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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그리 애나 Feb 10. 2019

"심장 두근거림과 오한?" 어느날 내게 찾아온 공황발작

사실은 괜찮지 않았어 #2

처음으로 간 제주도였다. 이번 연도 목표 달성에 대한 보상으로 회사에서 비행기까지 타는 송년회를 연 것이다.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아직 기여한 바도 없건만 원하면 하루 더 있어도 된다길래 냉큼 1일 연장을 신청했다. 혼자 야외 자쿠지가 딸린 풀 빌라를 빌려서 근사하게 보낼 셈이었다.


첫사랑 같았던 전 직장을 떠나 새 시작을 고하던 올해 봄. 꽃길을 기대했지만 예기치 못하게 상처가 가시질 않았다. 남들 눈에는 외국계 회사로 이직하더니 유럽 출장도 가고 영어도 배우고 출세한 것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너 고생 했는데 참 잘되었네’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웃었지만 속은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분위기 쇄신을 해보려고 회사를 또 옮겨보았다. 그래서 지금, 제주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올해보다 힘들었던 때는 없었다. 집에 빨간 딱지가 붙어 언제 검은 옷 아저씨들이 경매하러 오나 초조하던 때도, 돈이 없어 아끼던 피아노를 팔고 한강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도, 한때는 최종면접을 함께 봤던 조원이 버젓이 정직원 출입증을 걸고 있는 앞에서 계약직 면접을 봐야 했을 때도, 이미 골반까지 다 퍼져 있는 것 같으니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병원 복도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을 때도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나는 항상 빠르게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 상처는 아무래도 흉이 질 모양인지 가라앉지를 않는다.


결국 자는 걸 제일 좋아하던 잠만보가 불면증에 걸렸다. 예전에는 힘들면 잠을 더 많이 잤는데. 현실을 피하고 싶어서 깨어 있는 시간을 줄였는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했다. 역설적으로 내 SNS는 더 화려하고 자랑스럽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소식들로 채워졌다. 다시는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보란 듯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줄 거야.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더 큰 세상에서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증명하고 싶었다. 회사 사람들에게만 공개되어 있던 내 페이스북은 어느덧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숱한 업계 사람들가득해졌다. 주저앉아서 절망만 하고 있으면 내가 아니지. 나는 오로지 12월 31일이 되면 페이스북에 무엇이라 남길지 생각하며 한 해를 보냈다. 내가 일 년간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고 해냈는지 줄줄 써 내려가는 상상을 하면서 버틴 것이다.


그러나 이 악물고 애썼던 계절들이 지나고 겨울이 되자 상태는 더 심해졌다. 겨울에 이별의 기억이 많은 탓일까. 쿵 하고 하강해버린 마음이 좀처럼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새 회사의 제주도 송년회는 그런 내게 한 떨기 구원이었다.


‘제주도라니 그림 좋은데? 최악의 일 년, 마무리라도 폼나게 하자.’


해서 추가 일정까지 돈을 다 대준다는 회사를 마다하고 홀로 20만 원이 넘는 풀 빌라를 예약했던 것이다. 시작은 좋았다. 근처 해안가를 돌아다니다 카페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전복 볶음밥을 샀다. 침대 위에서 혼자 막춤도 췄다.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홈런볼을 먹으며 드라마를 보니 정말 행복하다. 기대했던 자쿠지 인증샷은 물 트는 방법을 도통 알 수 없어서 포기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뭐, 허영 넘치는 사진은 아까 많이 찍어뒀으니까.


생각난 김에 카메라로 사진을 확인하던 나는 얼마 안가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심박 수가 빨랐던 나에겐 종종 있었던 일이다. 평소에도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곤 했다. 워낙 실시간으로 숫자에 메여있는 직업이다 보니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때면 나는 두근거림을 누르기 위해서 엎드려서 자곤 했다.


하지만 나는 곧 이 두근거림이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한까지 들기 시작했다. 슬리퍼 없이 걷기 힘들 정도로 바닥뜨끈뜨끈했는데도 몸이 덜덜 떨렸다. 다급한 마음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심장 두근거림, 오한을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았다. 특별할 것 없증상이니 오만 병이 다 튀어나오지 않을까? 그러나 내 눈앞에 뜬 결과는 예상과 달리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공황장애.



뭐야. 실컷 잘 놀고 있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실망한 나는 휴대폰을 던져 버리고 다시 침대 위에서 끙끙댔다.


그때, 나는 낯설기만한 그 단어가 나와 관련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낮에 뭘 잘못 먹었나 보네. 먹는 거 욕심내지 말걸. 종일 꿀꿀거린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아침이 되어 서울로 돌아갈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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