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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on Lee Apr 11. 2018

#1. 의료정보학의 태동

의료정보학의 아버지 Homer Warner 이야기

IT업계의 여러 전설들과 마찬가지로 의료정보학 역시 약간은 괴짜 기질이 있는 초창기 몇몇 선구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그 중에서 Dr. Homer Warner는 의료정보학의 아버지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입니다. Homer는 미국 유타주 태생의 의사로서 평생을 유타에서 살았으며 원래는 의대를 졸업하고 Cardiologist가 되려고 했었습니다. 레지던트를 마치고 2차대전에서 파일럿으로 복무한 후 돌아온 Homer는 이때쯤 컴퓨터, 전기적 스위치가 수천개 달리 거대한 쇳덩어리인 기계에 흠뻑 빠졌으며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의료정보학자, 즉 Medical informaticist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아...아들, 그게 무슨소리니? 일반인은 컴퓨터라는 말 자체를 모르던 시절, 의사로서 앞날이 보장된 진로를 버리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한 Homer는 정말이지 선구자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인물입니다.

이러려고 아들을 의대에 보냈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젊은 날의 Homer: 2차 세계대전 말기 (1945년)에 비행사로 복무한 Homer (오른쪽 위)

Homer는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할때 머릿속으로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모델링하려다가 다수의 증상을 입력변수로 놓고 병을 출력변수로 놓으면 충분한 조건이 주어졌을때 이를 수학적으로 풀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여러 방법이 있지만 주로 베이지안 조건부 확률식으로 풀어냅니다)  또한 이러한 프로세스를 컴퓨터로 구현하면 진단과정을 자동화할수 있고, 사람과는 달리 컴퓨터가 계산에 있어서 실수하지 않는다는 점을 착안하여 컴퓨터가 의사의 의사결정을 보완할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만성심장질환의 진단에 컴퓨터를 활용한 최초의 논문인 “A Mathematical Approach to Medical Diagnosis”를 1961년 JAMA에 게재하는데 이 논문은 컴퓨터가 어떻게 의료 정보를 저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처럼 추론하며, 궁극적으로 이것이 어떻게 의료의 질을 높일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제시한 구조화된 의료정보의 저장, 베이즈 확률론을 바탕에 둔 진단의 추론방법과 임상에서 의사의 의사결정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 등은 지금까지도 거의 변하지 않고 50년간의 의료정보학의 이론적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 50년동안 박사들은 뭘로 졸업을..??


무려 1961년도 논문


이 논문의 또 한가지 특기할 점은 컴퓨터를 정보를 저장하는 도구가 아닌 의사결정의 지원도구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의료분야에서 컴퓨터의 용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손으로 작성한 차트를 전자화하는 것 즉, 종이차트의 대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Homer의 시대에 컴퓨터는 매우 특수한 경우에 활용하는 비싼 물건이었으며 그 당시 메모리와 저장장치의 가격을 고려할때 정보의 저장은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Homer는 컴퓨터의 연산능력과 논리적 추론능력을 핵심정인 임상의사결정 시점에서 활용하는 것이 (Clinical decision support) 주 목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의료정보의 저장은 이를 위한 부수적인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Homer는 미네소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뒤 유타대학으로 돌아와 의료정보학과 (이 당시 명칭은 Department of Biophysics and Bioengineering) 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으로서 30년을 지냅니다. 이 학과는 미국에서 최초로 Medical informatics PhD를 배출하였습니다. 아들, 요새 의대에서 그런것도 배우니?  Homer가 개설한 의료정보학 수업을 통해 Reed Gardner, Stan Huff와 같은 기라성같은 의료정보학의 거물들이 배출되었으며 정보학자가 아닌 Terry Clemmer, Charles Sorenson과 같은 임상의사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Homer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의료정보학 연구의 계보 (Shortliffe, 2013)
초창기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인 HELP시스템과 개발의 주역들 (인물: Homer Warner, Al Pryor, Reed Gardner (좌->우)

Homer는 의료정보학의 학문적 토대를 쌓는 일 이외에도 실제로 병원에서 쓰는 시스템을 개발하였습니다. Homer의 팀이 개발한 초창기 EMR시스템 중의 하나인 HELP는 LDS 병원에서 1967년 개발된 이래 개선을 거듭해 무려 50년 동안 사용됩니다. LDS병원의 이름을 이은 Intermountain Healthcare는 2015년 자체 개발 EMR시스템을 모두 종료하고 상용 EMR 시스템인 Cerner를 도입하여 설치하기로 합니다. 3년간의 프로젝트 끝에 2017년 7월 Intermountain Medical Center를 마지막으로 HELP 시스템은 그 긴 역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Cerner 시스템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HELP시스템의 이름은 이렇게 지어졌답니다
Homer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의료정보학 연구기관 Homer Warner Center
Homer Warner Center에서 모인 의료정보학의 거장들: Peter Haug, Alan Morris, Donald Linderg, Homer Warner (좌->우)

개인적으로 Homer는 모르몬 교도로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으며 운동을 매우 즐기는 육체적으로 꽤나 왕성한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아마추어 선수급의 골프실력을 지녔으며, 환갑의 나이에 개인요트를 몰고 밴쿠버에서 하와이까지 항해하기도 하였습니다. 필자는 Homer를 미팅과 행사 등에서 지근거리에서 몇번 본 적이 있을뿐이며 그는 필자가 유타에 온지 1년만에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두달 전에도 유타대학 의대 학장인 Vivian Lee와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면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며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맨날 책상 앞에만 있지말고 나와서 바람도 쐬세요

인터마운틴의 Chief Medical Informatics Officer인 Stan은 Homer를 회상할때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Study hard, work hard, but have fun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세가지 다 하기 힘들면 세번째꺼만 Homer는 의학과 컴퓨터를 결합한 하나의 학문분야를 연 창시자이자 위대한 스승이었고 전 세계 Medical informatics 분야를 선도하는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필자는 그의 말년을 멀리서나마 볼수 있었던 행운이 있었으며, 그에게 조금이라도 직접 가르침을 받지 못한 아쉬움이 항상 남아 있습니다.


교과서 첫장에 실려계십니다




참고문헌

Shortliffe, Edward H., Biomedical Informatics : Computer Applications in Health Care and Biomedicine, 2013, Springer

Rebecca M. Goodwin , Joan S. Ash and Dean F . Sitting,  Founder of the HELP System and the Utah Medical Informatics Program,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2005.

Collen MF. Origins of Medical Informatics, Western Journal of Medicine. 1986;145(6):778-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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