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1738. 아쌈 프리미엄 퀄리티 2024
가을 하면 또 아쌈의 계절이다. 슬슬 트렌드가 아이스티에서 밀크티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강하고 거친 몰트향과 달달한 군고구마향이 비 온 뒤 젖은 낙엽같이 올라오는 아쌈은 스트레이트로도 밀크티로도 딱 제철이다. 제철의 아쌈 특집, 출시한 지 두 달 가까이 되는 사 온 지 한 달 넘은 시음기, 시작해 본다. 지난번 올렸던 나호라비와 같이 사 왔고 마시는 건 이걸 더 먼저 마시기 시작했는데 글 쓰는 게 늦었다. 30g 봉입에 1250엔이고 상미기한은 2년인데 2봉 사 와서 거의 다 마셔버렸다.
지난번 봤던 아쌈시리즈의 라벨이다. 특별할 것 없는 루피시아의 홍차 레시피와 함께 제품설명이 붙어있다.
하나야카나 카오리다치 토 아마미 아후레루 호-준나 아지와이. 아사무 나츠츠미 코-차 노 미리ョ쿠 오 츠메콘다 프레미엄 부렌도.
화려한 향기와 가득한 단맛이 넘치는 풍부한 맛. 아삼 여름 수확 홍차의 매력을 담은 프리미엄 블렌드.
지피티가 적어준 발음이 웃겨서 수정 안 하고 그대로 첨부. 미리ョ쿠가 아마도 매력이겠지. ㅎ 매력 있어. 시음기보다도 훨씬 훨씬 밀리는 일본어 공부 계획이다. 언젠가는 지피티 없이 혼자서도 잘 읽을 수 있게 되기를. 화려한 향기라니 뭔가 아쌈 세컨플러시랑 잘 연결되지는 않는데 어쨌든 기대가 된다. 흔한 티피아쌈과는 다른 건가. 오키도키 도키도키.
봉투를 열어 향을 맡아보니 고소 달달한 향이 난다. 산지 햇차를 개봉하면 나는 달달하고 꼬신내가 기분을 설레게 한다. 조금 더 진해지면 도시락김 기름냄새처럼 고소한 그 향이다. 녹차는 정말 김 같은 향이 날 때가 있는데 홍차는 김은 아니고 김에 발라진 기름향이랄까. 그 달달함의 결을 생각해 보면 역시 군고구마 껍질 같은 느낌인데 향이 진해지면 군고구마향이 되었다가 더 진해지면 간장 졸인 달달한 향이 되는 건가 싶다. 홍차 단내의 3단 격변화 뭐 그런 건가. 건엽을 덜어내면 적절히 들어있는 골든팁들이 눈에 띈다. 가을에 만나는 세컨 플러시 아쌈은 꿀, 고구마, 짜낸 듯이 진한 홍차향, 정갈함등이 떠오른다. 그런 모든 아쌈스러움이 넘실대는 비주얼.
5g의 찻잎에 100도씨 300ml의 물을 부어 2.5분 우려낸다. 찻물을 따라내자마자 고구마 껍질을 졸여낸 것처럼 진하게 간장향이 퍼져나간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지난번 나호라비 때 설명했던 그 향인데 훨씬 짙은 향이다. 군고구마 껍질에 달라붙은 설탕 결정 같은 진액의 찐득함이 향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이다. 군고구마 껍질을 말아서 말려놨나. 그 진한 향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인지부조화가 올 지경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야 좀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웃긴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건엽에서는 나호라비만큼의 간장뉘앙스가 느껴지진 않았는데 우리고 나니까 이쪽이 훨씬 강렬하다. 하지만 한 모금 마셔보면 오히려 간장처럼 느껴지는 찐한 향은 걷히고 아쌈의 몰티 한 향이 느껴진다. 흔히 이야기하는 군고구마향, 조금 더 디테일하게 군고구마 껍질향이 아닐까 하는 진하고 분명한 향이다. 차의 맛이 부드러움을 조금 넘어 물맛도 느껴지려고 하는데 홍차향과 수렴성은 그렇게 옅지 않아서 전반적으로는 차맛이 살짝 연하고 군고구마 단내는 조금 더 진한 나호라비의 느낌이다. 가격대비 크게 뒤지는 느낌이 아니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이쪽이 더 맘에 드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싶다. 확실히 올해의 아쌈은 부드럽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데 퀄리티도 그렇고 나호라비 때도 그렇고 몰티 하게 단내가 아주 짙게 느껴져서 아쌈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과도한 인상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옅은 편인 수색을 보고 있으면 그 대비가 더 강렬하게 느껴져서 멍한 기분이 든다.
아쌈이 있는데 밀크티를 마셔보지 않을 수 없다. 밀크팬을 꺼낼 것도 없이 간단히 우유를 부어 영국식으로 마셔본다. 향이 워낙 달달해서 설탕이니 이런 것도 필요가 없다. 꽉 짜낸듯한 홍차의 향과 단맛, 아쌈의 풍미가 오히려 밀크티에서 벨런스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스트레이트에서의 약점이었던 물맛이 느껴질 듯한 빈 공간이 우유로 채워지면서 퍼즐이 딱 들어맞는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아쌈의 풍미로 입에 다시 침이 고인다. 올해 비가향 밀크티 1등.
아쌈의 미덕이라면 아까 이야기한 아쌈의 키워드인 몰트, 군고구마등의 풍미와 진하면서도 깔끔한 맛이라고 하겠다. 스트레이트용 최상급부터 밀크티용 씨티씨까지 홍차의 활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차가 아쌈이기도 하고 각종 블랜딩에 가장 많이 쓰이기도 하는, 그야말로 홍차 중의 홍차인 아쌈이다. 그 아쌈의 특징만을 추출하듯 뽑아내어 꽉꽉 눌러 담은 뒤 그 부분만을 정확히 부스팅 해놓은 듯한 아쌈 퀄리티 2024. 진하다고 하기에는 차 자체가 진하지 않고 오히려 아쌈에 아쌈을 가향한 기분이다. 아마도 올해의 차품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올해는 지구 곳곳이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았으니 내년에도 이 맛이 반복이 될지는 모르겠다. 마치 간장아쌈이 된 것처럼 진하디 진한 향을 내주었던 아쌈 퀄리티 2024,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