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홍콩영화가 좋아서 떠난 2. 비오는 홍콩을 걸어보셨나요

홍콩의 진면모를 보고 싶었던 그 날의 기록

by 메이

대만과 홍콩 여행을 여러 차례 다니며, 여행을 갔을 때 딱 두 번 빼고 비가 왔다. 심지어 대만 여행의 경우, 첫 날부터 장대비가 쏟아져 내려 가방부터 신발까지 다 젖었던 기억이 있고, 두 번째 대만 여행은 2일 내내 흐리고 비가 살짝씩 오다 마지막날에서야 해가 떠서 야속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서운할 지경까지 와버렸다. 특히 홍콩의 경우, 습하면서 축축한 그 분위기와 비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 도시던지. 하늘을 올려다보면 보이는 고층 빌딩과 내리는 비를 같이 보았던 그 기억은 어느 카메라에도 담기지 않을 정도로 선명했다. 그렇게 홍콩의 둘째날, 비와 함께 여행을 시작했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875962b2-b687-4075-b674-668688471b82_540x326.gif


(3) 추구미 = 현지인, 실제 모습 = 관광객


여행을 늘 다닐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아무리 봐도 관광객인데,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다. 절대 이 곳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처럼, 길을 한번도 잃지 않는 사람처럼, 구글맵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을 보는 사람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누가봐도 관광객이도, 구글맵 방향이 맞는지 요리 조리 핸드폰을 들고 움직여 본다. 여행 동선을 짤 때도 '그래도 여기 왔으면 이 곳은 가봐야지' 하는 곳들을 계획에 넣곤 한다.


익청 빌딩과 초이홍 아파트는 나에게 그런 곳들이었다. 홍콩에 왔으니 익청빌딩에 가서 유명한 사진 한 번 남겨야 하고, 초이홍아파트의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초록색 천이 아파트를 다 가리기 전에 가야 겠다는 생각으로 넣은 곳들이다. 비가 오던 날씨 덕분에 두 곳에서 사진은 기다림 없이 찍을 수 있었다.


사실 두 곳을 다니며 의외로 기억에 남던 곳은 익청 빌딩을 가는 길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주거 단지라는 점이 가장 크지만, 가는 길에 마주한 맥도날드도 그렇고, 전화 부스도 그렇고, 육교를 건너면 보이는 무성한 나무들이 아직도 인상 깊다. 여행은 랜드 마크를 가기 위해, 그 곳에서 추억을 남기기 위한 것도 분명히 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포인트에서 좋아하는 곳을 찾는 묘미도 있다. 내가 익청 빌딩을 가는 길이 그랬듯.


IMG_2319.JPEG


(4) 아직 덜 변한 거 같았던 그 곳.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던 삼수이포


사실 삼수이포는 계획에 없었지만, <무간도>에 나온 'Audio Space'를 갈지 말지 고민을 하다 그냥 넣었던 곳이었다. 솔직히 삼수이포는 제대로 찾아보고 가질 않았다. 그냥 <무간도>에 나온 곳이 있으니까, 그 흔적이라도 밟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곳에서 먹은 점심 식사는 웬만한 음식이 잘 맞는 나에게도 힘들 정도로 아직 관광객의 발걸음이 덜 닿은 곳이었다. 삼수이포에서 본 모든 광경은 내가 영화에서 보았던 홍콩의 분위기가 다른 곳보다 더 살아있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다른 곳을 갈 때는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는데, 이 날은 유독 한국인이 나 한 명 밖에 없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가 삼각대를 두고 사진을 찍을 때,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기도 했다. 봐봐. 나 관광객 맞다니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그저 촬영을 했다는 곳에 있기만 해도 설레는 기분을 아는가? 비록 앞서 언급한 'Audio Space'를 가지 못했지만, 그냥 내가 그 곳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앞으로도 적겠지만 내가 홍콩에 머물렀던 그 시간들은 늘 설렘이었다. 그들이 이 거리를 걸었을 생각을 하고, 어쩌면 그들과 스쳐지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촬영지를 스쳐 지나가든 찾아가든간에 온통 그 때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홍콩. 그래서 삼수이포는 나에게 <무간도>의 그 때로 데려가 주었다.


참 재밌게도 삼수이포에서 조금 걷다보면 홍콩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던 카페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오래 걸어서 허리도 아프겠다. 대충 구글 평점이 높은 카페를 찾아갔다. 나는 노천 카페를 홍콩에서 처음 경험했고, 바로 그 곳이 내가 삼수이포에서 갔던 곳이었다. 웃기지만 카페에서 보이는 뷰는 그저 홍콩의 어떤 아파트였다. 적나라하게 빨래가 창문에 걸려 있었고, 빽빽하면서 높은 건물들이 위치한 그 홍콩 아파트를 보면서 커피를 마셨다. 참 재밌게도 커피는 맛있었고, 홍콩에 더 가까워진 느낌을 그 때야 비로소 받았다. 역시 여행은 우연의 연속들이고, 의외의 장소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점이 맞는 말 같다.


누군가 나에게 홍콩 중 어디를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내 깊은 마음 속에선 '삼수이포'를 외치고 싶다. 조금 더럽고, 아직 때가 많이 묻지 않은 그 곳. 호불호가 분명 많이 갈릴 거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아서 마음 속으로 꾹 누른다. 하지만 이 곳은 나의 에세이, 나의 공간. 혹시 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삼수이포를 꼭 염두해 두시길 바래본다.



(5) 별 거 없었지만, 별 게 있었던 'Cinema Broadway'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가봐야 한다던 그 곳. 홍콩의 씨네필들이 모인다는 그 곳. 'Cinama Broadway'로 그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참고로 이 곳의 서점은 사진 촬영이 되지 않으니, 꼭 기억해 두길 바란다. 솔직히 책 한 권이라도 꼭 사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모든 언어가 영어 내지는 중국어로 적혀 있었기 때문에 그냥 내려 놓았다. 아, 잠시 고백을 하자면 난 중국어를 배웠어서 중국어로 된 홍콩의 영화 역사책을 구매하려고 했는데, 골똘히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꽂혀 있는 책이 여러 권이고, 그 중 읽지도 않은 책이 더 많은데 이 책을 사면 정말 읽겠는가?' 30분을 구경하다 내려 놓았다.


그럼에도 이 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때 그 영화의 흔적들이라던가 우리의 향수를 유발시키는 아이템들이 곳곳에 숨어져 있다. 특히 장국영과 관련된 서적들도 간간히 보였고, 히치콕이라던가 영화사 하면 무조건 나오는 키워드들이 가득 담긴 그 공간에서 영화 자체에 빠져든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갔을 당시, 옆 영화관에서 유럽 영화제를 하고 있었고, 한국에서 개봉되지 않았던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가여운 것들> 등을 이미 상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다시 어렴풋이 느꼈던 거 같다. 괜히 홍콩이 예전에 전성기를 누린 것이 아니구나. 이 곳은 여전히 한국보다 영화 시장이 더 빠르구나 라는 것을. 시간이 허락한다면 두 영화를 감상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의 여유가 없었던 나는 영화관만 구경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템을 구매했다. 바로 영화제 티켓 홀더였다.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언젠간(늦지 않은 시일 내) 실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제작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영화제 티켓 홀더였다. 다년간 영화제를 다니며, L자로 된 홀더도 받아보고, 파우치도 사용해 봤지만 티켓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 맞지 않다던가, 옆으로 흘러나온다던가 지퍼에 찝혀서 찢어지는 경우들도 있었다. 그래서 꼭 티켓 홀더를 내가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레퍼런스를 발견한 것이다.


비록 가죽이었던터라 비오는 날 소재가 예민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한 티켓 홀더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영화제마다 조금씩 다른 티켓 크기에 상관없이 넉넉하게 들어가고, 약간의 메모지도 넣을 수 있어서 영화를 기록하기도 좋았던 티켓 홀더. 그리고 이 때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영화제들도 티켓 크기에 구애 받지 않는 엠디들을 제작해주면 좋겠어요' 아니다. 내가 만들 것이다. 매 번 카탈로그에 티켓을 꽂아서 와르르 쏟느니 내가 만들어서 다녀보겠다. 이 에세이에 이렇게 포부를 밝히는 이유는 만들어 내야할 명분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홍콩영화가 좋아서 떠난 1. 나의 오랜 향수병, 홍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