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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인 Mar 02. 2020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섀도우 복싱(Shadow Boxing)'이라는 말이 있다. 권투 선수가 가상의 상대와 그의 공격을 상상하며 몸을 움직이거나 훈련하는 것을 뜻하는 이 용어는 이미지 트레이닝, 즉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을 일컫는다.


2020년 초 갑자기 나타나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이하 코로나)와의 전쟁 또한 그와 같은 모양새다. 코로나는 아주 강한 데다가 빠르게 진화하는 까다로운 적으로, 제대로 된 훈련조차 되어 있지 않은 우리는 무방비상태에서 얻어맞으며 그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베니스의 석양


나는 지난 2월 4일부터 약 2주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나의 여행 루트는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 피렌체, 베니스, 베로나 등이었는데 이 도시들은 공교롭게도 현재 이탈리아에서 코로나가 가장 기승을 부리고 있는 지역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여행하던 당시 1명이던 이탈리아의 코로나 확진자는 내가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바이러스가 국경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라는 좋지 않은 전망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여행 중 약간의 감기 증세를 겪었던 나는 귀국하자마자 한 차례 그리고 귀국 1주일 후에 또 한 차례 진료와 검사를 받았고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안심하지 않고 이후에도 스스로를 격리하며 지내고 있다. 잠복기를 가지고 있다는 상대의 공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국 후 약간 남아 있던 감기 증상은 이비인후과 진찰 결과 목감기와 코감기로 인한 축농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이는 약 복용과 치료를 통해 회복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곳의 선별 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체 테스트를 진행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먼저 겪으며 검체 테스트를 위해 스스로의 몸을 선별 진료소로 이끄는 일과 검사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두렵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알게 되었다.


두려움이 가장 컸던 시기는 두 번째 검체 테스트의 결과를 기다릴 때였다. 결과를 받기까지 하루하고도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종종 우울해지는 통에 아무것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로지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사실 양성 판정에 대한 두려움보다 큰 것은 따로 있었다. 스스로를 격리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동안 나와 접촉했던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전염병의 위협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결과가 음성이 아닌 양성이라면 제발 나 혼자였으면 좋겠다고, 나로 인해 그 누구도 아프거나 두려움에 떨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다행히도 음성이었지만 나는 지금도 전염병의 가장 끔찍한 점이 바로 이처럼 아끼고 이들에게 사랑이 아닌 고통을 전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2차 검체 테스트를 받았던 그날, 귀국 후 나를 잠깐 만났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본인도 약간의 미열을 포함한 감기 증상이 있어서 검사를 받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친구 녀석이 검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직장은 폐쇄되었다고 한다.) 일종의 자격지심일까. 전화기 너머 친구의 목소리에서 불안함과 동시에 하필이면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나를 만났다는 것에 대한 후회와 원망이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그가 전화하기 몇 시간 전 나 또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다시 검체 테스트를 받았다.


나 또한 같은 날 검체 테스트를 다시 받았으며 마찬가지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하자 그는 반드시 결과가 나오면 자신에게 먼저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하루 남짓 시간이 흐른 뒤, 그보다 먼저 결과를 받은 내가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해주었고 몇 시간 뒤 그 또한 음성 판정을 받았다. 나는 나보다 그의 결과에 더 큰 환희를 느꼈고 정말이지 진심으로 그가 코로나로부터 안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가격리를 하면서 깨달은 또 다른 사실은 내가 지금껏 이곳에서의 일상의 순간과 장면들을 꽤 소중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섬에서의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를 느끼고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 나는 지금 따분하게만 여겼던 그 일상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 좋아하는 이들과 아무런 걱정 없이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차를 마시는 일, 내가 운영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해주는 일, 그토록 가고 싶었던 경주, 다음 해외여행에 대한 계획까지. 모든 것이 불투명해진 지금이 나는 너무나 슬프다.


우리는 언제쯤 다시 평온한 일상을 누리게 될까. 한 가지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뉴스에서 광주광역시가 코로나로 인해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고 있는 대구광역시의 코로나 경증 환자들을 데려와 치료하겠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시국 언론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뉴스였다. 


분명 얻어맞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쓰러지지 않았다. 힘을 합쳐 버티고 기다리면 언젠가 상대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순간이 올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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