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듯한 인사를 받는 어른아이

by 메가스포어 megaspore

가끔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 지긋하신 어른이(아이 유치원 버스 기사분 같은)나한테 정중하게 인사를 하시고, 나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사람들이 공공기관에서 나를 접대하고.

아이를 키워보면 아이가 영유아에서 유아로 변할 때, 즉 아직 세상에 대해 완전히 모를 때와 조금은 알아갈 때,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진다는게 보인다.

영유아였을 때는 어딜 나가도 두리번 두리번 멍한 표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면,

유아기로 넘어오면서는 이젠 뭔가를 안다는 표정이다. 무언가를 보고 씩 웃는가 하면, 지금까지 자신이 익힌 노래, 율동, 사물의 이름이나 그것이 가진 느낌 등, 자신이 쌓아온 (생후 2,3년동안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세상에 대해 반응하고 세상을 즐기기 시작한다.


자신을 표현하고 고집이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건 싫고, 이건 하고 싶고 등등 호불호가 생기는 시기이다.

이때 호불호가 생기고 고집이 생기는 아이 때문에 부모들은 조금 힘들어지기 시작하지만, (아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고집이 생기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말 잘 듣는 아이가 더 위험하다는 어느 육아서의 표지처럼, 주위의 말을 안 듣고 자기를 표현하려는 단계를 거쳐야 그 다음 단계인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협동이라는 과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는 혼자만의 고집에서 벗어나 협동하는 방법을 배울 것이고, 결국엔 협동을 통한 성취감과 연결감을 통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어른이 되버린 나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마땅히 겪고 통과했어야 할 자기 고집을 세우는, 주위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견을 피력하려는 시기를 온전하게 겪지 못했다면,

주위의 환경으로 인해 반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나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주위의 요구에만 순응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협동하기보다는 자기 의견만 고집한다던가, 아니면 계속 주위의 의견에만 순응하고 눈치 보며 살다가 갑자기 억울해지는 그런 어른답지 못한 나이만 먹은 어른아이가 되는 것이다.

인생의 단계별로 과정을 거쳐나가서 성숙하는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나가야 하는 것을,

우리는 중요한 어느 단계를 빨리 거쳐버리고 급히 성숙해지기를 강요 당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의 무의식에선 우리가 아직 그 단계를 완수하지 못했다고, 계속 그 단계를 통과하려 애쓰는 것은 아닐까.

슬픈 사람은 슬퍼하는 과정을 겪어야 하고,
미숙한 사람은 미숙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과정을 겪어야만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리고 공공연히 모두가 우리에게 강요했던,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인격적 성숙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성숙하면 그도 좋고 나도 좋다.

우리 모두가 좋은 그 길을 위해서는, 그 전에 우선 우리 모두가 바라지 않는 그 보기 좋지 않은, 성숙하지 않은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내가, 내 주위의 사람이 지금 그 단계를 거치고 있다면, 격려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난하거나 그에 대해 분노까지는 하지 말자.

그는 지금 성숙하는 중이다.

자신과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희생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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