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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은 Jun 30. 2024

품이 드는 여름

 

 우리는 뜨겁게 뾰족해진 채로 도시를 떠났다. 더위를 피해, 실은 겨울처럼 둥글어지기 위해 원색으로 뛰어든다.

 야, 모기향 있는 사람? 나 있어! 어, 나는 모기약 챙겨 왔어. 물린 사람? 나 여기 물린 것 같애. 재채기하듯 뱉어내는 필요에도 모두가 흔쾌하다.


"아, 얼굴에 곰팡이 필 것 같다."

“아, 곰팡이래. 근데 진짜로."

 

 구김이 끼어들 때는 각자 챙겨 담았던 농담을 꺼낸다. 짧은 도피를 위해 최소한의 것만 담긴 가방 속에서 가장 묵직한 것이다.


 더운 공기를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 오면 성공이다. 온도, 습도, 풍속에 불쾌까지 공고하는 이 계절에 던지는 농담은 다른 계절보다 조금 더 용기를 요한다. 웃지 않을 이유는 38 도의 고온에 팔십을 웃도는 불쾌지수만큼이나 많은데, 웃을 이유는 오로지 농담 하나에 달려 있으니까. 막중한 책임만큼 가벼워야 하고, 누군가의 발 아래로 눌어붙지 않게 바로 서야 한다.

 성공 유무는 어쩌면 상대방의 아량이나, 당사자의 기술에 달렸겠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이 더운 공기를 터트릴 수 있는 건 농담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굳이 모여 아량을 펼치고 농담하는 그녀들을, 이 호쾌한 폭발음을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었다.


 8 월은 바짝 붙어야만 옮겨지던 것들을 쉽게 전파했다. 정작 숨이 눈에 보이는 건 지나간 겨울이었는데. 한껏 움츠린 한때를 살다가 조금씩 더 차지하게 된 평수 때문일까. 아, 더워. 오늘 폭염이래. 조금만 떨어져 봐. 깜찍한 추위는 포옹의 구실이 되지만 어느 비겁한 더위는 간극을 합리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너랑 나······ 끈적해지고 싶었던 것 아닌가? 견디는 데 있어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는 겨울의 연대도 내팽겨쳐진다.


 떠나고, 뒤쳐지는 여름에는 모든 것에 많은 품이 들었다. 여름의 사랑은 더 자주 인내하는 사랑이었다. 한여름의 운동장에서 손 내미는 그 애에게 얼음물을 쥐어 주면서 숨 참기. 정수리가 화끈해도 음성만큼은 화끈대지 않기. 끈끈해진 피부를 스치며 모기떼를 해치우기.

 

 철의 목에 매달리지 않고서야 바다에 뛰어드는 법을 모르던 나. 쉼없이 노동해야만 했던 현주의 여름잠을 훔치던 나. 사실 철은 수영을 할 줄 모르고, 현주는 잠 한 번 푹 자 보는 게 소원이었더라고 당신들의 여름마다 들인 품을, 철과 현주는 고백한다. 하지만 여름의 철은 여전히 세 여자의 손을 붙잡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현주는 더운 불 앞에서 새콤한 열무김치를 담군다. 누군가는 어디선가 여름의 너와 나를 열망할지 모른다.


 둘이서 따뜻하라는 로맨틱한 한파를 지나면 여럿이서 뜨거우라고 그만큼이나 뜨거운 계절이 온다.

 함께 맞는 첫눈도, 좁은 주머니도, 어깨를 부벼주는 손바닥도 없지만 용기 있는 농담과 넓은 웃음이 있다. 끈적한 여름밤의 포옹과,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면 절대 견딜 수 없었을 체취에 들이는 품들이, 두툼한 손과 열무김치가 이 계절에 있다.


"열무김치 올해 엄청 맛있게 됐는데 좀 줄까?"

"그래. 가지고 가라. 아빠가 맛없으면 들고 가라고 안 하는데 올해는 맛있더라."

"아니, 매년 똑같이 하는데 그러네....... 조금만 줄까?"

"그 좀 단단하게 닫아서 줘라. 국물 쏟긴다. 안 그래도 짐 많은데."


 옥신대며 반찬을 담아 주는 철과 현주 뒤로 여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올해는 예년 대비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식탁에 앉아 설익은 열무김치를 집어 먹으며 여름간 들여야 할 새콤한 농담을 달군다. 한때만 먹으라더니 한가득 담긴 시원한 열무김치만큼 여기저기 돌려 줄 품들이 많다는 것을 곱씹는다.


 아삭아삭. 올해는 예년 대비 가장 품이 드는 여름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삭아삭.

 뜨겁고 다정한 품들이 내리쬐는 여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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