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도시, 베네치아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내가 어떻게 여행을 하게 됐을까? 아마 작년 홀로 제주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시야가 넓어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인생의 목표가 좋은 대학 나와서,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던 내가, 제주도에서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공부가 전부가 아니고 직장이 전부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육지로 올라오고 나서도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즐겁게 살자고. 결심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었다. 그래도 캐나다에서는 꽤나 알아주는 UBC를 관두고,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요리라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먹고살 수는 있겠지 라고 생각했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면서 근처에 여러 나라, 또 여러 문화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중에 가깝고 가장 유명한 곳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였다. 유럽까지 온 김에 베네치아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버스표를 사고 이탈리아로향했다.
크로아티아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많다. 이스트리아 반도의 많은 항구 도시에서는 페리로 갈 수도 있고, 버스로 갈 수도 있다. 히치하이킹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경험도 없고 시간이 빠듯한 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페리를 타고 싶었지만 페리는 5월부터 운행하고 이날은 4월 말이었다. 버스를 타고 풀라에서 슬로베니아까지 가서 여권에 입국도장을 받는다. 여권에 도장이 늘어나는 건 항상 기분 좋은 일이다. 언젠가는 여권의 모든 페이지를 도장으로 채우고 모두에게 자랑도 해보고 싶다. 신기했던 건 슬로베니아에서 이탈리아도 들어갈 때 국경에서 검문도 없이 그냥 이탈리아 국기 하나 세워져 있는 도로를 그냥 지나친다는 것이었다. 이제 여기는 이탈리아다.
내가 베네치아에 왔다고 느꼈을 때는 역시 운하를 보고 나서부터였다. 베네치아는 자동차가 전혀 없고 모든 교통수단이 수상에서 이루어져 있다. 운하 곳곳 베네치아의 상징인 곤돌라도 보이고, 곤돌리에들이 타보라 고손 짓을 한다. 물론 타보고 싶었지만 곤돌라는 생각보다 비싸서 포기하고 여태 해왔던 것처럼 뚜벅이를 하기로 했다. 수중 도시라지만 베네치아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1박 2일의 빠듯한 일정이기에 서둘러 걷기 시작한다. 날씨는 꿀꿀한데 생각보다 더워서 조금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볼 건 보자는 생각에 부지런히 걸었다.
베네치아 물가는 관광지답게 꽤나 비싼데, 특히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기본적으로 20유로 정도 깨지고는 했다. 이탈리아까지 왔으니 파스타는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돌아다니다가 사람이 좀 많고 그나마 가격대도 괜찮은 곳에 들어가서 해물 파스타를 먹었는데 기대한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또 당연히 먹어 봤던 피자도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캐나다 피자보다는 맛있었지만 한국 피자는 세계 어느 피자도 못 따라올 듯하다. 그 대신 베네치아에서의 1박 2일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먹었던 것을 바로 젤라토. 여기서 5번이나 젤라토를 사 먹었다. 그 후 이 여행에서 나는 젤라토에 빠져 거의 1일 3 젤라토의 생활을 했다. 습한 날씨와 베네치아의 풍경은 젤라토와 찰떡궁합이었다.
베네치아 중심가를 벗어나 구석구석을 탐방하다 보면 또 다른 베네치아의 매력이 보인다. 관광객으로 붐비던 큰 거리를 벗어나 구석진 곳으로 가면 조용한 베네치아를 볼 수 있다. 골목들을 돌아다니다가 이발소를 발견하였다. 베네치아도 관광지이기 전에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예쁜 다리에 앉아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풍경을 구경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숙소를 찾아 발길을 옮긴다. 내가 일어서자 앉아 있을 땐 보이지 않았던, 집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흔든다. 숙소는 꽤나 중심가에 위치해 있었다. 큰 길가에는 기념품 노점상들이 정말 많았는데 기념품 마니아인 내가 지나칠 리가 없었다. 가게에 가서 자석을 몇 개 고른다. 이제 흥정 시간이다. 5개에 5 유로이던 자석을 7개로 부풀렸다. 방글라데시 사람이던 상인은 내가 같은 아시아인이라서 더 주는 거라 했다. 자석 7개와 20유로짜리 후드티를 18유로에 기분 좋게 구매하고 숙소로 향했다.
해가 지기 전에 가봤던 성 마르코 광장을 해가 지고 나서 또 가보았다. 낮에는 비둘기가 정말 많았고, 관광객도 많았다. 덥고 비가 올듯해서 제대로 구경도 못했던 낮에 비해서 밤에는 바람도 시원하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구경하기가 수월했다. 밤에는 카페들에서 라이브 공연을 한다. 카페의 악사들이 연주를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밤의 베네치아는 조용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광장에 있거나 자고 있다. 짧은 일정에 쫓기듯 여행했던 베네치아도 조용하니 평온하다.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왜 모이는지 알 것 같았다. 아쉬웠던 점은 일정이 빠듯해서 무라노 섬과 부라노 섬에 가지 못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베네치아를 떠나기 전에 버스 정류장 근처를 더 둘러보았다. 전날과 달리 날씨가 좋아서 모든 게 더 예뻐 보였다. 여행을 하면서, 어떤 도시든 떠날 때는 정말 아쉽다. 베네치아,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