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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4편 부여夫餘 (2) #6

유화柳花과 금와金蛙 (1/4)

by 잡동산이

해모수가 벌이는 일들은, 뒤 해모수가 하-백을 통해 얻어내어 오고가려 하던 길 반대편에 있던 부여 왕 금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때문에 금와 또한 해모수가 벌일 일들에 대비하기 위하여 여러 일들을 하였습니다. 와가 그런 일들을 하게 된 작, 해모수의 일들이 금와에게 알려진 것은 유화 금와에게 한 이야기들을 통해서였으니, 여기서부터 다시 자료들을 살펴보지요.




해모수가 그렇게 유화를 두고 떠난 뒤, 동명왕편 주석은 하-백이 화가 자신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가문을 부끄럽도록 것을 꾸짖다고 적었습니다. 이어 하-백이 가까운 사람들을 시켜 무엇인가를 딸에게 묶 그것에 묶인 딸을 잡아당기도록 하니 입술 같은 것 - 의 입술에 묶은 것 - 의 길이가 길어져는 3장이나 되었다[B-13-(1):①-⑦]고 적었습니다.


B-13-(1) 동명왕편 주석: <● (하-백이) 말하기를 "① 너는 ② 내 가르침[訓]을 따르지 않았고 ● 마침내 ③ 우리 가문[門]을 부끄럽도록 하였다."라고 하고 ④ 가까운 사람들[左右]에게 명령하니 ● (가까운 사람들이) ⑤ (무엇인가를) 묶고 (하-백의) 딸을 잡아당겼다. ● (그리하여) ⑥ 그(= 딸의) 입술 같은 것[唇]의 가장자리[吻]가 ⑦ 길이가 3자[尺]가 되자 ● (하-백은) 다만 ⑧ (남을) 따르는 남자[奴], (남을) 따르는 여자[婢] 2명[人]을 주고[與] ⑨ (딸을) 우발-수[優渤-水] 가운데에 떨어뜨렸다[貶].> <曰①汝②不從我訓●終③辱我門④令左右●⑤絞挽女口●⑥其唇吻⑦長三尺●唯⑧與奴婢二人⑨貶於優渤水中>


물건은 가문을 부끄럽게 하였다는 딸 유화에게 씌운 것이니, 유화를 보고 그 가문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하려던 곧 얼굴을 감추려 쓴 도구입니다. 비슷한 모양, 같은 목적을 가진 도구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삼국유사 기이편이 알영의 입술에 있었던 닭[雞]의 부리[觜] 같은 것[3장 2편 #9 B-22:⑩]이라는 구절들을 통해, 소-벌-도리가 얼굴을 감춰 알영을 데려오며 썼던 도구를 적은 것임을 이미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3장 2편 #9 B-22 삼국유사 기이편: ① 이 날 ② (뒤의) 사량(-부)의 마을[里]의(= 사량-부의 마을 가운데) ③ 알영-정[閼英-井] 가[邊]에 ④ 닭 같은 사람[雞], 용 같은 사람[龍]이 있어 ● (그 사람이) ⑤ 나타나서는 ⑥ 가랑이[脇] 옆[左]에 ⑦ 아이인 여자[童女](= 여자아이)를 낳아놓았다[誕生]. ⑧ (여자아이의) 생김새[姿容]가 ⑨ 뛰어나고 고왔는데 ● 그리하였지만 ⑩ 입술에 ⑪ 닭[雞]의 부리[觜]와 비슷한 것[似]이 있었는데 ● (사람들이) ⑫ 데려와 (여자아이를) 월-성[月-城] 북-천[北-川]에서 씻기자 ⑬ 그(= 나이어린 여자 입술의) 부리 같은 것[觜]이 ⑭ 끊어지고[撥] 떨어졌다[落]. ①是日②沙梁里③閼英井邊④有雞龍●⑤現⑥而左脇⑦誕生童女⑧姿容●⑨殊麗●然⑩而唇⑪似雞觜●將⑫浴於月城北川⑬其觜⑭撥落


이러한 신라와 부여의 연결고리를 특히 진-국의 후손 소-벌-도리가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무리와, 금와가 다스리던 부여 무리 곧 흘승-골-성에서 머물다가 옮겨갔던 무리에서 같은 도구가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뒤에 동명 가운데 같은 도구를 하나 더 본 뒤에 그 답을 이야기하지요.




그렇게 얼굴을 감추어 보고 다가올 사람이 없도록 하고서, 이어 동명왕편 주석은 하-백이 유화에게 따르는 남자 1명과 여자 1명을 주고 유화를 우발-수에 떼어놓았다[B-13-(1):⑧-⑨]고 적었습니다. 이미 살핀 바, 우발-수는 태백-산을 사이에 두고 그 북쪽에 있던 장소 곧 해모수가 다가왔던 웅심-산과는 반대편에 있는 곳이었으니, 이것은 하-백은 해모수가 다시 찾아와 유화를 데려가지 못하도록 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앞서 살핀 뱌 있는 구절들에 이어지는 구절들이 유화의 말을 인용하여 간단히 적었습니다. 하-백과 그 아내가 꾸짖고 중매하는 사람이 없이 다른 사람 - 해모수 - 를 따랐다 - 예를 갖추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따르지 말라는 하-백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다 - 고 하였다[A-3-(3):①-④]고 적고, 이어 하-백과 그 아내가 벌주 유화가 지금 우발-수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였다[A-3-(3):⑤-⑥]고 적었습니다.


A-3-(3)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여자가 말하기를 ")① 아버지(= 하-백), 어머니가 ② 나를 꾸짖었으며 ● (말하기를) '(너에게) ③ 중매하는 사람[媒]이 없는데 ● (네가) ④ 다른 사람[人]을 따랐다.'라고 하고 ● 이윽고 ⑤ (나를) 벌주니[謫] ● (내가) ⑥ 우발-수[優渤-水]에 머물렀다."라고 하였다. (女子曰)①父母②責我●③無媒④而從人●遂⑤謫●⑥居優渤水


이 구절들은 동명왕편 주석의 내용을 관점을 조금 달리하여, 때문에 서로 다른 부분들을 보다 자세히 또는 간단히 적었습니다. 그런데 두 자료들 모두 유화가 있었던 우발-수를 태백-산의 남쪽이라고 적었는데, 이곳은 해모수가 있던 흘승-골-성에서 시작하여 태백-산 가까운 평양을 지나 예에 이르는 길에 었고, 때문에 해모수는 이를 수 없었지만 길의 반대편, 부여가 다스리던 북쪽 예의 땅에 던 금와 이를 수 있 곳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유화와 금와의 만남을, 다음 동명왕편 주석은, 먼저 어-사[漁-師]가 힘을 보태어 추鄒라는 사람을 도왔다[B-14:①-③]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어-사는, 물고기를 잡는 일[漁]을 잘 하는 사람[師]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어-사[魚-師][B-14:①-⑨]라고 달리 적은 구절을 통해 보면 앞서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마찬가지로 물고기의 이름을 벼슬 이름으로 삼은 군대, 그 군대의 군사입니다.


B-14 동명왕편 주석: <① 어-사[漁-師]가 ② 힘을 보태어[强力] ③ 추鄒를 돕는데[扶] ● (추가) ④ (왕에게) 알려 ● 말하기를 "⑤ 가까운 곳[近](= 우발-수)에 ⑥ 고기잡이[梁] 가운데의 물고기들을 도둑질하여 가지고 가버리는 것이 있다. ⑦ 아직 어떤 들짐승[獸]인지 알고 있지 않다."라고 하였다. ⑧ 왕이 ● 이어 ⑨ 어-사[魚-師]에게 시키니 ● (어-사가) ⑩ 그물이 ⑪ 그것(= 고기잡이 가운데의 물고기들을 도둑질하여 가지고 가버리는 것)을 끌어내도록 하였다. ⑫ 그(= 어-사의) 그물이 ⑬ 깨트려지고 찢어지니 ● (어-사가) 다시 ⑭ 철 그물을 만들었으며 ● (만든 철 그물이) ⑮ 그것을 끌어내었다. ⑯ 처음 ● (어-사가) ⑰ 1(명) 여자를 얻었는데 ● (여자는) ⑱ 돌에 앉아서 ⑲ 나왔다. ⑳ 그(= 돌에 앉아서 나온) 여자의 ㉑ 입술 같은 것이 ㉓ 길어 ● (여자가) ㉔ 이야기할 수 없었다. ● (왕이) ㉕ 명령하니 ● (사람들이) ㉖ 3(번) ㉗ 그 입술 같은 것을 잘랐다. ● 이에 (여자가) ㉘ 이야기하였다.> <①漁師②强力③扶鄒●④告●曰⑤近⑥有盜梁中魚而將去者⑦未知何獸也⑧王●乃⑨使魚師●⑩以網⑪引之⑫其網⑬破裂●更⑭造鐵網●⑮引之⑯始●⑰得一女●⑱坐石⑲而出⑳其女㉑唇㉓長●㉔不能言●㉕令●㉖三㉗截其唇●乃㉘言>


때문에, 동명왕편 주석은 이어 추가 가까운 곳에 고기잡이로 잡은 물고기들을 가지고 가버리는 것이 있는데 어떤 들짐승인지는 아직 알지 못하겠다고 누군가에게 알렸다[B-14:④-⑦]고 하여, 군사가 우두머리에게 그리하듯이 어-사가 누군가에게 알린 일을 적었습니다. 이 때 어-사가 알린 상대는 이어지는 구절들에 나오는 왕입니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동명왕편 주석이 어-사에게 왕이 시켰다[B-14:⑧-⑨]고 적은 일들로 다시 이어집니다. 저 어-사는 그물로 물고기들을 도적질해 가는 것을 끌어내려고 하였는데, 그러한 그물이 망가지자 다시 철 그물을 만들어 그것으로 끌어내었다[B-14:⑩-⑮]고 적었습니다. 이어 돌 같은 것에 타고 있으며 얼굴의 입술 같은 것이 길어 말하지 못하는 여자를 얻었다[B-14:⑯-㉔]고 적고, 입술 같은 것을 3번 라주자 - 도구를 벗기자 - 여자가 이야기를 하였다[B-14:㉕-㉘]고 적었습니다.


동명왕편 주석은 여자가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이어 적지 않았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사실 앞서 이미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통해 살핀 바 있는 그것입니다. 곧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해모수가 부여의 옛 도읍, 다시 말해 흘승-골-성에 이르러 도읍한 일을 적은 뒤에 이어,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왕의 자리를 이었고 그 때 금와가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여자를 만나 물었다[A-7:①-⑥]고 적었는데, 그 뒤에 적혀있던 여자가 한 이야기가 로 앞서 살핀 A-3-(1), (2), (3)입니다.


A-7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 이윽고 ① 해부루가 ② 죽자[薨]③ 금와가 ④ (왕의) 자리를 이었다[嗣]. ④ 이 때에(= 금와가 왕의 자리에 있을 때) ● (금와가) ⑤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여자를 얻어 ⑥ 그(= 여자)에게 물었다. ●及①解夫婁②薨③金蛙④嗣位④於是時●⑤得女子於太白山南優渤水⑥問之


그 내용은 이제까지 살핀 바 앞서 동명왕편 주석이 적은 바 해모수와 유화가 만나고 헤어진 일들이며, 삼국사기는 그 내용이 유화의 말과 겹친다고 여겨 간단히 유화의 말만을 적고 앞의 긴 이야기는 빼고 적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 가운데에는 아버지가 주어 보낸 남자, 여자가 모두 유화를 떠난 뒤에, 홀로 남아 물재주로 남이 잡은 물고기를 빼돌려서 먹고 살던 유화 모습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유화가 였던 이야기를 적은 뒤에, 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는 금와가 화의 이야기를 남다르다고 여기고 유화를 데려가서는 숨겨 방[室] 가운데에 두었다[A-8-(1):①-③]고 적었습니다. 앞서 살핀 것들 다음의 동명왕편 주석도 같은 일을 달리, 금와가 유화가 천-제의 아들 - 해모수 - 의 아내임 - 유화가 한 말 - 을 알았고 리하여 따로 궁에 유화를 두었다[B-15-(1):①-④]고 적었습니다.


A-8-(1)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① 금와가 ② 그것(= 여자의 말)을 남다르다고 여기고 ③ 숨겨 (여자를) 방 가운데에 두었다[閉]. ①金蛙②異之③幽閉於室中
B-15-(1) 동명왕편 주석: <① 왕은 ② (여자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의 (왕)비妃임을 알고 ③ 따로 궁宮에 ④ 그(= 여자)를 두었다.> <①王②知天帝子妃③以別宮④置之>


곧 금와는 유화에게 하-백과 해모수, 유화 사이의 일들 듣고서 화가 해모수의 아내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가 적지 않은 이 점을 동명왕편 주석 다행히 그대로 적었으며, 에 그것을 통해, 삼국사기 백제본기 주석이 어떤 기록을 인용하여 백제 시조 비류-왕의 아버지고 적은 우태[G-2:①-④] 곧 이 구절들에 이어 어떤 기록의 그 뒤 구절들이 해부루의 남다를 것 없는 손자라 적었던 우태[G-1:①]가 졸본에 보내 까닭을 미루어 살필 수 있 되었습니다.


G-2 삼국사기 백제본기 주석 인용 어떤 기록: <① (백제百濟의) 첫始 조상[祖]이 ② 비류-왕[沸流-王]이었다. ③ 그(= 비류-왕의) 아버지는 ④ 우태優台였다.> <一云①始祖②沸流王③其父④優台>




그렇지만 태의 일들은 금와가 유화를 만나고서도 10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일어난 이기에 일단은 그렇게 만났던 유화가 금와의 곁에서 겪 일들을 먼저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해모수의 아들, 주몽이라 또한 일컬어지던 동명東明의 탄생 그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문에 다음 글부터는 앞서 자료들에 더해서 다른 앞선 자료들이 적고 있는 이야기들, 곧 동명이 세운 고구려가 아니라 부여를 통해서 한漢에 간략하게 전해졌던 동명의 이야기들을 모두 함께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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