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집에 와서 자전거를 탈 일도 없고요.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오면 깜깜해지거든요. 기껏해야 밤에 아파트 단지 한 바퀴 돌아보는 게 끝이죠. 왜 밤이냐고요? 엄마가 그 시간에 아파트 텃밭에 물 주러 나가시거든요. 밤에 혼자 나가는 건 아직은 무서워요. 그리고 텃밭에 물을 주는 것도 재미있고, 매일 조금씩 자라는 상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해요. 무엇보다 밤 자전거 탈 때의 매력을 찾았거든요.
우선 시원한 밤공기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 공기 속을 뚫고 쌩하니 달리면 머릿속에 말끔히 청소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 속에 자전거의 새 타이어 냄새가 스쳐 지나가면 완벽히 리셋되는 기분입니다.
또 그 시간의 소리는 어떻고요. 동생 손바닥만 해진 초록 이파리가 나부끼며 내는 소리, 마치 그들만의 세상인 양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분명 살금살금 걷는 것 같지만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함이 엿보이는 고양이의 발걸음 소리. 정말 들리냐고요? 그럼요.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같은 곳을 맴돌지만, 돌 때마다 냄새도 소리도 기분도 달라집니다.
이 시간, 이 순간이 참 좋습니다.
-14살 아들
하루 종일 밖에서 안에서 쉼 없이 움직입니다. 한숨 돌릴 시간이 되면 이미 깜깜한 밤이죠. 그 시간에 텃밭에 물을 주러 나옵니다. 아들이 한 번씩 따라 나와요. 텃밭에 물도 주고 자전거도 타고요. 새로 산 자전거를 탈 시간이 없으니 아들도 이 시간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오늘도 수고했다고 서로 쓸어주는 나뭇잎 소리와 높은 아파트 벽에 부딪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힌 개구리 울음소리만 가득합니다.
그 소리를 뚫고 아들이 달립니다. 어느새 저렇게 컸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차마 올라타기 힘든 커다란 자전거에 훌쩍 뛰어 탑니다. 그리고 거침없이 달려요. 기특하면서도 마음을 졸입니다. 엄마니까요. 믿음 한 주걱에 걱정 한 스푼이 항상 따라다니잖아요.
아들의 자전거가 달리는 사이로 가로등이 걱정하지 말라고 비춰줍니다. 세상 모든 게 흔들리고 캄캄해도 아들은 똑바로 신나게 달릴 거라고 하네요. 이렇게 뒤에서 잘 가고 있는지 지켜봐 주면 된다고요.
올해부터 텃밭을 경작해요. 경작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부끄러운 크기의 텃밭이지만요. 처음엔 흙을 만지고 모종들을 심을 때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요. 그런데 역시나 첫술에 배부른 건 없나 봅니다. 의욕만 앞섰던 거죠. 별다른 준비 과정 없이 흙, 모종, 물, 햇빛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던 거예요. 그래도 제가 여럿 먹여 살렸답니다. 달팽이와 이름도 알 수 없는 친구 여럿을요.
구멍이 숭숭 뚫린 청경채를 뽑아버리려고 했는데, 열심히 먹고 있는 애들이 있어서 그냥 뒀어요. 그랬더니 며칠 뒤에 청경채의 꽃대가 올라오더니 노란 꽃을 피우더라고요. 달팽이들 덕분에 청경채 꽃 구경을 다했습니다.
아들도 자전거를 타면서 흔들리는 날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날도 있겠죠? 물론 상처도 날 거예요. 제 몸과 마음에도 이미 많은 상처가 있었으니까요. 당연할 겁니다. 그래도 숭숭 구멍 뚫린 채로 밑에서는 새잎이 자라나겠고, 꽃대를 올리고, 마침내 꽃을 피우겠죠.