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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은 Jun 29. 2024

이미와 나중 사이


 철은 당부했다. 너를 잃지 마. 고집 있게 너를 지켜. 하지만 나의 목적지는 언제나 나를 넘어서야만 도달하는 곳이었다. 너무하게 멀리 가고 싶어. 나를 잃지 않고서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어? 너를 잃지 않아야만 네가 갈 수 있어. 나는 그게 꼭 지금을 잃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지금을 잃지 않아야만 갈 수 있다고? 지금을 잃지 않고서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어? 말도 안 돼. 지금은 볼품없기만 하잖아. 어중간함, 군살, 질투, 둥글게 말린 어깨와 뻣뻣한 목. 이런 것들은 여기 두고 가야지. 너무하게 먼 곳의 입구는 아주아주 좁아서 못난 것들까지 챙겨갈 수가 없단 말이야.


 그 이름은 있음과 없음, 가능과 불가능, 이미와 나중 사이에 산다. 이미는 딱딱하고, 나중은 허풍으로 잔뜩 부풀어서 그 사이에 짓눌린 채로 홀대 당한다. 무자비한 압력을 온몸으로 받치는 일은 철저하게 외롭지만 납작하고 분명하게 버틴다. 두고 갈 생각뿐인 나를 떠나지 않는 지금이 다정한 건지, 어쨌거나 함께하는 내가 강인한 건지. 강인하기 때문에 다정한 건지, 다정해서 강인한 건지.


  지금은 오랜 연인처럼 듬뿍 사랑받지 못한다. 내가 너를 떠나면 나중은 오지 않아. 왜 그걸 몰라 줘? 그런 한탄 한 번이 없다. 사랑하지 않냐면 분명 그건 아닌데, 사랑한다는 말은 유난스러우니까. 지난 애는 그랬어, 저기 있는 애는 그렇게 해 준대. 나는 이미 가진 애인을 대하듯 만족을 모른다.


 경계해야 할 건 새로움이 아니라 당연함이야. 너 걔가 당연한 것 같지. 걔가 왜 당연해? 연애가 주제가 될 때면 언제나 안주처럼 씹던 말이다. 지금과 내 사이에 존재하는 권태는 푹 익은 사랑과 닮아 있다. 잃으면 온통 망가질 게 분명한데, 분명한 만큼이나 당연하다.

 나 언젠가 이 지금에 존재하는 그들을 그리기만 했는데. 이 지금과 함께하는 나를 동경했는데. 부재할 때 또렷하고, 존재하며 흐릿한 것들의 이름은 지금. 언젠가 또렷했고 언젠가는 딱딱해질 지금은 그걸 알고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데, 나는 흐릿하게만 바라본다.


  당연한 것과 화해하기란 어쩌면 가장 어렵다. 당연하기 때문에 미안하기가 새삼스럽다. 자신을 잃지 않아야만 멀리 갈 수 있다는 철의 말을 되뇌어 본다. “너의 지금을 잃지 않아야만 네가 멀리 갈 수 있어.”

 

 너는 자주 납작해질 테지만, 자주 홀대될 테지만 그래도 네가 곁에 있어 주어야만. 언제나 너는 묵묵해 줄 거지. 같이 가 줄 거지. 사실 흐릿한 너를 쓰다듬으면 나는 선명해지는 것 같아.


 눈을 뜨면 간밤의 화해를 번복한다. 그렇게 느닷없이 애틋하고 자주 당연하다. 지금은 대체로 듣기만 하고 소란한 건 언제나 나다. 이토록 일방적인 화해는 영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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