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일살이

백 년 넘은 집 꾸미기 2

by 미지수

소파와 의자


8월 초에 이사왔는데 9월 초에도 집에 의자가 하나도 없었다. 의자가 없어서 밥을 거실로 들고 와 바닥에 방석을 깔고 테이블에 앉아 먹었다. 이전에 지내던 서블렛 집의 식탁의자 때문에 허리가 아팠기 때문에 아무 의자나 들일 수 없었다. 주방의 초록색과 나무 바닥에 어울리는 빨간색 의자를 찾아 중고거래 앱과 온라인 쇼핑몰을 헤맸다. 마음에 드는 의자를 찾는 게 쉽지 않다는 것과 의자라는 게 그렇게 비싼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 그나마 괜찮은 걸 찾았는데 쇼핑몰이 서비스가 구리기로 악명 높았다. 다른 온라인 쇼핑몰을 더 뒤져봐도 그것보다 나은 걸 못 찾았고, 결국 거기에서 주문했다. 역시 몇 주가 걸려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서비스센터에 연락할 이유도 없어서 한숨 돌렸다.

IMG_8863.jpeg 대략 완성된 주방

바이에른 짐에 있던 푸톤(바닥에 까는 접어서 보관이 가능한 매트)을 거실에 깔고 지내며 소파를 찾아 헤맸다. 예전에 싸구려 소파를 샀다가 데인 적이 있는 파트너는 조심스러웠다. 나는 오래된 소파의 꿉꿉한 냄새가 괴로워서 소파를 빨래할 수 없다면 커버라도 벗겨서 빨래할 수 있는 것을 원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가구쇼룸 건물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 조각들을 고를 수 있고, 소파커버도 벗겨서 빨래가 가능하고, 선택할 수 있는 원단도 다양하고, 앉아보니 편하지만 푹 꺼지진 않았다.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이 비쌌다. 다른 소파도 여럿 찾아봤는데 괜찮아 보이면 쇼핑몰이나 상품에 문제가 있다는 후기를 발견했다. 결국 가서 앉아본 소파를 주문했다. 당시 여름할인 8월 한정 50%이었는데 알고 보니 매달 이름을 바꿔가며 50% 할인하는 마케팅이었다. 소파는 주문이 들어오면 만드는 거라 4-6주가 걸린다고 했다.


까먹을 때쯤 소파가 온다고 이메일이 왔다. 예상 도착시간이 오후 두 시쯤이었나, 그런데 서너 시가 되어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여섯 시쯤 배송기사에게 전화가 왔고, 결국 그들은 여덟 시 정도에 도착했다. 두 명의 배송기사들은 소파를 거실로 옮겨서 포장을 벗기고 조립을 해주고 떠났다. 이제 푹신한 소파에 앉아 파트너가 열심히 조사해서 고른 빔 프로젝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예상했던 것보다 화질이 너무 좋아서 영화나 시리즈를 볼 맛이 난다... 이래서 홈시어터를 하는 거구나. 이젠 금방 어두워지는 겨울에도 간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면 되니까 오히려 좋다.

IMG_8697.jpeg 쑥떡 같은 소파

커튼과 쿠션 만들기


이케아에서 두 줄로 된 커튼 봉과 하얗고 얇은 커튼을 달았다. 창문이 너무 길어서 커튼이 바닥에서 조금 떴다. 겨울에 스멀스멀 들어오는 냉기를 최대한 막을 수 있게 안쪽에는 바닥까지 닿는 커튼이 필요했다. 이케아 커튼 중에는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캐러멜 색깔의 면 100% 원단을 온라인에서 주문하면서 한눈에 반해버린 예쁜 식물 원단을 푸톤 커버용으로 주문했다. 중고로 산 파트너의 스프링의자의 커버가 헐거워 커버를 만들 원단도 함께. 그런데 주문한 원단이 2주 뒤에 도착했다. 배송이 느리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리뷰를 봤을 땐 설마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한국에서 주문해서 여기로 보내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재봉틀은 중고로 사려고 보러 가기도 했지만 결국 파트너 엄마의 재봉틀을 빌려왔다. 약 2주를 재단하고 재봉하고 빨래하며 커튼, 침대 위쪽에 둘 길고 얇은 쿠션, 푸톤 커버, 소파에 둘 쿠션, 의자커버를 만들며 보냈다.

IMG_8942.jpeg 커튼 만드는 중

전등과 기타 살림살이


우리 둘 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해 빈 곳이 있어도 필요한 게 아니라면 채우지 말고 남겨두고, 꼭 필요한 것만 사자고 결심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 둘이 사는 집에 정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자잘 자잘한 것들이 종류별로 있는 이케아에서 많이 샀다. 작은 것들은 중고거래를 하는 것보다 그냥 한 곳에서 대충 품질이나 디자인이 괜찮은 것들로 한꺼번에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이케아에서 작은 가구를 살 때는 최대한 원목인 걸 골랐다. 화장실 싱크대 아래 수납 캐비닛 역시 시간이 걸렸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음에 드는 대나무로 된 걸 찾았다. 천장이 높기 때문에 천장에서 줄이 길게 내려와 매달리는 전등을 골랐다. 넓은 거실엔 간단한 버전의 샹들리에를, 침실에는 종이로 된 구 모양 이케아 전등, 주방엔 빨간색 반원, 복도에는 동그란 유리 전등을 달았다. 하얀색에 가까운 임시전구를 떼고 은은한 노란빛 전구를 달자 분위기가 한층 아늑해졌다. 특히 작은 불빛모양인 샹들리에 전구가 너무 귀엽다.

IMG_8872.jpeg 우드스테인을 칠해놓은 신발선반

파트너의 가족들이 이사할 때 원형 테이블을 물려받았다. 다만, 테이블 상판이 대리석이었는데 너무 무겁고 취향이 아니라 떼고 금속으로 된 다리 부분만 남겨두었던 걸 7월 말에 가져와서 일단 주방 작업대 남은 부분을 위에 올려서 쓰고 있었다. 다른 것들을 먼저 처리하고 거의 마지막으로 원형 테이블 상판을 찾았다. 파트너는 바닥도 책꽂이도 선반도 나무가 너무 많아서 색깔 있는 걸로 하고 싶댔다. 톤다운 된 빨간색을 주문했다. 5-7주가 걸린다고 했다. 아니... 소파가 5주 걸리는 건 알겠는데 80센티 상판 하나가...? 뭐 어쩌겠나. 정확히 따져보진 않았지만 예상보다는 빨리 도착한 것 같다. 예쁘다. 그런데 거실 바닥이 고르지 못해 테이블이 덜컹거려서 아래에 깔 것을 찾아봤지만 적절한 것을 못 찾았다.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중인 도톰한 면실을 주문했다. 이건 한국만큼 빨리 왔다. 그래서 지금 테이블 아래에 깔 미니 카펫을 뜨는 중이다.


바닥도 고르지 않고, 나무 바닥 사이의 갭도 크고 작고 삐걱거리는 부분도 있고, 벽이나 몰딩도 삐뚤거리고 창문 페인트도 덕지덕지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 마음대로 꾸미고 혹은 빈 곳을 그대로 내버려 둔 공간에서 지내는 건 예상보다 훨씬 더 즐겁다. 그동안 좋아했지만 아껴두었던 weck유리용기를 주문해 주방을 정리하고, 음식을 보관하는데 예뻐서 기분이 좋다. 집 근처에 독일, 한국, 아시아, 인도, 터키, 아랍, 유기농 등 다양한 슈퍼마켓이 있어 다양한 재료를 손쉽게 구해 요리하고 베이킹한다. 파트너는 사워도우 빵과 콤부차를 만든다. 천장이 높은 오래된 집인데도 히터는 자동시스템이라 온도를 설정할 수 있고, 가스비가 많이 나올까 봐 조금 염려되어 온도를 20도로 맞춘다. 으슬으슬할 때도 있지만 플리스를 껴입고, 따뜻한 차를 마신다.

IMG_8948.jpeg 반해버린 식물 원단으로 만든 푸톤 커버와 식물등 아래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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