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시아 6530. 우지타와라 유야다니 야부키타
루피시아가 일본의 차 회사인 건 다들 알고 있을 테고 그렇다 보니 더 뭐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일본차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판매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중에서도 꽤나 힘줘서 소개가 들어갔던 걸로 기억하는 우지의 유야다니에서 나온 야부키타 품종의 신차. 우지라고 하면 교토의 지역으로 우리에겐 교쿠로와 말차의 대표적인 산지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유야다니는 지금의 증제식 센차 제법이 탄생한 곳으로 유명한데 그러니까 이 차의 이름대로라면 일본 센차의 발생지에서 만들어진 야부키타, 그러니까 일본에서 가장 흔한 품종으로 만들어진 올해 센차라는 뜻이 되겠다. 가장 근본의 센차를 마셔볼 기회라니 놓칠 수 없지 바로 주문. 사실 비슷하게 우지 야부키타라는 상품이 있기도 한데 이게 좀 더 다원차의 느낌이랄까. 여름 온라인 그랑마르쉐 때 일본녹차 할인 행사가 있어서 40g 봉입을 기존 2000엔이 아닌 1800엔에 구매했다. 상미기한은 1년.
하다하다 이제 교토차까지 루피시아에서 구매하게 될 줄은 몰랐지. 가성비로 보면 당연히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우지차 전문 브랜드들도 분명 있을 테니 그쪽이 당연히 가성비는 좋을 텐데. 하지만 여러 종류의 차를 조금씩 구매해서 맛보기엔 또 루피시아만 한 창구가 없기도 하다.
쿄토・우지타와라노 스인다 미즈니 메구마레타 산간데, 시젠야 도죠노 코에니 요리소이나가라 소닷타 우마미노 후카사가 키와다츠 잇핀.
교토・우지타와라의 맑은 물에 은혜를 입은 산간에서, 자연과 토양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길러낸, 깊은 감칠맛이 두드러지는 일품.
이젠 저 정도 고온에서 센차를 우리라고 해도 당황하지 않는 내가 되었구나. 기분이 오묘하다.
봉투를 열자마자 사탕 같은 단내가 난다. 향만으로도 너무 맛있어서 오랜만에 코박죽. 센차의 향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의 청향도 아니고 은은한 단 향도 아닌 설탕결정 같은 향이 나서 조금은 놀랐다. 심지어 교쿠로처럼 차광한 차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건엽을 덜어내어 본다. 고급 센차들의 빤딱빤딱하고 길다란 침형까지는 아닌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센차. 그런데 왜 여기서 무슨 아이싱을 끼얹은 것처럼 달달한 향이 나는 걸까. 건엽을 봐서는 증제를 강하게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품종도 야부키타겠다 건엽만 봐서는 그냥 평범한 센차.
3g이상의 찻잎을 예열한 다구에 넣고 90도가 조금 안 되는 물 100ml에서 1분간 우려낸다. 따라내는 향에서 이미 콩고물 같은 고소한 냄새가 폴폴 풍긴다. 잔에 코를 가져다대니 곡물스러운 센차향이 짙게 나면서 좀 전에 맡았던 향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한 모금 마셔보니 저온교쿠로에서나 맛이 날법한 우마미가 꽤나 짙게 느껴진다. 확실히 이 온도에서 우마미가 느껴지는 센차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것도 이렇게 교쿠로 수준으로 진하게. 물론 저온교쿠로의 미역국 수준은 아니지만. 마시고 나서의 입안에 돌기 시작하는 약간의 풀향기가 좋은 올리브유를 맛보고 난 뒤의 후미와도 같아서 기분이 좋다.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재탕을 우려 보았는데 역시 재탕에서는 우마미는 없고 풋풋한 녹차의 향 정도만 좀 느낄 수 있다. 그래도 꼬박꼬박 재탕을 마시게 되는 매력. 아니 가격 탓인가. 가격을 생각하면 사실 그 이상을 자꾸 바라게 되는데 프리미엄이 붙은 차다 보니 정확히 가격대로 만족도가 선형으로 붙지는 않는다. 다만, 여러가지 방법으로 마실 때마다 조금씩 다른 인상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긴 한데 예를 들어 한 팟에 서양식으로 우리게 되면 제법 시즈오카 같은 개운한 맛도 나고 냉침을 하면 약간은 가마이리차 같은 느낌도 나서 이러니 저러니 그냥 맛있는 차라는 느낌이다.
식은 엽저의 향이 마치 포도껍질 같다. 그러고 보니 건엽 향에 비해 의외로 단맛 쪽은 없는 느낌이다. 분명 건엽의 향은 너무도 중국 빙당 같은 느낌이었는데. 뜨거운 물에 녹아 모두 우마미로 변해버린 걸까. 차를 마실 때 건엽향과 일치하지 않을 때 신기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시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확실히 맛있기는 한데 맛에 비해 프리미엄이 꽤 붙는 차라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가장 흔한 품종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맛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런 프리미엄이 성립이 되는 거겠지 싶다. 평범한 품종이지만 그 이상의 맛을 보여준 유야다니 야부키타,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