급, Job description (일종의 직무능력 요구사항), 근무지, 그리고 예상 연봉이 나옵니다. 여기서 연봉은 채용중인 회사에서 공고에 명시하기도 하지만 Glassdoor 회원들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하기도 합니다. 연봉뿐 아니라 직원들이 회사와 경영진에 대한 별점 및 리뷰들도 있습니다. 참고로 Glassdoor는 회원들이 실제로 그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걸 회사 이메일로 (물론 익명으로) 증명하기에 입력된 정보의 신빙성이 꽤 높습니다. 필자도 궁금해서 전에 다니던 회사 리뷰들을 쭉 읽어봤는데 아주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 뒷담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링크드인의 경우에는 미국에서 커리어 관리의 기본이 되는 웹사이트인만큼 구인 구직관련 차별화된 여러 부가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내 조건을 입력하고 Job market에 나와 있다고 설정해두면 헤드헌터나 구인중인 회사들쪽에서 보고 조건이 맞으면 연락이 와서 인터뷰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조건만남 그리고 똑같은 Position이 나와도 Linkedin이나 Glassdoor에 좀 다르게 공고가 뜨기도 하니 여러 사이트를 두루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필자의 경우 커리어 트랙이 Informaticist이기 때문에 이 타이틀로 나오는 포지션이 (Medical, Healthcare, Clinical informaticist 등) 전국 단위로 넓혀봐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직활동을 몇달 정도 해보면 전국에 나와 있는 포지션들은 대부분 아는 병원이나 회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General informaticist가 아니고 어느 분야에 특화되었거나 그쪽으로 가려고 계획하고 있다면 검색범위를 좁힐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정보분야에서 요새 핫한 FHIR가 전문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면
Healthcare interoperability engineer
Healthcare integration engineer
Healthcare interface engineer
뭐 이런 포지션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은데 계속 검색을 하다보면 감이 오고 요령이 생깁니다.
헤드헌터 등을 통한 특별한 사례가 아닌 이상 공개 사이트에서 구직한다고 했을때 헬스 IT 분야에서 많은 경우 공고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나옵니다. EHR회사인 Epic과 Cerner, 유전체 정보 회사인 23andMe와 Ancestry, 원격의료회사 텔라닥, 구글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의 헬스케어 사업부 등이 자주 보입니다.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Health It회사도 IT 분야에 속하는 만큼 이직이 잦은 편입니다. 보통은 3 - 5년 정도에 옮겨서 직급과 연봉을 올리거나 하는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의 경우 더 부침이 심한데 구인 공고가 쭉 보이다가 어느날 안보여서 사람을 뽑았나 했더니 회사가 없어진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온라인 채용 프로세스와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요즘은 원서 쓰는 것이 많이 단순해지고 쉬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어 아래 스크린샷에서 Glassdoor에서 제공하는 "Easy Apply"를 통하면 기존에 입력해놓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정말 클릭 몇번에 지원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연봉 2억이 넘는 포지션인데 원서 넣는 것이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긴 한데 생각해보면 원서를 받는 입장에서도 요새는 대부분의 작업이 인공지능으로 자동화되니 아무리 많은 지원자가 몰려도 스크리닝하는데 그리 부담될 것 없는 것 같습니다.
반면 병원이나 연구기관, 정부, 공공영역같은 분야는 Clinical, Non-profit 또는 Public sector로 분류하는데 IT회사와는 다르게 보통 한번 조직에 들어가면 평균 10년씩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자리도 잘 나지 않고 나더라도 원래 알던 사람을 뽑는 경우가 많아서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런 곳들은 오픈 포지션에 지원해서 들인 시간이나 노력 대비 가성비가 나온적이 별로 없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지원하고 나면 Confirmation email이 옵니다. 경험상 HR에서 Initial screening을 한번 돌린 후 이 친구 한번 어떤지 보자라고 결정하는데 몇일 이상은 안 걸렸던 것 같습니다. 즉 왠만하면 일주일 안에는 다음 단계로 진행할지 안할지 알게 됩니다.
이 다음 단계에서 보통 리쿠르터와의 짧은 전화통화를 하는데 보통 30분정도입니다. 여기서 리쿠르터란 기업의 인사부서의 채용 담당자인데 이들의 역할은 지원자의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짧은 전화 통화를 통해 이 사람의 제출한 인적사항은 맞는지, 의사소통은 되는지, 지원동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외국인의 경우에는 비자나 영주권 지원이 필요한지 물어봅니다. 리쿠르터는 내가 지원하는 팀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당연히 전문적인 내용은 물어보지 않습니다. 또 리쿠르터는 앞으로의 채용 프로세스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도 해줍니다. 예를 들어 면접은 몇번까지 보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오프라인 면접이 있는 경우 출장처리에 관한 내용도 알려줍니다.
그리고 난 후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는데 일반적으로 뽑고자 하는 팀의 팀장을 제일 먼저 만납니다. 인터뷰 날짜가 잡히면 그 미팅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명단을 미리 보내주는데 이때 팀장과 팀원들을 미리 알고 있는 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인적사항을 미리 조사해두면 도움이 됩니다. C 레벨에 아니더라도 팀장 정도 되면 링크드인이나 언론 등에 검색하면 여러 정보가 나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Health IT 업계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은근히 교차지점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전에 근무했던 회사가 겹친다던가, 학교 동문이라던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던가, 고향이 유타주라던가 (...) 첫 면접은 사실 구직자나 구인자 양쪽이 서로 조심하기도 하고 분위기가 어색하기 쉬운데 서로 공통점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편한 느낌이 들고 긴장도 덜 되기도 합니다. 공통점 있다고 뭘 봐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면접도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초반 면접은 코로나 이전에도 전화 콜이나 줌 등을 이용한 화상면접 위주로 하고 이렇게 면접이 여러번 진행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기술면접을 봅니다. 기술면접은 일반적으로 직무에 관련된 과제를 내주고 풀게 한다음 어떻게 푸는지 설명하게 하거나 리포트를 써서 제출하게 합니다. 회사에 따라서 기한을 주고 풀게 하는 경우도 있고 이 경우 다른 사람을 시킨다던지 하는 치팅의 가능성이 있으니 아예 특정 일자와 시간을 정해서 실습 시험 비슷하게 문제 풀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그 결과를 설명하고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은 필수이며 여기서 지원자의 내공이 얄짤없이 바닥까지 드러납니다. 기술면접만 몇일씩 보는 회사도 많고 여러 팀이 돌아가면서 하이레벨의 개념적인 것부터 아주 디테일한 질문까지, 기술적인 내용을 비즈니스로 어떻게 변환하거나 연관시킬지 등의 다각적인 질문까지도 던지기 때문에 벼락치기 해봐야 거의 소용없고 결국 평소 실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기술면접의 양과 질에서 사람을 거의 달달 볶는 수준인지라 스트레스가 상당하지만 면접자에게 심하게 압박을 준다던가 무례하게 구는 일은 없으며 사실 문제를 다 잘 못 풀어도 됩니다. 문제를 잘 푼 결과를 보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푸는 과정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으며 모르는 부분은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거나 협업해서 해결하는 지를 보기 때문입니다.
기술면접까지 통과할 정도면 팀장은 이미 여러번 만났고 이메일 등으로 커뮤니케이션해오기에 왠만큼 친해졌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까지 컷오프 안 시켰으면 팀장도 나를 꽤 마음에 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고 나면 최종 단계 면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여러 팀을 불러놓고 프리젠테이션을 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박사급이나 리드 급은 지금 또는 이전 직장에서 어떤 프로젝트해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이 단계에서 왠만하면 오프라인 인터뷰를 하기에 회사를 방문해야 하는데, 미국의 경우 멀리서 와야 하는 경우 경비를 지원합니다. 보통 동부에서 서부로 가야 하는 정도의 거리면 1박 2일 항공권과 호텔 및 제반 경비를 모두 지원합니다. 스타트업 같은 경우 면접보러 오는 사람을 위해 은근히 자잘한 것들을 신경써주는 귀여운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 모든 단계를 마치면 집에 가서 최종 결과를 기다립니다. 탈락된 경우 간단히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받게 됩니다.
탈락 메일을 많이 받아본 경험상 메일 내용은 패턴이 대충 이렇습니다.
1. 여러 팀들과 인사팀과 다각적으로 상의한 결과 유감스럽게도 당신을 채용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중에 누가 너를 깠는지는 안 알려주겠다
2. 이 포지션은 경쟁이 심하고 너무나 우수한 지원자들이 많은 관계로 하지만 너는 아니다 당신의 재능과 경험을 우리 회사에서 활용할 기회가 없게 되어 유감이다.
3. 당신같은 우수한 인재를 알게되어 영광이었으며 추후에도 다른 좋은 기회가 있으면 연락주겠다. 앞으로도 우리 회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떨어졌다고 어디가서 뒷담화하지 말라
참고로 3번의 경우... 필자가 우수한 인재가 아니었는지 한번도 좋은 기회 있다고 나중에 회사에서 또 연락온 적은 없었습니다. ㅎㅎㅎ
최종 합격되는 경우, 대망의 "Offer Letter"라는 것을 받게 됩니다. 인생에서 어떤 시험이든지 통과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필자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처음 받았던 오퍼 레터는 정말 감개무량했던 것 같습니다. 오퍼 레터는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오퍼 레터를 받으면 승낙 또는 거절할 수 있는 기한이 주어집니다. 이 기간 동안에 만약 다른 곳에서도 이미 받은 오퍼가 있는 경우 - 이를 멀티 오퍼라고 부르며 미국에서 능력자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멀티 오퍼가 있으면 자본주의 국가답게 나에게 오퍼를 제공한 회사들 사이에 경쟁을 붙여서 조건을 올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여기까지 미국 헬스 IT회사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전반적인 과정을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기회가 되면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에 대한 소소한 팁들과 에피소드들을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