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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31. 2023

아이가 커가는 걸 느낄 때

 아이가 커가는 걸 느낄 때 감사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이 함께 인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커 주고 있어 감사하고, 나의 손이, 나의 발이 없어도 혼자 잘 서 있는 게 기특하다. 하지만 그 기특함 이면엔 크게 표현할 수 없는 서운한 감정도 있다.     


 얼마 전 첫째 아이가 음악회에 가야 한다고 했다. 음악회를 보고 감상문을 써서 내는 게 수행평가라고. 중학교에 들어가 첫 수행평가라고 하니 아이도 나도 긴장됐다. 1년 동안 지필시험은 없고 수행평가로만 평가가 이뤄진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공연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여러 후보 중 역사를 주제로 한 공연과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공연 두 개로 추려졌다. 역사를 주제로 한 공연은 무료 공연이었고,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공연은 좀 비쌌다. 아이는 연극을 보고 싶다고 하더니 가격을 보고는 그냥 공짜 공연을 보자고 했다. 난생처음 무대 공연을 직관하면서 돈 생각을 먼저 하는 아들이 고맙지는 않았다. 돈보다 더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보고 싶은 걸 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까지 돈 계산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4식구가 다 같이 가서 보게 되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적지 않은 돈을 써야 하니 남편하고 상의해야 했다. 퇴근 전인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금 이런 상황이어서 공연 티켓을 예매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4식구가 다 같이 갈 건지, 아니면 둘 중에 한명만 보호자로 갈 건지. 남편은 우리가 언제 그런 공연 본 적 있냐면 이번 기회에 4식구가 같이 가자는 거였다. 강력한 경제권을 가진 남편이 그렇게 하자고 하니 감사히 ‘앗싸’하고 예매하기로 했다. 예매 사이트에 다시 들어갔다.


 아, 이런! 남편과 이야기 나누는 불과 몇 분 사이 표는 달랑 2장만 남아있었다. 그것도 서로 멀리 떨어진 자리였다. 아쉬움에 탄식하며 아들에게 멀리 떨어져 혼자 앉아서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아들은 나의 아쉬움이 머쓱할 정도로 너무 쉽게 상관없다고 했다. 아들의 표정과 말투가 ‘톡’하고 내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았다.      

  “그럼, 그냥 혼자 갈래?”

  아무렇지 않은 척 아들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응, 그래.”

 짧고 시크한 아들의 대답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 녀석 혼자 가고 싶었구나. 이제 엄마 아빠가 굳이 보호자로 같이 안 가도 되는구나.

 “뭐야, 혼자 가고 싶었던 거야? 처음부터 말하지 그랬어. 그래, 그럼 표 한 장만 예매할게. 우리 아들 많이 컸네. 공연도 혼자 보러 갈 줄 알고.”

 나는 서운한 기색은 저 깊숙이 감춰두고 기특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엄마 서운해?”

 옆에서 듣고만 있던 둘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물었다. 역시 눈치 빠른 녀석. 내 마음속에 꾹 누른 감정을 잡아끌어 올렸다.

 “아, 아니. 서운하긴 기특하고 고맙지. 이렇게 잘 크고 있으니까. 뭐, 조금은 서운하긴 하네. 너희가 빨리 커가는 것 같아서.”


 연극 티켓을 한 장만 예매하고 예매 확인증은 아들 카톡으로 보내줬다. 그걸로 내 할 일은 끝이었다. 머지않아 내가 할 일은 이조차도 없어지겠지. 아이들에게 매일 같은 잔소리를 반복하며 들들 볶고 사는 것 같지만 그 수도 줄었다. 줄어든 그 틈 사이로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나 보다.

 내 손을 덮을 만큼 커진 아들의 손을 잡고 쓸어 본다.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감사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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