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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y 20. 2022

가끔은 자세히 보지 않아야 예쁜 것도 있다.


가끔은 자세히 보지 않아야 예쁜 것도 있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생각.

아이는 내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눈동자를 천장 고정하고

입만 쫑알쫑알 움직인다.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

오!, 그래?, 이야, 그래서? 정말?

아이는 신나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여서, 현실성이 없어서, 논리적이지 않아서

구체적이지 않아서 더 예쁜 이야기다.


아이들의 생각 글도 그렇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에 꼬리를 물고 늘어뜨려 빈칸을 채워나간다.

앙 다문 입술사이로 혀만 살짝 나와 코끝을 향한 채 집중한다.

"엄마, 들어봐, 내가 읽어줄게."

글을 다 쓴 아이는 자신 만만한 목소리로 자신의 글을 읽는다.

맞춤법이 틀려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떠듬떠듬,

띄어쓰기가 맞지 않아서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시고'가 되어도

용케 고쳐 읽으며 자신의 글을 소개한다.

굳이 토씨 하나하나, 띄어쓰기 하나하나 틀린 걸 찾아내지 않아야

아이의 글은 예쁘다.


밤하늘의 별도 그렇다.

남편하고 밤에 산책을 하면서 유난히 밝게 떠있는 별을 보고 이야기한다.

"저 별이 북극성인가?"

나나 남편이나 별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계절마다 바뀐다는 별자리도, 별 이름도 국자 모양이라는 북두칠성밖에 모른다.

그저 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 '아, 예쁘다.'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른다.

"몰라, 그렇다고 합시다. 오늘도 북극성 예쁘네."

언젠가 아이들은 별에 대해 우리보다 좀 알았으면 해서 천문대에 가본 적이 있다.

몇 배 확대 망원경이라고 소개하면서 별을 관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들 신기해하며 감탄을 했다. 별에 많은 관심이 있어 공부하는 분들이 분명했다. 어려운 이름 이야기도 하고, 질문도 많이 했다.   

별에 큰 관심 없던 우리 부부는 주위 사람들 눈치를 보며 작게 감탄을 했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오히려 예준이가 우리보다 더 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

천문대에서 돌아오면서 어땠었냐고 서로 물었다.

"잘 모르겠던데. 내가 본 게 별이 맞는 건지, 아닌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

"오~역시, 나만 그런 거 아니었지?"

"역시 별은 멀리서 봐야 제맛이지."  

그래서 우린, 별은 자세히 안 보고 멀리서 보기로 했다.


30년 넘게 써 온 안경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도 일상생활에서는 벗기가 힘들다. 안경을 벗으면  10cm 떨어진 것도 죄다 뭉개져서 보이니까.

중학교 때는 이런 적도 있다.  

엄마는 일요일 새벽이면 목욕탕 가야 한다고 6시도 안 돼서 깨웠다. 새벽에 가야 사람이 별로 없어 물이 깨끗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잠이 덜 깬 채로 투덜거리며 집 앞에 있는 '대종탕'에 갔다. 역시 엄마의 계산은 맞았다. 사람이 별로 없어 가장 인기 많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아서 때를 밀었다. 물론 안경은 밖에 벗고 왔다.  보이는 것이 없으니 상당히 과감하게 때를 빡빡 밀었다. 일주일마다 가는데 때는 왜 이리 많이 나오는지. 때 미는 재미에 잠이 확 달아났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야, 너 어제 내가 계속 손 흔들었는데, 왜 못 본척했어?"

"어제? 언제? 나 집에만 있었는데."

"너 어제 대종탕 안 갔어? 때 엄청 빡빡 밀더만."

"아, 안 갔어. 나 아닐걸?"

헐, 물론 나였다. 하지만 그때는 나이고 싶지 않았다. 그 후로 난 목욕탕에서도 안경을 벗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산책할 때 가끔 안경을 벗는다.

초록잎이 눈부셔서, 파란 하늘이 너무 파래서, 그냥 그 자체 선명하게 보기 아까워서.

안경을 벗고 본다.

흐리 머텅하게 어우러지는 초록잎과 파란 하늘이 만든  

안경 밖 세상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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