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창피하게 남편에게 고함을 치며 울분을 토했다. 산후우울증은 무섭다.
육아수당 신청서는 아직도 못 냈다.
프리랜서인 남편의 서류가 복잡해서, 남편이 제 때 준비를 못 해서, 못 냈다.
미역국은 출산한 지 5주 동안 남편이 딱 두 번 끓여줬다. 산전에 내가 잔소리 잔소리를 해서 미리 연습한 것을 얼려놓은 것까지 합치면 세 번.
새벽 수유를 했다. 12시 3시 6시. 아기 뱃속에 알람이 있는 것만 같다. 독일에서 맘에 드는 수유복을 아직 찾지 못해서 새벽 수유를 할 때면 등이 시리고 배가 시리다. 목욕가운으로 그리고 부들부들한 담요로 가린다고 가리는데도 시리다. 몸도 마음도 너무나 시리다.
그렇게 6시 수유를 마치고 너무나 허기가 져서 남편에게 미역국 끓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어젯밤 곯아떨어진 남편이 안쓰러워서 산후 후유증으로 아직 잘 움직이지도 않는 손가락을 애써 써 가며 미리 미역을 불려놓고 어렵게 구한 냉동된 볶은 전복을 미리 꺼내놓았다.
미역도 불었겠다 전복도 다 녹았겠다 물 넣고 양념해서 끓이기만 하면 되니 내가 직접 이것까지 하려다가 수유 후에 너무 힘들어서 남편에게 부탁해 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나 일 관련 메일 몇 개 써야 할 거 있는데 그것부터 해놓고 해 줄게.
잠깐 생각했다.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남편은 공식적으로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육아휴직 중이다. 독일에서는 프리랜서도 육아수당을 받는다. 아직 신청서 제출은 못 했지만 3월과 4월 두 달 동안 "공식적으로는" 일하지 않는 남편이, 아직 산욕기인 나에게, 새벽에 수유하느라 지치고 몸도 마음도 허기진 나에게, 미역국보다 메일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는 산후 두 달 동안은 일하지 않기로 임신하자마자 나와 약속했다. 이 것은 임신 전에 한 약속이기도 하다. 원래도 일처리가 느리고 비효율적인 완벽주의 성향인 남편은 번아웃이 온 후로 일처리가 더더욱 느려졌고 출산예정일이 있는 3월 초 전에 다 끝내놓아야 했던 일을 4월인 지금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스트레스받으며 진도는 못 나가는 시험 전날의 학생처럼 그는 육아수당 신청도, 마무리 짓지 못한 프로젝트도 그렇게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대로 받아가며 끝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그 꼴을 보고 있는 것도 화가 나는데 내 미역국을 우선순위에서 뒤로 둔 게 나는 너무도 서럽고 분했다.
나는 평생 지금 네 말을 잊지 못할 거야. 죽어도 못 잊어. 죽어도 안 잊을 거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미친 사람처럼 악을 쓰며 울분을 토했다.
미역국이 그렇게 먹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사실 이제 지겨워서 별로 당기지도 않는 미역국, 그 미역국이 뭐라고. 나는 미역국 때문에 그렇게 또 갓난쟁이가 있는 집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사실 미역국이 문제였겠는가, 쌓이고 쌓인 것이 터진 것이지. 미역국은 그저 부풀어 오른 풍선을 톡 하고 찌른 바늘이었을 뿐.
아침 여덟시도 되지 않은 하루의 시작에서부터, 아니 사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분간이 안 되는 내 하루지만, 온 동네가 다 떠나가리만큼 큰 소리로 나는 서러움에 울부짖었다. 아마 출근 길이던 동네 이웃들 꾀나 재밌게 나의 울부짓음을 경청했을터이다.
도대체 너의 산후휴가는 언제냐고. 3월 내내 찔끔찔끔 일하며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다 받고 아기 잘 때 제발 좀 같이 자라고 했더니 중간중간 일한다고 제대로 못 자고, 그 부족한 잠으로 내 식사를 챙겨주려니 식사 텀도 제대로 못 지켜서 아직 산욕기인 날 굶기는 일도 다반사고 약속한 한식은커녕 겨우 샌드위치 만들어주는 것도 감사해야 하잖아. 한인 산후도우미를 쓰려고 했더니 집에 낯선 사람 오는게 불편하고 돈이 아까울 것 같다고 하질 않나.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남편이 그렇게 말하니 서운했었다. 본인의 친구들은 아기 태어나고 너무 편했다는 이야기를 내 임신 기간 중 나에게 자주 했던 남편이다. 그 이야기는 주로 출산 전에 내가 미친 사람처럼 자꾸 미역국을 끓여서 얼리고 고기를 사서 재우고 그러면서도 부족한 것 같다고 걱정할 때 남편이 한 얘기인데 난 그때마다 반박을 했다. 백일이 되기 전 세 달간은 정말 힘들 거라고 아기를 낳은 주변 친구들이 모두 하나같이 얘기하는데 타지에서 친정도 친한 친구도 곁에 없는 난 출산과 그 이후가 너무나 걱정된다고. 그럴 때마다 남편이 꼭 덧 붙였던 이야기가 있다. 자기가 지금 일을 해서 바쁜 거지 2월 중순만 되면 프로젝트가 다 끝날 것이고 자기가 풀타임 일을 하지 않는 3월과 4월 육아휴직 두 달 동안은 얼마나 시간이 많을 거냐며 그 시간 동안 집안일, 식사준비, 그리고 수유를 제외한 아기 케어를 자기가 충분히 담당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얘기했었다.
그 어이없는 소리를 여러번 들어왔던 나는 막상 수유하고 지친 상태에서 미역국도 제 때 얻어먹지 못하게 되자, 그 이유가 나와 약속한 육휴기간 중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해서여서, 그 일이 이제는 내가 너무도 싫어하는 그의 목표도 비전도 없는 프리랜서 일이라서, 나는 결국 터져버렸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분했다.
화가 난 채로 울분을 토하며 나는 직접 미역국을 끓이기 시작했고 미역에 물을 붓는 동안 다시 한번 욱하고 양념을 하는 동안 다시 한번 욱하며 남편에게 소리를 소리를 질렀다.
결국 부엌에 있는 약통을 던지다시피 하며 미리 구비해 놓았던 항우울제를 찾았다. 항우울제를 손에 쥐는데 너무 서러웠다. 그리고 다시 악을 쓰며 소리쳤다.
지난 몇 년 동안 먹었던 항우울제를 임신기간 동안 내 상태가 정말 좋아진 덕분에 겨우 끊었는데 너 때문에 자꾸 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결국 또다시 찾게 되는구나, 고맙다. 니 불안정한 프리랜서라는 직업, 그 직업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한 채 병들어 가면서 10년째 아무 발전도 없는 네 모습, 그 일을 한다고 약속한 내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하는 너, 그리고 그런 너 때문에 병들어 가는 나. 이게 현실이야. 이게 니가 10년동안 너를 갈아가며 목표없이 병신같이 일한 결과야.
그 후로 무슨 말을 더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몇 시간을 울고는 잠이 들었다.
그렇게 수유를 하고 또 하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답답한 마음에 집 밖에 잠깐 나갔는데 아랫집에 사는 독일이웃이 막 현관에 자전거를 대고 있었다. 날 보자마자 날 더러 난 네가 산 꼭대기에 가는 줄 알았다며 어른답게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네 남편도 집에 있으며 모든 일들을 케어하느라 부담이 많을 거라고 하는데 순간 할 말이 없었다. 어영부영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집 근처를 하염없이 걷는데 어이도 없고 화도 났다.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은 정말 집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싸우는 아랫집 부부인데 그 사람이 내게 "어른스럽게" 말하는 법에 대해 논하는 것이 우스웠다가, 프라이버시가 없는 이런 집에서 사는 내 처지가 한심하고 처량했다가, 함부로 남의 부부싸움에 대해 코멘트하는 그 무례함과 눈치없음에 화가 났다가, 마지막에는 이런 내 밑바닥이 온 동네에 다 까발려졌다는 쪽팔림에 몸서리 쳐질 정도로 불쾌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바닥으로 끌어낸 남편이 다시 원망스러워졌다.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계속 내게 실수를 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이 안타까워서 화가 나고 실망스러워서 화가 나고 한심해서 화가 나는 내 모습에... 나는 내 바닥을 결국 또 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인 내 스스로가 실망스럽고 불쌍해서 무엇보다 그런 집안의 공기를 느꼈을 내 아가에게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항우울제를 결국 다시 먹어야 하는 걸까. 그럼 또 끊지 못한 채 몇 년을 먹어야 할 텐데, 나는 모유수유도 계속하고 싶은데...
어찌할 바를 모른채 그렇게 나는 상담선생님께 상담예약을 원한다는 메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