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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가스포어 megaspore Nov 22. 2022

같이 사는거 비추

결혼 후 시어머니랑 꽤 오래 같이 살았다.


요리를 가르쳐주신다고, 애기를 봐주신다고 계속 우리집에 계셨는데 나는 대놓고 같이 사는게 불편하다고 얘기하지 못했다. 남편한테는 얘기했지만 남편도 엄마한테 언제 가시라고는 말하기 힘들다고 했다. 최근 일년 가까이 같이 살다가 몇달전 가시게 됐는데, 가시기 직전에 신랑이랑 크게 싸웠다.


가시기로 한 날이 됐는데도 가는 표도 구하시지 않고 신랑도 간다 만다 말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언제쯤 가시냐고 물었는데 표를 못 구해서 좀 더 늦게 가셔야 한다고 하길래 화가 났다. 같이 아침 조깅하러 갔다가 싸움이 시작되고 신랑이 한다는 말이 기가 막혔다.


“엄마가 너랑 있어서 엄마가 힘든거지 너가 힘든거냐”

(시어머니가 요리 집안일 많이 하시긴 했다)


나는 말이라도

“그래 너가 친엄마도 아닌데 같이 있으면 불편하긴 하겠지...”란 말을 기대했는데..


나중에 신랑이 집에 와서는 자기 엄마아빠한테 한다는 말이

“얘 이혼하고 싶대”


시어머니가 왜그러냐고 하니

 “우리가 (시부모님과 남편) 너무 잘해줘서”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도 드디어 풀려났다고 속시원하다고 하면서 지난 십년간은 자기가(남편이) ’개‘ (내가 개띠긴 하지만) 먹여살린 걸로 생각한다고 했다. (결혼 후 십년동안 나는 파트타임을 제외한 직장을 가지질 않았다) 그러면서 첫째딸이 내옆에 있는데 둘째(아들)는 자기가 키운다고 소리 질렀다. (딸이 초1이라 다 알아듣는데 말이다)


나도 좀 애들한테 충격을 덜 줘야 할텐데 저렇게 막 나오는 남편을 보니, 시어머니를 생각하니(시어머니는 싸우는 우리를 보시고서는 나한테 다가오더니 “너가 직장을 구하는게 어떻겠니” 하셨다.) 나도 신랑과 마찬가지로 내가 이 수렁에서 빠져나가려면(풀려나려면)애들한텐 상처 줘서 정말 미안하지만 나부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런 공감능력1도 없는 남편과 영원히 아들 옆에 붙어있고 싶어하는, 나를 못마땅해하는 시어머니한테서 벗어나지 않으면 시어머니보다 내가 더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불행한 엄마아빠를 보는 것보다는 떨어져서 덜 불행한 엄마아빠를 보는게 애들한테도 나을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5살 아들한테 말했다.


“엄마랑 아빠가 자주 싸우니까 따로 살거야. 근데 넌 아빠랑 살아야 돼. 넌 남자니까. 누나는 여자니까 엄마랑 살아야 돼. 목욕도 시켜주고 해야 되는데 아빠는 누나 목욕도 시켜줄 수 없잖아.”


그랬더니 아들은 자긴 엄마랑 누나랑 살고 싶단다. 안된다고 했더니(ㅜㅜ) 나중에 마지못해 알았단다. 나중에 분노의 불길이 좀 지나가고 나서 아들한테 “엄마가 아까 아빠랑 살아야된다고 해서 엄마 미웠지?” 했더니 “엄마 미워..”했다.


이제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드디어 시어머니한테서 벗어날 수 있다고. 신랑이 다 나쁜건 아니지만 그 옆에는 늘 날 안 좋게 보시는 시어머니가 계셨고 난 영원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면 참 방법이 없었다. 다른 집은 결혼하면 가끔만 얼굴 보는 것 같았는데 나만 이런 것 같아서 억울했다.


신랑이 저녁쯤에 잘자라고 했다. 뭔가 화해 모드를 다시 꾀하는 것 같은데 이번엔 어림 없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너무 이쁘지만 (아들이 애교가 많다) 내가 이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나부터 먼저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냉냉한 분위기였는데 신랑이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도 역시 (늘 신랑이 먼저 화해를 요청했다) 화해를 하고 싶어하는 분위기였다. 자기도 화가 나서 말이 막 나온거고 엄마는 곧 가실건데 표를 못 구해서 그런건데 나보고 왜 그러냐고 했다.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신랑이 이렇게 나오니 나도 그럼 다시 살아볼까 싶었다. 우리 아들도 매일 볼 수 있고..(시어머니가 이런 심정일까)


다시 살기로 하고 지금 반년 정도 지났다. 시부모님은 가셨는데 전화가 오실 때 난 잘 받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시면 답장은 하지만.. 그래서 언젠가는 시어머니께 이런 문자를 받았다.


“너희(너희라고 하셨지만 너겠지)정말 웃긴다. 전화 안 받는건 무슨 뜻이야? 손주가 다쳤다고 해서(신랑이 그날 아침에 나한테 보낸다는게 가족그룹채팅란에 아들이 미끄러져서 다쳤다고 보냈다) 손주 얼굴 좀 보려는데 그게 그렇게 안되니?” (시어머니가 이런 문자를 보내셨다고 친정엄마한테 말하니 엄마왈: “엄청 공격적이네..”)


다행히 그날은 내가 핸드폰을 바꿔서 새핸드폰엔 카톡앱이 안되는 상황이었고, 신랑은 나대신 며느리가 핸드폰을 바꿔서 카톡을 볼 수가 없는거라고 했다. 시어머니의 답장은 없었고, 나는 이젠 전화를 해야 하나 싶어 저녁쯤 시어머니한테 드디어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으셨다. 그러더니 나중에 문자로 “며늘아, 내가 설거지하느라 못 받았구나 (왠지 갑자기 다정하신 말투로)” 왔었고 나 모르는 사이에 또 전화도 와있었는데 바로 답전화를 걸진 않았다.


신랑이 단점도 많지만(욱하는 성격)장점도 많아서 헤어질만한 이유가 우리에게 엄청 많진 않은데 결혼후 십년 이상 시어머니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신랑한테 난 어머니한테 스트레스를 받아서 언제 우리가 헤어질지도 모르니 아이한테 상처 줄 것 같아서 아이는 낳지 말고 살자고 했는데 (‘객관적’으로 엄청 예쁜)아들딸 둘을 낳아버렸다ㅜㅜ


(스키장에 놀러갔다가 넘 그 여행이 행복해서 딸아이가 그때 생겼고, 아들은 행복하지도 않는데 힘든 회사생활(힘들긴 했는데 두달)중에 생겨서 시기적절하게 힘든 회사를 관두고 지금까지 애 키우며 직장생활 안 하고 살고 있다) 세상에서 애들이 가장 좋다. 너희를 낳으려고 내가 지금껏 살았구나 싶고.. (울컥)


시어머니 전화는 여전히 피하고 있고 (언젠가는 가끔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신랑이랑은 애들을 위해서라도 안 싸우려고 심기를 안 건드리려고 서로 조심하는 편이다. 나도 신랑이 화를 내면 바로 미안하다고 하고 신랑이 화가 좀 가라앉으면 그때 나도 내가 생각했던 것을 말하면서 반격한다. 이 방법이 괜찮은 것 같다.


애들은 6월에 그렇게 엄마랑 아빠랑 따로 살거라고 선언하고서 (게다가 신랑이 중국 사람이라 이혼하면 아들은 중국에, 나와 딸은 한국에..ㅠㅠ 아들이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제 불과 5개월밖에 되질 않았는데 역시 아이들은 회복력이 빨라서 급격히 아이들이 세상발랄해졌다 ㅎㅎ


시어머니가 가시고 신랑이 내가 라면만 끓여줘도 고맙다고 했고 나도 신랑이 노력하는게 눈에 보여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신랑 어깨 마사지도 해주고 했는데 나는 신랑 어깨를 주무르고 딸은 내 어깨를 주무르고 아들은 누나 어깨를 주무르는 마사지 기차 같은 그런 흐뭇한 광경도 있었다.


시어머니 가시고 나서는 신랑이 주말아침에 햄버거 같은 것을 만든다. 원래 절대 주방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인데(바쁘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워낙 요리를 잘하시니 자기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었고) 요리를 시작하길래 내가 마음에서 진정 우러나와서 ”신랑 고마워!!“하고 크게 외쳤더니 놀던 남매가 ”신랑 고마워 신랑 고마워“ 하면서 그 말이 뭐가 재밌는지 열번 정도를 외치면서 둘이 키득댔다.


확실히 부부 사이가 좋아야 애들이 밝은 것 같다. 티비만 좋아하던 첫째도 집안 분위기가 좋아지고 자기한테 관심 가져주면서 놀아주니까 (놀아주는 것도 사실 별거 아니다. 계산대 점원 놀이 그런거) 그렇게 죽고 못살던 티비도 이제 안 찾는다. 아들은 요즘에 그렇게 혼자 신나서 춤을 춘다. 그 춤을 보고 있자면 저런게 진짜 영혼의 흥이구나 싶다. 정말 우러나와서 흥에 겨워서 추는..ㅎㅎ


신랑이 예의상인지 뭔지 시어머니한테 내년 설에 오시겠냐고 물었는데(나한테 상의도 안 하고..)안 오시겠단다 ㅎㅎㅎㅎㅎ


암튼.. 같이 사는 거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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