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를 갓 튀긴 감자튀김처럼 한 구절씩 뽑아 먹는다. 어느 구절들은 너무 뜨겁고 바삭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주 살살 씹어도 와작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이 퍼졌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시, 라고 하면 무심한 듯 외워지는 한 편 정도 가슴에 묻고 있다는데, 나는 쏙쏙 뽑아 먹은 구절들이 산발적으로 튀어나오기만 했다.
시? 좋아하는 것 같아. 음, 좋아하는 시? *청춘은 다 고아지··· *이어폰을 나눠 낀다, 하나의 장르로 서로를 구속하는 일··· *노래라 보낸 게 울음이라 되돌아왔을 때··· *아무것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훼손되지 않고 싶다··· *너무 오래 나를 의심하면서··· *절벽이라는 말 속엔 얼마나 많은 손톱자국이 있는지···?
지난 주말에는 감사한 기회로 낭독회에 참가했다. 그간 많은 문학 행사에 참가했지만, 낭독회는 처음이었다. 넓지 않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사람들의 눈에서는 줄줄 외는 시 몇 편이 흐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어쩐지 주눅이 들어 얌전히 다리를 모아 앉았다.
그녀가 낭독하기 시작하자 주최자인 그는 에어컨을 껐다. 모든 인공적인 소음이 사라진 곳으로 시어가 불었다. 팔랑대는 소리 한 장 없이, 시인의 음성을 빌려 시 한 편을 전부 삼켰다.
네 편의 낭독이 끝나고 고개를 들었다. 방금 소화한 시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문체는 사람이라 했지. 그럼 시는 시인이었나?
그녀는 자신의 시가 미워질 때면 프린트를 해서 자꾸자꾸 쓰다듬어 주었다고 했다. 여름을 미워하지 않고 싶어서 여름을 쓴다고 했다.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사랑받은 미움들은 페이지마다 사랑을 뚝뚝 흘려 손끝에 묻혀 주는지, 사람들은 허벅지 위에 얹어 놓은 시집을 자꾸만 만지작댄다. 양파를 앉혀 두고 사랑한다 말하면 길게 뿌리내린다더니 그녀가 조용히 고백한 사랑은 자신을 지나 그들에게까지 뿌리내렸다.
가장 좋아하는 시를 소개하는 그녀가 덧붙인다. 저희 엄마는 시를 보면 그래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시는 우리 엄마가 이해하는 유일한 시예요. 그래서 저는 이 시를 가장 좋아해요.
나는 고개를 깊게 숙인다. 맞지, 좋아한다는 건 늘 그렇게 편파적인 거였는데. 제가 시를 쓰는 힘이요? 사랑이죠. 부끄러워서 더 말 안 할래요. 그것 봐, 결국 설명하지 않는 게 사랑인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혹시 시인님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 시가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 주세요.
그의 제안에 여기저기 손들이 불쑥댔다. 그녀가 손을 뻗으면 수줍은 목소리로 시 하나를 꼽고, 까닭을 묻지 않는 그녀는 누군가의 애정에 음성을 입힌다. 이곳에서의 낭독은 설득 없는 애정과 의문하지 않는 애정의 상호작용. 누군가는 제목으로 애정을 말하고, 그녀는 음성을 입히고, 나는 모퉁이를 접는다.
어느샌가 나는 모았던 다리를 뻗는다. 양손으로 펼쳤던 시집을 말아 쥐고, 그녀의 음성이 닿았던 문장을 입모양으로 따라 읽는다. 시어를 지능과 배움의 영역으로 오역했던 자신을, 사랑한다면 몇 편 정도는 완전히 외고 있어야 한다는 좁은 교양을, 타당과 설득을 벗어던지고 호호 불며 바삭댄다.
돌아오는 길에는 몸체가 두툼한 연필을 샀다. 그만큼 두꺼운 흑심은 밑줄을 긋기에 적격일 듯하다. 시를 좋아하냐고 물을까 봐 몰래 읽던 시집을 허벅지 위에 펼쳐 놓고, 그녀의 서명 옆에 새 흑심을 긁는다.
5 월 여름 초입. 과장하지 않고 무심하기. 부수지 않고 통과하기. 적당히 흐트러지기. 사랑을 설득하지 않기. 타당하지 않기. 미끄럽게 애정하기. 바삭하게 사랑하기. 꾸미지 않고 고백하기.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부분이 참 좋아. 모를 수 있어서 좋아. 몰라도 좋아서 좋아. 모르면서도 좋을 수 있다는 게 좋아. 뜨겁고 바삭해서 좋아.
*이제니, 발 없는 새
*양안다, 이해력
*이규리, 당신이라는 모든 매미
*고선경, 우리는 목이 마르고 자주 등이 젖지
*최문자, 오늘
*안희연, 백색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