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예정일이 지나도 나오질 않아 유도분만을 했다.
나는 첫째는 한국에서, 둘째는 홍콩에서 낳게 됐는데 홍콩은 한국이랑 차이가 있을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분만 스타일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건 다음 편에..ㅎ)
아침 일찍 샤워를 하고 유도분만 입원 수속을 밟았는데 세상이 어디나 그렇듯이 친절한 사람 반 사무적인 사람 반인 것 같았다.
나야 아이를 낳는 일이 일생일대의 중대한 일이지만 그들은 매일매일 하루 왠종일 하는 일이 이 일이니 그렇게 사무적이고 시큰둥한 것도 이해가 된다. (가끔 시큰둥한 사람 때문에 빈정이 상한 적이 있다면 나도 일상의 반복으로 시큰둥해질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태동 검사를 한참동안 한 후 의사가 오더니 하는 말:
“유도분만 합시다”
(아니 유도분만 하려고 온 거잖아)
길어질지 모르는 유도분만 전 나는 간단히 샌드위치로 허기를 채웠는데(너무 배불리 먹으면 안 좋다는 말에) 간호사가 오더니 내가 겨우 샌드위치로 배를 때운다면서 신기하다는 듯 그 얘기를 다른 간호사한테까지 전했다..
샌드위치를 다 먹자마자 아까 관장으로 속을 비웠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배가 부글부글..
급히 화장실을 박차고 들어가 다시금 관장약의 효과를 보고 있는데..
간호사가 언제 나오냐고 재촉을 하여 급히 나왔는데 간호사가 내가 못 알아듣는 광동어로 쏼라쏼라 뭐라뭐라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침에 광동어 못 한다고 분명 말했는데도 잊어버렸는지 못 알아듣는 말을 계속 하길래 내가 “네? 뭐라구요?” 라고 만다린으로 물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굳은(내가 보기에) 무표정한 얼굴로 광동어로 계속 쏼라쏼라.. 뭔 말 하는건지..ㅡㅁㅡ
암튼 나는 내가 못 알아듣다고 미리 말했는데도 끝까지 광동어로 말하는 그녀가 맘에 안 들었고 무언가 나를 탓하는 듯한 그녀의 무표정한 표정은 안 그래도 아이 낳기 전 긴장되어 있는 나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그래 저 사람도 무의식 중에 자기네 언어가 나오는 거겠지. 매일 하는 일이니까 사무적일 수 밖에 없겠지..’하며 사실은 빈정이 상한 나의 마음을 다시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억지로(?)돌리며 그 간호사를 따라갔다.
따라가보니 나는 빨리 무통 시술을 하러 들어가야 된다는 말이었고 새우등을 하고 무통관을 등에 삽입하고 유도분만을 드디어 시작했다. 오후 1시 반쯤 유도분만 시작해서 오후 7시 48분에 낳았으니 6시간 정도 분만 시간이 걸렸다.
인생의 모든 것이 첫 경험이 가장 잊을 수 없고 감동적이듯이 솔직히 둘째 출산은 첫째 출산 때만큼 환희와 감동에 차진 않았으나 그래도 순산했다는 안도감과 또 신랑을 닮은 건강한 아들의 목청이 쉰 듯한, 하지만 제 딴에는 힘껏 울고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너무나 기쁘고 큰 일을 잘 치뤄낸 내 자신이 뿌듯했다^^
한국은 분만 후 산모를 휠체어에 태워 입원실로 옮기는데 홍콩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분만 침대 자체를 밀고 입원실로 옮겨주었다.(다음 날 아침이 되야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출산 다음 날부터 수유를 하러 다녔고 며칠 후엔 모유량이 많아져 유축을 하기 위해 새벽에 유축기를 빌리러 프론트에 나갔는데 왠일.
직원들 모두가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피곤해 다들 엎드려 곤히 자고 있는 모습에 나는 차마 누구 한명을 깨울 수가 없었고 나는 그저 그 주위를 어슬렁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어슬렁대는 기척을 느꼈는지 한 간호사가 몸을 일으켰는데 그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쏼라쏼라하던 그 간호사였다.
그 간호사는 피곤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뭐가 필요하냐고 친절하게 물었고 유축기가 필요하다는 말에 나에게 유축기를 갖다주고 유축기 사용설명법까지 친절히 알려주고 자기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유축을 하며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 불친절해보이던 간호사가 그렇게 피곤해 엎드려 불편하게 잠을 청하던 모습을 보니 나는 일순간에 며칠 전 그녀에게 가졌던 안 좋은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무표정으로 시큰둥해보였던 그녀가 이해가 되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사실은 그들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세상을 원망했던 나의 마음은 일순간에 사그라들었고 내가 어쩌면 그들을 오해했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더 큰 문제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 했던 나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선한 것은 아니며 정말 그저 자신의 감정 해소를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무조건 참아주고 이해해주는 것만이 정답은 아님을.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존중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타인이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을 때 우리는 마땅히 걸맞는 대접을 요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화를 내야 할 때도 있고 가끔 마찰이 생기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내가 누구를 미워하지 않고 그의 고충을 헤아려보는 것은 나의 내면의 평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의 마음 속이 사랑으로 가득차야만 나는 비로소 평안해질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생각보다도 더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위해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이기심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도 속을 정도로 감쪽같이 말이다.
우리는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자신의 내면의 평화를 위해 누군가를 조금 더 이해해보려는,
그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보려는 태도를 가져 더 이기적으로 모두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 행복이 넘치고 넘쳐
다른 사람에게 줄 수 밖에 없을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