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네 집은 작은 철문을 경계로 밖과 부엌으로 구분되었다. 기다랗고 좁은 부엌을 지나면 작은 방이 이어졌고, 벽면에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우리는 자꾸만 좁은 굴을 파고 들어가던 때라, 이불을 뒤집어씌운 책상 밑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완성되던 비밀스러운 공간이 지대한 평수의 자가라도 되는 양 감격했다. 낮은 천장 때문에 상체를 숙이거나, 납작 엎드려 기어 다니느라 무릎이 새카매졌지만 나란히 까만 그 무릎이 좋았다.
실내화 가방을 앞뒤로 흔들며 귀가하는 길이면 걔는 꼭 뒤에서 나타난다. 실은 걔가 내 뒤로 바짝 다가오기도 전부터 나는 그 애가 내 뒤로 달려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했지만 매번 모른 척 실내화 가방만 허벅지로 쳐댔다.
걔의 발소리가 탁, 타탁, 탁, 타닥 들릴 때마다 나는 허벅지로 실내화 가방만 퍽, 퍽퍽. 걔랑 나는 우르르 쏟아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장 소란스럽게 재회했다.
야, 이따 올 거지?
음… 엄마한테 물어보고 갈게.
그럼 조금 뒤 우리는 반드시 함께 기어 올라갔다. 먼지 쌓인 상자들을 뒤적이면 걔가 아주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쏟아졌다.
바퀴 빠진 자동차, 끝이 뭉툭한 블럭, 꼬리 없는 공룡 같은 것들을 세워 놓고 떠들기도 지겨워지면 우리는 사진 앨범을 들고 작은 창문 앞에 나란히 엎드렸다.
걔네 집은 주택가에서도 아래로 내려가야만 하는 곳이라, 전경이라고 해 봐야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 밑동, 잡초 따위가 전부였지만 쩍쩍 맨살이 들러붙는 습한 더위를 식혀 주기에는 충분했다.
호기롭게 앨범을 열었던 그 애는 발가벗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어린 자신을 보고 비명 했다. 깔깔 웃는 나를 보고 씩씩거리던 걔는 몇 장을 겹쳐 쥔 채로 다시 앨범을 펼쳤다. 온통 어린 그 애나 그 애의 형 사진이었다.
너 아기 때 기억나? 아니, 나는 어릴 때 기억 하나도 안 나. 나도 그래. 형이랑 내가 이렇게 딱 붙어 있었다니…… 으, 진짜 끔찍하다. 내려가서 오빠한테 다 말해. 말해라, 말해라.
앨범은 어느 시절의 그 애에게서 멈춘 채 하얀 백지로 이어졌다. 앨범을 닫고 다시 엎드린 그 애가 문득 그랬다.
우리 비밀 얘기 할래? 비밀 얘기? 응, 근데 다른 애 비밀은 안 돼. 내 비밀만 말해야 해. 내가 밖에서 네 비밀을 말하면 어떡해? 안 돼, 그럼… 백만 원 주기. 그렇게 무려 백만 원짜리 비밀이 오가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매일 밤에 일하러 간대. 다른 엄마들은 다 낮에 일하는데.
뭐야, 그게 비밀이야?
너희 엄마도 매일 낮에 일하잖아. 그러니까 비밀이지.
사실 나는 그 애의 어머니가 늦은 시간에 일을 하러 나가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젠가 어른들이 말하는 걸 들었던 것도 같다. 그때의 나는 그게 그 애에게 그렇게 중요한 비밀이라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언제 일하는지가 중요한 거야? 그런가 봐. A네 엄마가 A한테 그렇게 말했대.
A는 며칠 전 그 애와 크게 싸운 애였다. 마구 꼬집고, 할퀴고, 발길질하고. 심지어는 어른들이나 할 법한 그런 욕을 뱉는 그 애를 나는 처음 봤다.
왜 싸웠냐? 그 애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흙 묻은 손으로 몰래 코를 훔치는 그 애에게 더 묻지 않았다. 걔는 꼭 울 것 같으면 코를 만졌으니까. 뭔지는 몰라도 지저분해진 그 애를 울리고 싶지는 않았다.
음… 그렇구나. 이번에도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린 그 애가 엄지로 자꾸만 코를 문질러서. 이제 네 차례야. 나는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발목만 까딱거렸다.
음, 나는 다음에 말해 줄래. 떠오르는 것들은 많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내 비밀이 걔가 가진 비밀보다 커 보였다. 그게 뭐든 그랬다. 야, 그런 게 어딨냐? 뭐, 너는 내가 우는 것도 다 봤잖아. 하긴 그래. 그럼 나 하나 더 말할 테니까 너도 나중에 두 개 말해 줘. 그래.
이어지는 그 애의 비밀을 듣는 내내 내 콧잔등도 자꾸 가려웠다. 열린 창문 탓인지, 여닫힌 앨범이 퍼트린 먼지 탓인지 우리는 자꾸 콧등을 문질렀다. 우리는 다락방 한 구석에 콧기름이 잔뜩 묻은 비밀을 숨겨 뒀다. 언젠가 내 비밀도 여기 넣어 둬야지, 걔랑 내 콧기름을 잔뜩 묻혀서.
밸런타인데이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 애의 비밀과 비슷한 덩치의 비밀을 찾지 못했다. 몇 번인가 입술이 달싹거렸지만 뱉기도 전에 콧등을 자꾸 매만져야만 해서 뱉을 수가 없었다. 걔는 이렇게 문지르면 잘도 참아내던데, 나는 왜 안 되지?
그 애가 또 내 등을 툭 쳤다. 아마 그 애의 발소리를 먼저 듣지 못했던 건 그 해 밸런타인데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야, 왜 먼저 가?
너 없던데?
이것 봐. 그 애가 벌려 보여 주는 가방 안에는 초콜릿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어떤 애가 걔한테 초콜릿을 줄 거라고 말하는 걸 들은 것도 같았다. 오늘은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초콜릿을 주는 날이라고 했는데, 그럼 이렇게 많은 여자애가 이 애를 좋아한다는 소리인가?
문득 또 코가 가려워졌다. 씨, 자랑하냐? 괜히 짜증을 내고 실내화 가방을 펄럭대며 걷는 나를 쫓아온 그 애가 다시 가방을 들이민다. 아니, 여기서 먹고 싶은 거 골라 가라고. 많이 가져가도 돼. 여자애들이 너 준 거 아니야? 맞아, 근데 너 먹고 싶은 거 가지고 가.
응······. 이번에는 뺨이 간지러웠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초콜릿을 골랐는지, 그것을 어디서 먹었었는지, 누가 그 애에게 준 초콜릿이었는지 같은 건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불쑥 손을 넣어 초콜릿 하나를 집어 들었고, 그 광경을 지나가는 친구들이 전부 보았다는 것. 개중에는 아마 걔에게 초콜릿을 준 애도 있을 테고, 주고 싶어서 따라온 애도 있을 테고, 어쩌면 주고 싶었지만 주지 못했던 애도 있을 텐데. 그 애의 비밀을 함께 숨겨 놓은 여자애는, 그 애가 초콜릿을 주고 싶어 했던 여자애는 나밖에 없다는 게 이상했다.
오늘도 다락방에 가겠다는 말도, 오늘은 꼭 내 비밀도 거기 숨겨 두겠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먼저 달아나 버렸다. 내 비밀은 전부 뱉기도 전에 코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었는데, 새로 생긴 이 비밀에서는 그 애의 발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그곳에는 절대 숨겨 놓지 못할 비밀이 하나 생긴 것 같았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받은 여자애는 한동안 놀림을 받았다. 그렇게 놀림받을 때면 목구멍 뒤나 기슴께 어딘가에서 내가 신발주머니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하지도 않은 비밀을 그 애가 알게 될까 봐 조금씩 거리를 두었다. 같이 가자고 찾아온 그 애 앞에서 다른 여자애의 손을 잡으며 나 오늘 얘랑 같이 갈 거야, 한다거나. 분명 그 애와 멀어지려는 건 나였는데, 그 애는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선생님은 그 애가 전학을 갔다고 했다. 분명 전날까지도 그런 말은 없었는데, 어제 오후만 해도 걔 발소리를 등 뒤에서 들었는데. 하굣길에 친구들과 함께 그 애의 집 앞에 가 보았지만 그 애는 거기 없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걔의 비밀을 듣던 창문이 그대로 있는데, 그 앞에서 마주 보던 초록도 무성한데. 우리가 저 안에 굴려 놓은 비밀들이 얇은 유리창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뭐야, 진짜 갔나 봐. 웅성대는 애들 사이에서 나는 또 혼자 코를 문질렀다.
얼마 뒤 나도 준비 없이 그 동네를 떠나게 되었다. 먼저 떠난 그 애처럼, 내일 아침이면 친구들은 나의 전학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 애들도 우리 엄마 가게 앞에 와서 나를 부르고, 문을 두드리고, 또 누군가는 코를 문지를까.
낯선 잠자리에서 이제 그 애와 다시는 만날 수 없겠구나 짐작했다. 그때 내 비밀까지 다락방에 숨겼다면 작별을 예고하지는 못했더라도 대비 정도는 할 수 있었을까. A는 네 비밀 때문에 너와 놀지 않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 소란스러운 내 비밀 때문에 너랑 놀 수가 없다고 고백했었어야 했는데. 나도 이제 네가 말한 그 비밀의 무게를 알 것도 같은데, 나도 이제 너만큼이나 자란 것 같은데.
그로부터 21 년 후 그 애와 함께 걸었던 동네로 돌아왔다. 그 애의 다락방에 처음 갔던 날처럼, 아무런 결심 없이 이 동네로 돌아왔다. 하필 이직한 직장이 그 동네였고, 하필 내가 찾는 서점이 그 동네에 있었다. 그 시절이 직장 부근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곳으로 향하면서도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랐다. 문득 어느 경사로 초입에 들었고, 그 길을 따라 내려갈수록 짙어지는 향수에 확신하고 지도 어플을 켜 보았다. 아, 여기였구나.
경사로 중앙 사거리에서 앞으로 직진하면 그 애의 집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때 그 초록의 무성함이 오랜만에 콧잔등을 간지럽힌다. 이 싸한 통증을 어린 우리는 가려움으로 불렀었나 보다.
기억하는 곳으로 가 보았지만 따라간 향수가 무색하게도 온통 콘크리트 건물뿐이었다. 그 애도 이곳에 돌아온 적이 있었을까. 두고 간 그 비밀들도 다시 챙겨 떠났을까.
비밀을 고백하던 그 소년을 생각하며 콧등을 문질렀다. 걔는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애였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곤히 잠든 엄마 얼굴을 꼭 확인하고는 했으니까. 엄마 잔다. 쿡쿡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걔의 목소리는 작고 다정했다.
그 애가 내게 터놓은 비밀 뒤에 달렸을, 어린 나는 몰랐던 무수한 상처들을 생각한다. 나 몰래 먼저 자랐을 그 소년을. 아무도 모르게 다락방보다 커졌을 그 애를.
실패하기 때문에 첫사랑이라더니. 내 첫사랑은 사랑임을 깨달으면서 첫사랑이 되었다. 모든 처음은 미궁에서 꺼내 올리면 달아나 버리고는 하니까. 그래서 걔도 그렇게 달아나 버렸나 보다.
첫사랑은 발자국 소리가 난다. 첫사랑은 실내화 주머니를 차는 소리가 난다. 첫사랑에서는 쾌쾌한 비밀 냄새가 난다. 아마도 그 애는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이었음을 깨달은 오늘에야 그 애는 첫사랑이 되었다. 나는 이제 콧등을 문지르지 않고도 눈물을 참을 줄 안다. 아마 그 애도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