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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은 May 05. 2024

가장 사나운 선언


 사랑과 이별을 동형 하는 그녀는 매년 봄이면 기지개를 켠다. 머리 위로 생명력이 완연할 때, 발아래로 죽음을 짓이기며. 개화와 낙화가 나란한 계절마다 그녀는 눈을 뜨고, 영원의 옆구리를 푹푹 찌른다.


 나는 그녀의 심술을 무시한다. 하지만 영원의 잠든 얼굴을 맞닥트리면 경기하듯 그것을 흔들어 깨운다. 부스스 눈을 뜨는 영원을 품에 안고서야 안심하지만 푹 패인 옆구리로는 불안이 흠뻑 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사랑하려면 죽음을 견딜만 한 용기가 필요했다.



 12 년보다 조금 더, 조금 덜 산다는 그 애는 벌써 9 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 집 거실을 뛰어다녔다. 처음 그 애가 우리 집으로 온다고 했을 때, 나는 단지 "손도 많이 가고, 신경도 많이 쓰이고……." 같은 말로 반대했지만, 실은 그 애의 죽음이 두려웠다. 당연하다는 듯 한 자리 차지하고 배를 보이다, 언젠가 듬성 뽑혀 버릴 그 자리가 벌써부터 겁이 났다.


 그 애는 이제 겨우 생후 몇 개월. 내 엄지손톱만 한 발바닥으로 겨우 땅을 딛고, 사료는 물에 불려 주어야만 오물댔다. 그 몇 알에도 빵빵 부풀어 오르는 작은 배를 쓰다듬을 때면 저항 없이 사랑했지만 가능만 하다면 더보다는 덜이고 싶었다. 더 사랑하기는 쉬웠지만 덜 사랑하기는 어려웠다.


 매일 현관 앞으로 마중 나오던 복슬한 털뭉치는 어느 날 갑자기 바닥에 엎어진 채로 사지만 힘껏 버둥댔다. 옆으로 누운 그 애를 껴안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 애는 한쪽 앞 발에 후유증을 남겨 둔 채로 다시 일어섰다. 수의사 선생님은 이 시기쯤 발병하는 선천적인 장애라고 말씀하셨지만, 어쩐지 나는 보송한 생명력에 죽음을 겹치며 움츠렸던 내 사랑이 그 애의 한쪽 다리를 무너트린 것만 같았다.



 또 어느 날 그녀는 어김없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겨울잠처럼 파고든 사랑의 옆구리를 푹 찌르며, 낙화의 계절이 왔노라는 그 음성은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으로 돌아왔다.


 나와 동갑인 그 애는 의연했다. 검은 정장을 입고 서서, 당신의 어머니를 추모하는 사람들과 정수리를 맞댔다. 상실에 잠겨 뱉는 감사합니다, 그 자음과 모음의 모서리가 그 애의 목구멍을 마구 할퀴었을 텐데도 그 애는 기침 한 번을 뱉지 않았다.


"내일 출근은?"

"응, 해야지."


 뭐라도 먹고 가라고 말하는 그 애가 입꼬리를 당겼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입술. 동반을 약속한 사람이 먼저 떠난 길을 지키고 앉은 중년의 남자도 그처럼 쭉 뻗은 입술로 말한다. 우리 예은이 왔나. 출근은 어쩌고. 상실 앞에 의연함을 흉내 내는 입술은 차마 위로 당겨지지 못했다. 그게 예의라서, 떠난 사람을 대신해서 문을 단속할 때는 정중해야만 해서. 생명은 머리 위에 피고, 동시하는 상실은 바닥에 흩뿌려져서 죽음은 위로 휜 호선일 수 없었다.


 나는 전을 집어 먹는다. 그게 작별하는 예의라고 한다. 격식이란 건 슬픔에 비해 간소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작별에 예의가 있나? 작별, 걔는 늘 내 사랑에 예고 한 번 준 적 없었는데. 나는 늘 작별의 발목을 잡고 질척댔었는데.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쏟아 주는 나의 그녀는 말한다. 얼마 전까지 주고받은 메시지가 여기 그대로 있다고. 형님이 얼른 나아서 보자고 그랬었는데. 그녀의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는 더는 메시지를 읽지 않을 사람이 여전히 남아 있다. 개화와 동시에 낙화하는 그 계절을 닮은 이곳은 영원의 옆구리를 푹 찌른다.


 더 사랑하면 그 사랑들을 조각내어 상실을 훔쳐 닦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작별이라면 동여맬 수 있는 단단한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은 작별 앞에서 가장 먼저 의연해야 했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입술로, 예의 있게, 정수리를 맞대고, 감사합니다, 목구멍을 마구 할퀴는 단어를 뱉고, 삼키고. 사랑에는 죽음을 견딜만한 용기에 더불어, 의연할 결심까지 필요했다.



 한참 뒤에 나와 동갑인 그 애가 많이 울며 지낸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주 취한다고, 당신의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고. 간소화된 절차들을 되짚는다. 죽음을 견딜 만큼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나의 사랑과, 사랑하기 때문에 견딜 수밖에 없던 그 애의 상실을. 준비 없이 떠난 당신의 그녀가 부디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남은 슬픔은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기는 그 사랑을.


 덜보다는 더 사랑하기로 했다. 나를 위한 덜보다는 너를 위해 더 사랑해 보기로. 마침내 다가올 상실을 실컷 사랑하지 못한 채로 견디기보다는 차라리 실컷 사랑해 보자고. 피하지 못할 그때가 오면 눈가를 훔칠만한 기억들을 많이 채워 두자고.


 요즘들어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 그 애의 동공을 마주 볼 때면 덜컥 불안이 범람하지만 빤히 바라보는 그 눈빛을 많이 담아 두기로 한다. 다가오는 상실의 발소리는 하얀 동공 뒤편에 있고, 그 애의 사랑은 지금 내 앞에 있다며. 뒤편을 넘겨 보느라 내 앞에 선 사랑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사랑과 상실은 나란하다. 개화와 낙화는 동시한다. 끝을 알지만 모르는 채로 살아가며 사랑한다. 나는 여전히 웅크린 채 잠든 하얀 내 친구를 보면 작별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앓는 소리에 유한함들을 상상하지만 그럼에도 덜보다는 더 사랑하기로 한다. 아껴둔 것들이 주인 없이 남는 것보다는 전부 소진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유한하다면 이어지지 않을 쉼표보다는 마침표가 되기를.


 사랑해. 간지럽게 뱉는 그 고백은 가장 큰 두려움을 이겨내 보겠다는, 옆구리로 솟구치는 불안을 틀어막으며 끝끝내 발음하는, 내가 아는 가장 사나운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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